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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역술인, 청와대
게시물ID : sisa_1205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itzNeko
추천 : 10
조회수 : 129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2/06/19 17:09:19
형제와 조카를 잇따라 죽인 광해군은 풍수와 궁궐 건축에 몰두했다. 1608년 즉위한 뒤 단종과 연산군이 폐위된 법궁(제1궁궐) 창덕궁에 들지 않고, 월산대군 사저이던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지냈다. 1615년 창덕궁에 들었으나, 이번엔 창경궁 재건을 지시했다. 그러나 1616년 창경궁 재건이 끝나자 다시 인경궁과 경덕궁 건설을 시작했다. 앞의 3개 궁궐 공사는 재건축이었으나, 뒤의 2개 궁궐은 신축이었다. 당연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신하들은 반대했으나, 그대로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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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광해군)이 일찍이 지관(풍수가) 이의신에게 몰래 묻기를 ‘창덕궁은 큰일을 두 번 겪었으니 내가 머물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이 폐위된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의신이 대답하기를 ‘이는 고금의 제왕가에서 피할 수 없었던 변고입니다. (…) 빨리 옮기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 이에 창경궁을 고치도록 재촉하곤 궁이 완성되자 또 머물지 않고, 마침내 두 개의 새 궁을 짓도록 했다. 완공한 뒤 거처하려고 했기 때문에 경덕궁(경희궁)을 먼저 짓고 인경궁은 완성되지 못했는데, 왕이 폐위됐다. 모두 이의신의 말대로였다.”(1613년 1월1일 <광해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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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의  말만 듣고 창덕궁에는 들지않겠다며 버티다가
갑자기 한양을 옮기겠다고 하더니 
천도는 포기하고 두개의 궁을 새로 짓겠다며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고
여기저기서 돈,땅, 건축재 등을 받아 관직을 팔아먹었다.

과연 권력자들에게  무속이란 뗄 수  없는 것인가.
지금의 청와대가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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