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덕분에 1편이 베오베에 가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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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다른 카페 매장도 운영하는 사장님은 가게에 어쩌다 얼굴을 비추는게 전부라
대부분 나 혼자 가게를 운영하며 메뉴도 손보고 부족한걸 채워넣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분주한건 아니지만 차츰 단골도 조금 생기고 매출도 조금씩 오르는게 보였다.
그리고 며칠간 조금씩 나아지는 매장에 심취해 그 특이했던 손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날은 비가 내리면서도 해가 군데 군데 비치는 이상한 날이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온몸이 흠뻑 젖어 가게에 겨우 도착했다.
분명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안개비 정도였거늘 거의 도착할 때쯤 퍼붓기 시작해서
속옷 빼고는 전부 촉촉하다 못해 축축해져 거울에 비친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누굴 탓하랴, 우산 챙겨가라는 말을 잔소리로 듣고 집을 나선게 화근이다.
창고에서 수건 같은걸 꺼내 열심히 닦고 말리며 오픈 한지 1시간이 지났을까
이상할 만치 손님이 없다.
커피를 한잔 뽑아 홀짝이며 창밖을 보니 느리게 감기는 영화필름 처럼 비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며 지나간다.
한바탕 나만의 전쟁을 치르고 나니 졸음이 몰려오는 건 당연지사 요란한 소리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문이 딸랑 소리를 내었고 그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편의점표 투명 우산에 흰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그리고 비에 젖은 슬리퍼 차림이었다.
나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젖은 발이 신경쓰였는지 들어오려다 문앞에서 머뭇거린다.
아차 싶어 '잠시만요' 를 외치며 가게 뒷문에서 버리려던 박스를 꺼내와 출입구 앞에 깔아두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감사합니다 라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바닐라 라떼 맞으시죠?"
"네... 사람이 많아서..."
"네?"
"아... 아니에요"
말을 얼버무리며 계산을 한 그녀는 테이블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뭔가 실수라도 한걸까 싶었지만 한편으로 그냥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앞섰다.
창 밖으로 요상한 날씨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니 더욱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침 손님도 없겠다 정성껏 라떼아트를 그려낸 바닐라 라떼를 서빙했다.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나지막히 나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평소에는 자세히 보지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예쁜 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나를 불러놓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굉장히 머뭇거리다 겨우 말을 꺼내는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저.. 혹시 전에 일하시던 분은 안계신건가요?"
"그만두게 되서 제가 앞으로는 쭉 여기서 일할것 같습니다"
"아...!"
안도하는 모습, 다행이다 라고 얼굴에 써있다고 할만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라떼잔을 들어올렸다.
"음... 누가 고백해서 그만두었다던데 자세한건 모르구요"
"네?!!"
그녀는 놀라며 들고 있던 라떼를 쏟아버렸다.
자신의 발위에 흠뻑 쏟아져 자칫 뜨거웠을텐데도 기껏해야 몇방울 안튀었을 내 신발을 닦아주려 냅킨을 한움큼 집어 닦아댔다.
나는 뭐에 홀린듯이 그 광경을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차갑게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발을 닦아주었다.
살짝 빨갛게 된 정도였건만 하얀 피부라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저...저기..."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땐 비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햇살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햇빛 때문인지 모를 얼굴이 빨갛게 된 그녀가 이제 괜찮다며 수줍게 손사레 치고 있었다.
혹여 화상이라도 입었을까 나도 모르게 10분이 넘게 얼음찜질을 해주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참이나 얼음을 대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더 빨개진 피부와 꼼지락 거리는 발가락이 보였다.
"간지러워서요..."
"아...!"
작게 용기내어 꺼낸말에 민망한 정적이 흘렀다.
어색하고도 민망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흘린 음료와 쓰레기를 치우고 카운터로 돌아오자
그녀가 앞에 서있었다.
고맙다며 이젠 괜찮다며 다음에 또 오겠다 말하고는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라떼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라는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온다고 했으니까 조만간 다시 와주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편했다.
신경을 쓴다 한들 내가 어쩔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말이다.
비는 그쳐가고 해가 점점 지고 있을 무렵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예 사장님."
"형이라 하라니까 거... 아무튼 요새 매출도 잘나오던데 혼자서 괜찮아?"
"뭐 바쁠때 말고는 그럭저럭 운영할만 합니다."
"그래도 한명 더 있으면 편하겠네?"
"그렇긴 하죠"
"오케이~! 우리 점장님 안힘들게 내가 도와줘야지, 내일 기대혀!"
"에이 점장은 무슨... 아니 근데 내일 뭐 있어요?"
"아아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내일 되면 알꺼야 끊을게!"
'뚝'
촉이 이상하다.
분명 나쁜일은 아닌거 같은데 무언가 불안한 그 느낌,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