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빴다. 책 같은 것은 읽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 과제로 억지로 책을 읽어야 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독후감을 적을 필요가 전혀 없었던 사람. 무거운 발을 이끌고 서점에서 들어가 책을 산다. 하지만 책을 책상에 던지고는 일주일간 읽지 않는다.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온다. 초조해진다. 낸 학비가 아깝기도 느껴진다. 간단하게 읽어볼까?
아르바이트하러 가기 전 짧은 시간이 남았다. 과제 제출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사람들이 북적한 스타벅스에 들어가 두 명 자리의 소파 자리에 혼자 앉아 책을 꺼내 본다.
여전히 읽기 싫다. 그래도 한 줄이라도 읽기 시작해 본다. 몇 줄 읽다 보니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쫓아가 봤다. 의미가 있는 각각의 단어들이 합쳐져 문장이 되고 머릿속에서 그림이 떠오르고 곧 영상이 되어 재생된다.
책 속의 주인공은 불안하다. 그는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아들,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방금 처음 읽어 본 주인공의 감정에 내 감정이 섞여 들어간다.
해결 방법이 간절히 필요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행히 주인공 주위에서 그 문제에 대해 잘 알던 사람이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뻔하면서 이상한 해결책이다. 정말 통할까? 반신반의하며 실행에 옮긴다.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생겼다. 마음속에서 예상치 못한 큰 덩어리가 녹아 내려져 가는 느낌이다. 뭉클한 마음이 떠오른다. 주인공의 문제 해결과 함께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아차! 정신 차리자! 여기는 번화가에 있는 스타벅스 안이다.
눈에 흐를락 말락 했던 눈물을 휴지로 몰래 닦아보지만 이미 생겨난 감정이 주인공과 함께 흘러 넘어온다.
이게 뭐지? 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연극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를 본 것도 아니었다. 단지 페이지도 얼마 안 되는 작은 책을 읽은 것뿐이었다. 나는 잠깐이지만 분명 어딘가에 갔다 왔었다. 그 순간에 난 그곳에 있지 않았다.
책이 나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공간으로 데려가고 빠트리고 흠뻑 적시고 왔다.
이것이 내가 처음 겪은 이야기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