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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너무나 사랑했고,
게시물ID : panic_134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야기보따리
추천 : 4
조회수 : 182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3/25 09:30:39
혜주가 재열 선배와 결혼하기로 한 것은 그 해 가을이 다 갈 무렵이었다.
혜주는 내 대학 동기로 4년을 줄 곧 같이 다녔다. 우리가 2학년때 재열선배는 복학한 예비역이었는데
과 동문회때 혜주를 보고는 졸업할 무렵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인내와 끈기로 혜주를 따라다녔다.
혜주는 얼굴이 좀 까무잡잡하고 키가 작은 -일명 흔한 스타일이었는데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었는 지
모르겠다. 머리 탓이 아닐까?! 그 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머리를 길어 꽤 덕을 보곤했다.
머릿결 하나는 어디 내 놔도 정말 부럽지 않았을테니... 그에 비해 재열 선배는 잘생긴 남자였다.
지나칠 정도로 .... 큰 키에 잘 잡힌 체격, 그 조각 같은 외모 ... 정말 콧날은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세운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건 그 눈매 .. 그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을 듯한 서늘하면서도
매혹적인 다정한 눈매였다. 나는 재열 선배를 사랑했다. 그래서 혜주를 닮아 보려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내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고 나는 혜주의 부케를 받았다....... 


결혼하고 한 동안 연락이 없던 혜주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다음해 봄 무렵이었다.
사무실로 전화가 온 것이다.

"네, 신 지연입니다."

"...저어... 지연이니 ? .. 나 혜주야 .. "

"어머... 기지배 , 이게 얼마만이야.. 신혼 재미가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친구도 안 찾는 거 보니.."

"........."

"어머 혜주야...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저어 .. 괜찮으면 지금 나 좀 ... 만나 줄 수 있니?"

"지금 ?"


좀 퇴근하기는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까지 넘기기로 한 보고서는 다 써두었고,
과장님께 가져다만 드리면 될 것이다 .


"그래 ... 어디서 볼까 ?"


우리는 우리가 학생 때 잘 가던 그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그 곳은 변함이
없었다. 늘 재즈가 흐르고 커피만 시켜도 케이크이며 과자를 듬뿍 안기시던
주인 아저씨 ... 그리고 우리가 늘 감탄하던 커피향 ... 변한 것은 혜주 뿐이었다.


" 너 혜주 맞아 ?"

나는 몇 달만에 보는 친구에게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통통하던 몸은 깡말라 뼈만 앙상했다.
나는 그 애의 팔뚝을 보고 어린아이보다 더 가늘어 진데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얼굴빛 , 희다못해 부른빛까지 도는 데 그건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에나 떠도는 그런 것이었다.


"맙소사...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너 어디 아픈 거 아냐 ?"

혜주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말이 없었다. 나는 자리를 그 애 옆으로 옮겨 앉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 어떻게 된거지 ? 설마 재열 선배가 너를 이렇게 만든거야 !?"
"아냐 .. !!"

혜주는 펄쩍 뛰었다. 손을 막 내젓고 고개마저 저으며... 그리고는 불안 한듯이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 괜찮아. 내가 들어 줄 테니 다 말해봐... 걱정할거 없어.. 응 ?"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병아리 발정도 밖에 안되는 여위고 작은 손이 너무나 찼다.


"그 선배.. 미쳤어.. 완전히 미친놈이야.. 지연아 나 어떡하면 좋아.. 무서워 죽겠어..
도망갈 때도 없고.. 어디로 숨던 나를 찾아 낼 거야.. 그리고 내가 가장 무서운건.. 그얘기 ,,
파리로 유학을 간 일본인 학생이 있었는데.. 어떤 파리 여자랑 사귀게 되었대 .. 그리고
선배는 우리 아기를 ...."

그 애는 갑자기 말을 막 해대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천천히 해봐... 혜주야... "

그 순간 혜주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그 얼어붙은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어떤 -뭐랄까 .. 그것을 말로 옮길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지겹고 끔찍한 듯한 하지만
이젠 지쳐버려 도망도 칠 수 없는 - 감정들로 가득찼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재열 선배가 와 있었다.

" 어 지연아 오랜만이구나..."
"싫-----어 , 이 살인 마 !!"

갑자기 혜주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카페 바닥에 뒹굴면서 가까이 가려는 나를 걷어차고
일어서더니 그에게 테이블 위에 있던 컵, 재떨이 등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서서 그녀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재떨이가 이마에 맞아 피가 눈가로 흘러 내렸지만
닦지도 않았다. 소리소리 지르며 난동을 부리던 그녀는 맥이 풀렸는지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재열 선배는 혜주에게로 갔다. 그리고 다정히 그녀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힘없이
손을 내 저으며 그가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재열 선배가 주머니에 알약을 꺼내 그녀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만 내 저었다.


"뭐예요 ? 재열 선배. 혜주, 왜 이렇게 된 거예요?"

"... 미안하다 . 지난 겨울에 크게 아팠던 후부터 이렇게 발작을 일으키곤 해.
너 한테 면목이 없구나 , 지연아 ...."


재열 선배는 카운터로 가더니 사과를 하고 신용카드를 꺼내 부서진 물건들에
대한 값을 치렀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자란 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나는 그 손길에 흘칫 놀랐다. 그리고 그는 혜주를 입고 있던 양복 웃옷으로 싸더니 번쩍 안았다.

" 정말 미안하다. 지연아 혜주가 좋아지면 우리 밥이라도 한 번 먹도록 하자... "

혜주는 풀린 눈을 하고는 재열 선배에게 안겨 차로 실려 나갔다. 그러나 나가는 순간..
나를 향해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지연아... "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좀 살려,, 줘 ,.. "



그 일이 있고 나는 혜주에게 어떻게든 연락을 해 보려 했다. 하지만 내가
전화 할 때마다 재열 선배는 혜주가 잔다던가 아프다고만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창회가
열렸다. 나는 혹시나 그들 부부가 올까 해서 참석을 했으나 허사였다. 둘 다 아무도 오지않았다.
덕분에 여자 친구들과 모처럼 실컷 떠들게 되었다. 그들이 모르는 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을 듯 했다.

"....어머머,.. 근데 지연아 너 머리 많이 자랐다?"
"얘 재열 선배 좋아했었잖아. 그 선배가 혜주 좋아하니까 비슷해 보일려구 그랬던 거 아니야?!"
"..아니야.. 얘.."
"하긴 쟤 헛물 켠 거지. 그 선배 학교 다닐 때부터 혜주한테 끔찍 했었잖아 ?"
"맞아, 맞아. 그거 눈꼴 셔서 ... 우리 염장 많이도 질렀지... 레포트며 숙제 일체 다 해주고
맨날 등, 학교 다 시켜 주지. 걔 한번도 지 돈으로 밥 사먹은 적 없을 껄?!"
"그것도 어디 학교 밥이냐? 지가 먹고 싶다는 것은 뭐든 다 사주곤 했잖아? 그 뿐이야?
옷이며 가방, 하다못해 미용실 비용까지 다 대 주었잖아.."
"기지배... 복도 많지... 솔직히 걔가 뭐 볼 꺼 있다고 예쁘기를 하냐.. 집안이 빵빵하길하냐...
재열 선배가 뭐가 씌운거지 싶다니까..."


동창들의 험담은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혹시 그들이 혜주네 부부에 대해서도 뭔가 알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 요즘 어떻데? 혜주네 말이야.. 결혼하면 남자들 많이 변한 다잖아.. "

"말도 마셔... 나영이 걔네 동네 살잖아... 결혼하고는 더 하대더라 .. 근데.. "
"근데 뭐 ?"

"혜주가 지난 겨울에 유산을 했대. 계단에서 굴렀다나?! 그 이후로 좀 애가 이상해 졌다더라..
거의 미친X처럼 되어 버렸다더라구 .. "



그 뒤 얼마 후 나는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그 애 생각을 하지못했다.
그런데 어느날 재연 선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 지연아 .. 나 좀 볼 수 있을까 ?"

선배를 만난 것은 저녁 무렵, 그 카페에서 였다. 그는 여전히 잘생긴 남자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그의 앞에 앉았다.

" 무슨 일이세요? 아참 혜주는 좀 어때요?"

"사실은.. 지연아.. 혜주가 사라졌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그게 무슨말이에요 ?"

"그때 널 만나러 오던 거처럼 곧 잘 사라진곤 했었어... 난 그때마다 찾아 나서곤 했는데..
이번에는 찾을 수가 없어.. 어떡하면 좋겠니?"

그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그가 안쓰러워졌다.

"찾을 수 있을 꺼 예요... 재열 선배 .. 기운 내세요.. "

그의 옆자리로 옮겼다. 선배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혜주가 진짜로 미쳐서 사라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에게도 재열 선배를
얻을 기회가 생기는 것이아닐까 ?'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라만 보았던 사람... 친구를 위해서 입도열지 못했던..
내감정들,, 그 감정들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채 가슴 깊은 곳에서 그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가 내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내 심장은 두근거리다 못해 까맣게 타 버릴 것만 같았다.

'조금씩 다가가야 해 ,, 이 사람이 얼마나 혜주를 사랑했는지 내가 제일 잘 알잖아?! 조금씩
그 애를 잊게 하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면..."

" 지연아 ? 괜찮니 ? "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내가 사랑한 그 눈매- 서늘하면서도 매혹적인
다정한 눈매로 나를 쳐다보는 것 이었다. 얼마나 황홀한 순간이던가.. 하지만 난 맘을 단단히
먹고 그에게 말했다.

"괜찮으면 오늘 선배 집에 가보면 안될까요?"
"왜?"
"혹시 무슨 메모라던가.. 단서가 될 만 한 게 있을 수 있잖아요?"
"내가 샅샅이 뒤져봤는데.. 별로 도움 될 것이 .. "

나는 핏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는 남자잖아요? 여자심리를 그렇게 잘 알아요? 게다가
난 혜주의 제일 친한 친구라고요. 베스트 프렌드!!"

내 말에 그도 웃었다.

"맞아 . 너는 언제나 혜주의 가장 좋은 친구였지.. 그래 가 보자 .. "

그들의 집은 중대형 아파트였다. 집을 보니 혜주가 더욱 부러웠다. 세상에...
이렇게 잘 해놓고 살면서 집들이 한 번을 안 하다니... 나 같으면 자랑하려고
동네방네 전단 뿌리고 다니면서 4박 5일 연속으로 집들이하겠다..휴우..
근사하고 다정한 남편에 훌륭한 집에... 내가 집을 두리번거리며 한숨을 쉬어 대자,
재열 선배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홈 바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자 한 잔 하고 찾아보지..그래? 그만 좀 두번거리고.. "

여전히 다정한 눈매... 나는 쪼르르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그의 부인이라도 된 것처럼 뿌듯했다.
특히 내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 그가 입 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웃곤 했는데 그 모습이
내겐 그렇게 보기 좋을수가 없었다. 그러다 할 얘기가 떨어지자 나는 그에게 아무 이야기나
좀 들려 달라고 했다.

"혜주는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늗네 지연이는 좋은 가보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눈매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혜주를 너무 사랑했어. 그 애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애 없이는 살수 없다고
느꼈지... 하지만 그 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 봐 ..."

나는 그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시간을 그 애와 함께 하길 원했어.. 늘 내 곁에는 그 애가 있어야 했어.
난 그 애가 없는 1분도 견딜 수 없었으니까. 언제부터인지 혜주는 그런 나를 갑갑해 하기 시작했어.
나를 떠나고 싶어했지. 그리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게 말했어. 아이를 낳을때까지 친정에
가 있고 싶다고.. 어느새 짐까지 꾸려 놓았더군.... 나는 그녀가 가는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엇어.
그녀를 잡는다는 것이 그만 그녀를 계단에서 밀치고 만거야 ..."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얘기를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

"아이가 죽어버렸어... 나와 혜주의 아이가.. 그때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 늘 혜주에게 말하던
이야기 였는데 말이야... 나에겐 아주 인상깊은 이야기 였거든.. 어느 일본인 학생이 프랑스로 유학을
갔대.. 그리고 파리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거지.. 하지만 그녀는 자유분방한
파리지엔느 중 하나였던 거지.. 절망한 그 일본 학생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의 물음은 나로 하여금 어떻게 했는 대요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했다.


"어... 떻게 했는 대요?"

"그 여자를 갈아서 먹어 버렸더군.. 먹어버릴 정도로 사랑한 사람이라.. 난 이 이야기를
처음들었을때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 하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니 동감이 되더군..
난 아이와 그녀를 너무 사랑했거든..."

" .. 그렇다면 당신 !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 니가 추측하는 게 맞아... 아이는 ... 아니 혜주도 .. 그녀는 나를 떠나고 싶어했고
우리가 늘 함께할수있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었거든... 나는 그녀가 나와 늘 함께 하기를 원했으니까.."

나는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도 조용히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 그.. 그런데 .. 왜 나에게 그 이야기를 다... 해주는 거죠,,, ? "


그는 내가 보기 좋아하던 입 꼬리만 살며시 올린 채 미소 지으며 말했다.


" 너는 혜주의 가장 좋은 친구니까... 난 혜주가 원하는 것은 다해주고 싶거든...
그 애가 외롭지 않게 해주고싶어... 나와 아기와 너만 있으면 .. 혜주는 행복할꺼야..."





그는 서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 서늘하고 매혹적인 다정한 눈매- 내가 사랑한
그 눈매로 나를 바라보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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