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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하루에 섭취해야 되는 칼로리가 몸무게의 절반이다. 칼로리 소모가 큰 쥐는 몸무게의 절반에 해당하는 먹이를 섭취하지 못할 경우 죽고 만다.
*
찍찍, 찍찍.
고개를 가만히 들자 오래된 나무판자로 만든 천장이 보인다. 내 눈에 천장에 달린 조명이 파르르, 애처롭게 떨려오는 모습이 들어온다.
다다다다닥.
천장 위에서 들려오는 네발 달린 짐승의 뜀박질 소리. 벽에 걸린 동그란 벽걸이 시계는 밤 12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쥐새끼가 또 시작이네.’
꿈을 품고 서울 노량진의 고시원에 들어온 지 어언 4개월째. 가장 저렴한 고시원이 나타나 기쁜 마음으로 입성했건만 저렴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쥐새끼. 어디서 기어들어왔는지 모를 쥐새끼가 고시원의 온 천장을 누비며 소음을 유발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알바생, 주인에게 쥐를 잡아 달라 청원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 같았다.
“싸게 들어온 주제에 바라는 게 뭐 이리 많아?”
그들은 쥐새끼에 대해 무관심했다. 내가 청원을 할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 속내가 드러났다.
‘그럼 나가든지,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가만히 천장을 응시했다. 4개월이나 인내하며 지내왔지만 오늘은 반드시 끝을 볼 것이다. 내 창창한 미래를 쥐새끼 때문에 망칠 순 없으니까.
찌직! 찍찍! 찍!
쥐가 천장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우당탕탕,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걸렸구나.’
며칠 전, 주인 몰래 나무천장을 뜯어내 천장 안쪽에 쥐덫을 설치했다. 육포와 함께.
쥐약을 풀어 넣을까, 고민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녀석을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
천장의 나무판자를 떼어내고 핸드폰 조명으로 주변을 비췄다. 그러자 쥐덫에 뒷다리가 걸린 채 고통에 신음하는 회색 쥐가 보였다. 난 쥐에게 물리지 않게 신중을 기해 쥐덫을 붙잡았다. 쥐가 발버둥 쳤지만 내 손을 물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곤 쥐가 걸린 쥐덫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이곳은 내 세상이다. 내게 부여된 개인 호실인 205호. 다리를 간신히 펼 수 있는 매트리스 침대 하나와 간이 책상, 작은 옷장이 전부인 곳.
난 두려움에 안절부절 못하는 쥐를 내려다봤다.
‘자,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치우지?’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불에 타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그동안 미물 따위가 인간을 괴롭게 했으니 이렇게 죽는 것이 응당 마땅하리라.
“저를 살려주시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환청인가? 요 며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노량진 거리를 걷다 휘청거리기도 부지기수. 그런데 방금 쥐가 말을 했다.
‘배가 고프니 환청이 들리네. 내일은 꼭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난 쥐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라이터로 화형식을 거행했다.
“후회할거다! 지금 당장 멈추라고!”
쥐가 뭐라 더 말한 것 같지만 들리지 않았다. 쥐는 찍찍, 소리를 내며 조금씩 타들어갔다.
*
난 어느 거대한 도서관에 있다. 온 사방이 깜깜했지만 천장 가운데 조명 하나가 은은히 도서관을 비추고 있었다. 책장마다 온갖 종류의 책이 꽂혀 있는 것도 보였고.
꼬르륵, 허기진 소리가 크게 울렸다. 민망한 것도 잠시, 책장에서 책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몇 초가 지났을까? 책에서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왔다.
꿀, 고기가 철판에서 익는 냄새, 상큼한 오렌지 향기... 난 이성을 잃은 채 널브러진 책 더미에 뛰어들어 책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내 후각은 종이를 군침 도는 음식으로 인식했지만 혀는 종이를 종이로 인식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찍찍, 쥐새끼 소리가 몇 발자국 거리에서 들려왔다. 난 종이를 한입 가득 우겨넣은 채 책장을 쓰러뜨리며 쥐새끼를 찾아다녔다. 어느 커다란 책장 앞에 우뚝 선 나는 소리의 근원지가 이 책장 뒤편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양손으로 책장을 거칠게 넘어뜨리자 한 나체의 남자가 엎드려 있었다. 마치 4족 보행 짐승의 모습을 한 남자가.
찍찍, 소릴 내며 나체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빨간 쥐의 눈을 한 남자는...
바로 나였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손을 매트리스에 갖다대보니 축축했다. ‘뭐 이딴 꿈을 꿨지?’ 기분 나쁜 꿈이었다.
난 손을 뻗어 천장등 스위치를 눌렀다. 달깍, 소리와 함께 좁은 방이 환해졌다. 벽에 걸린 벽걸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가만히 방바닥을 내려다봤다.
없었다. 전날 화형식의 주인공이었던 쥐새끼가. 녀석의 시체가 쥐도 새로 모르게 사라졌다. 방문은 잠겨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비좁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꼬르륵, 배에서 난데없이 공복감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유난히 컸다. 28년 인생동안 이렇게 우렁찬 꼬르륵, 소리라니. 배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깊숙한 우물에서 기어 올라오는 쥐새끼 마냥 빨랐고 거침없었다.
으윽, 내장이 꼬인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완력이 좋은 사내가 내 뱃속에 손을 집어넣어 위를 걸레마냥 짜는 기분이었다.
2층 고시원 학생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냉장고를 벌컥 열었다. 내 이름 ‘김민수’가 적혀진 스티커가 붙은 음식통이 보였다. 아껴먹으면 한 달 정돈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런데 내 위를 쥐어짜고 있는 ‘허기’라는 이름의 사내는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달깍, 달깍, 달깍. 음식통을 차례대로 모두 열었다. 난 군침을 흘리며 음식을 모조리 입에다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다.
*
꼬르르륵.
205호에 처박힌 채 매트리스 위에 쪼그려 앉아있다. 음식을 3통이나 비웠다. 그럼에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후회할거다. 지금 당장 멈추라고!”
쥐가 살려달라며 절규했던 말이 떠올랐다. 녀석을 죽여 버려서 저주라도 받은 것일까? 이 알 수 없는 공복감은 무엇일까? 지금 내 손에는 204호 고시원의 방에서 슬쩍한 10만원이 쥐여져있다. 사실 내가 준비해둔 3통의 음식 말고도 다른 고시생들의 음식도 조금씩 먹었다. 모조리 먹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을 부여잡은 덕에 그 선에서 멈춘 것이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손에 쥐어진 이 10만원. 이것은 내가 생각한 기준에서 선을 넘은 것이다.
난 어느새 편의점 냉동, 냉장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카운터에 간편 조리 음식을 와르르 쏟아내자 알바생의 표정에 피곤이 깃들었다.
“포장해 가시는 거죠?”
“아뇨, 여기서 다 먹을 건데요?”
편의점 간이 식탁 위에 간편하게 조리된 음식들을 펼쳐 놨다. 가지각색의 냄새를 풍기는 냄새가 내 위를 자극했다. 난 누구에게 뺏길세라,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다 밀어 넣었다.
약 20봉지에 가까운 음식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내 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알바생의 표정이 뜨악했다. 나 또한 그 많은 음식이 모조리 내 입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더 믿기지 않는 사실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는 것이다. 난 대강 뒷정리를 하곤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205호. 당신이 제 돈 훔쳐갔죠?”
고시원 2층에 올라오니 고시생들이 복도에 모여 한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시선을 모은 주인공은 나였고, 날 추궁한 것은 204호 남자였다.
“증거 있어요? 나라는 증거 있냐고.”
물론 없을 것이다. 이곳엔 CCTV가 달려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각자 한 가지씩 훔쳐봤을 거 아닌가? 새삼스럽게 군중을 동원해 추궁이라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가 아니라 꿈을 쫓는 요셉이 아니던가요? 서로 이렇게 분탕질 하지 맙시다.”
내가 봐도 멋진 멘트. 하지만 뻔뻔하다는 양심의 가책을 차마 내려놓을 순 없었다. 난 어물거리며 고시생들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그럼 제 방에 있던 이건 뭐죠?”
204호 남자가 시커멓게 탄 무언가를 들어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 아니 잃어버렸던 것.
내가 불태웠던 회색 쥐의 사체였다. 녀석의 입에 하얀 종이 쪼가리가 물려있었는데, 204호 남자는 종이를 손에 쥐고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김민수. 내 음식통에 붙어있던 음식 주인 식별 스티커 종이였다.
“김민수, 204호 당신 이름이죠? 주인 아저씨한테 다 알아봤어요.”
“억지부리지마! 이거 당신이 주작한 거...”
상황을 지켜보던 주인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김민수 학생. 그동안 즐거웠네. 준비할 시간은 따로 줄 테니까 지금 당장 방 빼. 잔여금은 자네가 짐을 다 챙기고 나갈 때 줄게.”
분란을 싫어하는 주인은 이 상황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했다. 내가 나간다 한들, 또 다른 고시생이 바로 자리를 채워줄 테니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고시생들의 눈빛이 빨갛게 보였다. 꼬르륵, 또다시 허기가 졌다.
어디선가 잘 익은 고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침샘이 고이며 내 시선은 냄새의 근원지를 쫓았다. 후각이 알려준 종착지는 뜻밖이었다. 고시생들, 즉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
캐리어를 열어 옷장에 걸린 옷을 집어넣었다. 간이 책상에 세워둔 전공서적도 하나둘 손에 들고 캐리어에 넣었다. 또다시 꼬르륵, 공복감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고시생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르겠다는 기가 찬 망상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10만원치가 되는 음식을 입에 우겨넣었음에도 공복감이 사라지질 않으니.
‘이게 다 그 쥐 때문이야.’
쥐새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녀석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텐데.
찍찍... 찍찍...
고개가 절로 천장으로 올라갔다. 또다시 찍찍...
녀석이다. 난 주저 없이 천장을 뜯어 고개를 집어넣었다. 새까만 쥐. 아니 새카맣게 탄 쥐가 두발로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어둠속에서 붉게 빛나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또다시 꼬르륵... 머릿속에 허기짐과 분노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난 손을 뻗어 녀석을 꽉 움켜쥐었다. 녀석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내 눈을 또렷이 노려봤다.
와그작, 난 녀석의 머리부터 씹었다. 두개골이 으스러지고 비릿한 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어느새 몸통까지 씹어 먹어버린 나는 남겨진 꼬리부분을 퉤, 하고 뱉어버렸다.
여전히 배가 고팠다. 공복감에 절로 찌그러지던 내 눈에 또 다른 쥐가 보였다.
난 천장 위로 몸을 구겨 넣어 천장 마루 위에 네발로 섰다. 쥐가 따라오라는 듯, 천장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난 홀린 듯 녀석을 따라갔다. 공복감이 이유일까? 알 수 없는 갈망이 이유일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장 위에 나타난 쥐를 계속해서 먹어치우며 공복감을 없애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젠 다른 것을 먹고 싶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내 눈에 바닥에 놓인 육포가 보였다. 난 군침을 흘리며 슬금슬금 다가가 육포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뒷다리에 커다란 고통이 찾아왔다. 마치 무거운 쇠기둥 하나가 내 다리를 짓이기고 누른 기분이었다. 그때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은 “악”이 아닌 “찍” 소리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뒤돌아보자 쥐덫에 내 다리가 걸려있었다. 아니, 저게 내 다리인가...
이상했다. 덫에 걸려있는 것은 사람의 다리가 아닌 회색 털로 뒤덮인 동물의 뒷다리였다.
다그닥다닥, 천장 아래가 들썩 거리며 커다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204호 남자였다.
“잡았다. 이 쥐새끼.”
남자의 눈이 붉게 빛났다. 난 남자의 손에 붙잡히며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린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가 아니라 꿈을 쫓는 요셉이 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