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혼인동맹으로 인한 신라와 일본.백제.가야(三國)결혼자들의 고통.
게시물ID : history_301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윗김
추천 : 2
조회수 : 16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7/14 11:24:58
옵션
  • 창작글

혼인동맹으로 인한 신라와 일본.백제.가야(三國)결혼자들의 고통.

경주김씨 백촌공파 종보.

2021. 7. 14.

 

(들어가면서)

현대인들은 삼국시대를 너무도 먼 1,500년전 과거로 보는 시야가 있지만 사실은 현대에도 사건의 장소가 커졌다는(바꾸어지고) 것일뿐 내용은 비슷하다. 현대에는 유달리 중동에서 수년에 한번씩 정권이 바꾸고 전쟁이나고 아프리카는 기근, 가까운 일본은 지진 해일 핵발전소 사고등등 시끄러운데, 요 근래 한반도 평화는 언제 다시 점화될지 모르는 불안정 평화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유념해야할 것이다.

 

(본론)

*왜와 혼인 외교를 하다 ( 31203() )

3(312) 3월에 왜국왕(倭國王)이 사신을 보내 자기아들을 위해 혼인을 청하니, 아찬(阿湌) 급리(急利)의 딸을 왜국으로보냈다(1).

(문제발생) 37(서기 346) 왜군이 갑자기 풍도에 이르러 변방민가에 침입하여 약탈했다. 그들은 다시 금성을(경주)를 에워싸고 급습했다. -중략- 이에 적군은 군량이 다하고 피로하여 퇴각하기 시작했다.왕은 강세에 명하여 굳센 군사로 추격하게 하였다.

 

*백제왕이 혼인을 청하자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내다 ( 49303() )15(493) 3월에 백제왕 모대(牟大)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 왕은 이벌찬(伊伐湌) 비지(比智)의 딸을 보냈다(2).

(발전) 한동안 백제와 신라는 동맹으로 강대국 고구려에 대하여 서로를 돕는다.

 

*가야국의 왕이 혼인을 청하다 ( 52203() )

9(522) 3월에 가야국(加耶國)의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므로, 왕이 이찬(伊飡)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보냈다(3).

(문제발생) 가야국(加耶國)의 왕이 누이를 보냈다: 일본서기(日本書紀)17 계체천황(繼體天皇) 23(529) 3월조에 왜가 다사진(多沙津: 경남 하동군)을 부여(扶餘: 百濟)에게 내려주자, 가라(대가야)가 신라와 한편이 되어 왜를 원망하였고, 가라왕이 신라왕녀(新羅王女)를 아내로 맞아 드디어 자식을 두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또한 여기에 경남 창원에 위치한 탁순국(卓淳國)의 왕 또는 유력한 지배자로 보이는 아리사등(阿利斯等)이 신라인이 가라지역에서 옷을 바꾸어 입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반발하여 신라에서 가라왕에게 시집보낸 왕녀를 되돌려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가라왕이 이를 거절하매, 신라가 포나모라(布奈牟羅) 5성을 쳐부수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종래에 법흥왕 93월조와 이 기록을 서로 연결하여, 백제가 다사진을 공격하여 빼앗자, 5223월에 대가야가 신라에 접근하여 혼인동맹을 맺었고, 일본서기(日本書紀)기록에 근거하여 신라인이 옷을 바꾸어 입은 문제를 둘러싸고 대가야와 신라가 갈등을 빚어 결국 529년에 혼인동맹이 결렬된 것으로 이해하였다(이영식).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29 경상도 고령현 건치연혁조에 인용된 최치원의 석순응전(釋順應傳)에서 이뇌왕과 비지배(비조부)의 딸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월광태자(月光太子)라고 전하는데, 종래에 본서 권제34 잡지제3 지리1 강주 고령군조에서 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전하는 도설지왕(道設智王)이 바로 월광태자라는 견해를 제기하였다(金泰植).

 

*백제 성왕 공주와 신라의 진흥왕이 결혼을 하다.

성왕 31(서기 553)가을 7,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동북변을 빼앗고 신주를 설치하였다. 겨울 10월 왕녀를 신라로 시집 보낸다.

성왕32(서기 554) 가을 7,왕은 신라를 기습하려고 친히 기병과 보병 5천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가 복병을 두고 싸우므로 군사들이 혼란에 빠지고 왕은 해를 입어 승하하였다. 이에 시호를 성왕이라 하였다(4).

(문제발생) kbs tv 역사스페살에 의하면 성왕은 사로잡혀 참수를 당하고 그의 딸이 거주하는 신라의 궁궐의 사람 왕래가 심한것에 목을 묻어서 많은 관료나 왕이 밟고 지나가게 했다고 한다. 백제의 공부로 시집온 성왕의 딸은 마음이 어떠했을까?

 

(결론) 삼국시대에 2.3년에 한번씩 전쟁은 꼭 하고자해서 그런 것은 아닌것이라고 본다. 왜의 흉년, 중국의 정부 교체에 의한 한반도 위협, 삼국 내부에서의 갈등으로 인한 국민 탈출에 의한 전쟁 및 기근등 풍수해 ..... 국가간의 결혼 동맹이 가동된 것은 이러한 전쟁을 회피하는 목적으로 보이고, 이 사이에서 희생양이된 많은 왕실 가족 및 고위관리 가족의 고통은 참으로 안타깝게 보지 않을수가 없는 것 같다.

 

---------------------------------------------------

(1)삼국사기, 1 신라본기2 홀해이사금 3(312).

(2)삼국사기 ,26 백제본기4 동성왕 즉위년(479).

(3) 삼국사기 , 4 진흥왕 9(522).

(4) 삼국사기 , 26 백제본기 성왕.

2017052101925_0.jpg

 

DSC05584.jpg

 

185147194A5F9FD21D.jpg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