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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생각해 드립니다.
게시물ID : panic_1023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순정남이광철
추천 : 2
조회수 : 86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06/30 13: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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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김무상 씨는 골치가 아팠다. 세상이 발전해서 AI가 삶을 쉽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AI상용화시대인 오늘날이었다. 그런데 점심으로 뭘 배달시킬지 고르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배달음식 사이트에서 중화요리 리스트만 몇번을 헤메는지 몰랐다. 짜장 먹을지 짬뽕 먹을지를 고민해 주는 AI는 없는걸까? 역시 이건 역사적 난제야...

그런데 역시 그런 수요를 파고든 개발자가 있었던 걸까? 오른쪽 아래에 작은 광고 배너가 있었다. 머리를 감싸 안은 캐릭터 위로 다음과 같은 말 풍선이 그려져 있었다. '뭐 먹을지 고민하느라 머리아프네!' 무상 씨는 지체없이 클릭했다.

"생각 대행 서비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흡수한 AI가 당신 대신 생각을 해드립니다!" 무상은 무릎을 쳤다. "이거 좋겠는데! 한 번 써봐야겠다!" 당장에 무상은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리고 30분 후, 동영상 서핑을 하고 있던 무상의 원룸에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이요!" "예! 나가요!"

배달 온 것은 짬뽕이었다. '음? 짬뽕이네?' 무상은 짬뽕이 온게 싫지는 않았지만 왜 짬뽕이 온 건지 조금 궁금했다. '어떻게 해서 짬뽕이 오게 된거야?' 그러나 의문은 금방 깨달음이 되었다. 조금 후에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비오는 날에는 뜨끈한 짬뽕 국물이 최고니까!" 무상은 서비스에 가입한 게 너무 행복해졌다.

그날 이후로 무상은 고민이 생기려 하면 바로 대행서비스를 이용했다. 서비스는 편리했고 무상은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느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었다. 생각거리만 생기면 바로바로 서비스를 이용해 처리하니까 머리아플 이유가 없었다. 무상이 하는 생각이라고는 이런 것밖에 없어졌다. '아, 귀찮아. 이 생각도 생각대행 AI에게 대신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모든게 편해진 무상은 퇴근길 집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했다. 그런데 파란불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무상은 횡단보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경적 소리와 함께 차가 무상을 덮쳤다. 무상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차가 자율주행 자동차였던 것이다. 자율주행 AI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차가 사람을 그냥 치고 지나가다니! 무상의 유족들은 자율주행 자동차 회사에 책임을 물었다. "당신네 회사 개발자들이 사람을 죽였어!" 유족들은 AI가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무상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데이터 기록을 열람하기를 요청했다.

그런데 자율주행 자동차 회사측은 자체 감사 결과 자기들의 AI가 아니라 무상이 애용하던 생각대행서비스 AI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회사의 AI끼리 데이터를 연동하는 것은 법적으로 개인이 선택하도록 되어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터치 몇번으로 여러 AI를 연동하고 있었다. 근래 그러지 않는 사람은 사실 없다시피 했다.

마침내 밝혀진 AI들의 판단과정은 이랬다: 김무상은 자기 생각의 89%를 외주주는 생명체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김무상은 인간이 아니다. 동물이 도로에 나타날 시 속도를 줄이며 그대로 추돌한다. 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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