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저기.... 보고 싶다니까 보여주긴 하는데 진짜 들어올건가?”
방 2개에 제법 큰 욕실까지 딸린 집.
홀린 것처럼 집구경을 하고 있던 내게 부동산업자가 물었다.
불안한 듯 떨리는 그 목소리에 난 당당히 이야기 했다.
“그럼요. 진짜 살고 싶어서 말씀드린 거라니까요.
집값도 싸고 좋은 동네인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렇기야 하지만... 근처에 살던 사람도 찜찜하다며 이사 가는 판인데
하필 딴곳도 아니고 굳이 여길 찾다니 말이야.
자네도 다 알고 온거 아닌가? 이집에 누가 살았었는지.
나야 돈버는 입장이지만 찜찜해서 원.”
난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어때요. 전 여기가 마음에 드는데. 바로 계약할게요.”
부동산업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사람이 죽은 집에 살려하는 내가 이상해 보일수도 있다.
게다가 그냥 죽은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연쇄살인마의 집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난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이 집에 살고 싶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범 최만수.
아무런 이유도 없는 무차별 학살.
알려진 피해자만 열명이 넘어가는 희대의 살인마.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노인과 여자, 건장한 청년까지 가리지 않고 죽인 끔찍한 악마.
그가 체포되고 세상에 알려지자 모든이가 그의 잔혹한 행위에 분노했다.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희대의 연쇄살인마 라는 타이틀에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당당히 말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범죄물과 공포물을 좋아하는 나에겐 자극적이고 흥미 돋는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처럼 그에게 욕을 하는 한편 그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보니 쉽게 접하기 힘든 정보들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40대 중반. 독신. 일용직 노동자.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미혼모와 교제 중.
미혼모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으나 최만수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잦은 트러블 발생.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들의 행방 묘연.
그리고 얼마안가 미혼모와 결혼을 약속.
파면 팔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밖에도 많은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살해 방법, 피해자, 그리고 그와의 인터뷰 자료.
그러던 중 그가 남긴 말 하나가 나를 매료 시켰다.
“난 악마가 아니야. 특별한 사람도 아니지. 나도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당신들처럼.”
소름이 돋았다.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감정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난 그 살인마에게 미친 듯이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너무도 몰입한 나머지 미친짓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가 살면서 사람들을 끌고와 죽였던 그 집에서 살아보는 것.
보통이라면 몇 년간 주변이 텅 빈채 방치되거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겠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살 집이었다.
내심 섬뜩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살인마의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선 집을 그가 살던 그때의 모습으로 최대한 꾸며보았다.
다행히 그의 집을 촬영한 사진이라든가 모식도 같은걸 구할수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침대 위치와 인테리어. 심지어 소품까지 그와 비슷하게 구해서 장식했다.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었겠지? 그리고 커피를 한잔 하면서 묶여있는 희생자를 가만히 감상했을거야.”
그리고 욕실바닥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래 여기서 시체 핏물을 뺐어. 이 바닥이 피로 흥건했겠지.”
뒷덜미가 쭈뼛 서는 느낌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희열이 찾아왔다.
거실. 욕실. 부엌. 어딜 만져보아도 사람을 죽인 그 손이 닿았던 곳이다.
그 사실이 너무도 짜릿한 느낌이었다.
그도 나처럼 이 침대에서 일어났을까?
그도 나처럼 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즐겼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희생자가 죽어가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을까?
정신나간 상상인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너무도 즐거웠다.
한발더 나아가 이곳에서 뭔가 섬뜩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마저 생겼다.
죽은 영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던가 귀신을 본다던가 하는 것.
귀신타령 따위는 유치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한 나지만 지금 와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뒤 실제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 뭐야 이게 무슨냄새지?”
기분탓일까?
아침에 일어나보니 집에서 희미한 피냄새가 감도는 듯 했다.
사람이 죽은지는 제법 시간이 지났고 전문업체가 청소도 깔끔히 했을테니 냄새가 남지는 않았겠지만
언젠가부터 미묘한 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설마 아직 발견안된 시체 같은게 쳐박혀 있는거 아냐?”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욕실문을 열었다.
그리곤 눈앞에 보이는 충격적인 모습에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욕실 바닥엔 시체가 놓여있었다.
온몸이 꽁꽁 묶인채 꼼짝 않고 욕실 바닥에 놓인 남자의 시체.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너무도 당황했기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난 그대로 욕실문을 닫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공포심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왜 시체가 저곳에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에게 몽유병 같은게 있었던 것일까?
살인마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의식같은게 사람을 죽인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터무니 없었다.
난 심호흡을 하고 다시한번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욕실로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금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헛바람을 들이켜야 했다.
욕실 안에 아까봤던 시체는 없었다.
다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이번엔 머리를 진한 갈색으로 물들인 단발의 여자였다.
비릿한 피냄새와 젖은 시체가 내뿜는 기분나쁜 습기.
그리고 욕실 한켠에 서서 가만히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최만수였다.
있을리 없는 일이 너무도 생생하게 두눈을 파고들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난 혹여나 최만수와 눈이 마주칠까 숨소리마저 죽이고는 다시 문을 닫고는 침대속으로 파고들었다.
환각같은것일까?
진짜일리는 없었다. 그 미친 살인마는 지금 감옥에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도 생생했기에 단순히 헛것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방금 본 시체는 알려진 피해자가 아니었다.
알려진 자료들은 물론 어두운 경로로 유통되는 것들을 모조리 꾀차고 있었기에 확신 할 수 있었다.
즉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무언가가 아닌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 이라는 것이다.
이 집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이런것들을 보여주는 것일까?
순간 공포심이 잦아들고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현재 알려진 피해자는 총 12명.
하지만 경찰은 그게 전부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실종된 미혼모의 아들.
만약 이 집이 내게 사건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무도 몰랐던 피해자들의 모습역시 볼 수 있는 것이다.
“숨겨진 피해자... 어쩌면 숨겨진 희생자를 더 볼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 어쩌면 최만수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도...”
미혼모의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실제와 같이 생생한 시체의 모습이 끔찍하긴 했지만 그런 것 따윈 상관없었다.
난 주섬주섬 노트와 펜을 찾아들고 조심스레 욕실로 다가갔다.
“지금까지 열네명....”
난 정신나간 사람처럼 문을 여닫으며 기록했다.
언제나는 아니었지만 욕실문을 열다보면 드물게 시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가끔씩은 시체 곁에 있는 최만수의 모습도 보였다.
형체는 짧게는 몇초에서 길게는 몇분동안 유지되었다.
길지는 않지만 날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벌써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를 넷이나 찾아내었다.
게다가 아주 드물게 최만수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잘 가시오. 개인적인 원한은 없네만 나도 어쩔수 없으니. 용서하시오.”
담담한 말투로 희생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최만수의 말에 발끝부터 희열이 찾아들어왔다.
희생자들의 인상착의와 최만수의 모습 등을 꼼꼼하게 적어 넣으며 문을 여닫기를 수차례.
노트는 새로운 정보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갔다.
물론 이걸 경찰에 넘기는 멍청한 짓을 하려는건 아니었다.
딥웹 사이트에는 나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큰돈을 주고서라도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미친 녀석들.
이 노트에 적힌 것들은 아주 비싼 값에 팔릴 것이다.
“자 더 새로운걸 보여줘야지. 뭔가 더 보여줘.”
열심히 문을 여닫던 난 갑자기 나타난 최만수의 모습에 다시금 눈을 빛내며 노트를 꺼내들었다.
“언제까지 이럴 셈이냐? 이대로 가다간 얼마안가 들킬거야.
나도 더 이상은 무리다...”
최만수의 말이었다. 하지만 저 말은 바닥에 놓인 시체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최만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과거 내가 서있는 곳에 있던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곧 내 뒤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도와 주신다면서요. 시체는 잘 처리해 줄테니 걱정말고 당분간 몸 숨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믿고 부탁드리는건데 무슨말씀이세요.
저희 엄마가 울면서 부탁드렸을땐 맡겨만 달라고 하시더니 이제와서 발빼시려구요?”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려올 뿐.
다시 욕실을 바라보자 최만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실수인줄 알았다. 어쩌다 한번 실수를 한줄 알았어.
그런데 네가 이런.... 끔찍한 짓을 계속 할줄은....”
작은 웃음과 함께 다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제가 아들이잖아요. 불쌍한 아들이 감옥에 가도록 내버려 두실거에요?
아버지니까 마땅하게 도와주셔야지요.
저희 어머니를 사랑하신다면서요.
결혼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거짓말이었어요?”
최만수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곧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구나.
이러나 저러나 네가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으니 잘 숨어 있도록 해.”
곧 형체는 모두 사라졌다.
난 노트에 아무것도 쓰지못하고 멍하니 굳어있었다.
그 아들은 숨겨진 첫 번째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만수 역시 살인마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짜 살인마인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때, 내 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봤구나?”
이번엔 환각이나 환청이 아니었다.
곧 내 등에 불타는 듯 한 고통이 느껴졌다.
“신기하지? 나도 처음 봤을 때 엄청 놀랬어.
뭘까 저건? 시체를 하도 가져다 날라서 귀신이 씌였나?
그럴지도 몰라. 완전 저주를 받은거지.
이상하다니까?
사람들이 뭐에 씌었는지 경찰이고 청소업체고 왕창 왔다갔다 했는데도
천장에 있는 다락문은 못찾더라고.
그냥 아저씨 솜씨가 기가 막혀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고통에 신음하며 난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최만수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난 악마가 아니야. 특별한 사람도 아니지. 나도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당신들처럼.”
그 뒤엔 숨겨진 말이 있었을 것이다.
‘진짜 악마는 따로있지.’
그걸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