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내수경제가 작고 보잘것 없어서 외국상인들이 조선만 보면 군침을 흘렸을까요?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소를 파서 통상하려고 하고, 프랑스가 혹은 미국이 통상하려고 군대까지 보내서 전쟁을 했을까요 ?
1. 조선의 후기 상업
조선의 전기의 상업발달은 강력하게 국가가 억눌러서 상업발달 저해되었죠. 하지만 조선 광해군부터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국가가 과거와 달리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여력이 없었죠. 그 덕택에 공인이 등장하게 되고 사상의 발달이 촉진되어 집니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부터는 모든 물건을 공인으로 부터 주문받고 국가는 돈을 주고 그것을 사죠. 일단 돈의 흐름이 발생합니다 그려? 국가가 전국적으로 돈을 풀게 되자 전황이라는 것도 발생하고? 사주전도 발생하고 ? 상인들도 많이 발생합니다 그죠 ?
이때 등장한 상인들이 의주의 만상 평양의 유상 개성의 송상 경기도의 경상 동래에 내상 뭐 이렇게 납니다. 공인의 등장과 함께 수공업도 발전해서 수공업자들도 상인으로 나타나죠. 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이정도는 알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힘이 커져가니까 국가도 점차 누그러집니다. 의주의 만상이나 동래의 내상은 국경무역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죠. 그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왜를 잇는 무역을 하고 있었죠.
이때 당시에 물물교환이나 하던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일반 백성들도 돈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물건을 사고 팔았구요. 방납의 폐단도 이때쯤에 들어났었죠. 국가내수 경제가 코딱지만 했었으면 이런 일도 안일어났습니다. 즉 돈이라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 백성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돈을 광에 집어다 넣어버리니까 국가는 헬게이트가 일어났죠. 또 사주전이라고 해서 임의로 막 돈을 찍어넣는 현상도 발생합니다. ㅋㅋ
이정도면 국가내수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는 쑥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당시에서는 이미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명확해 졌다는 것이죠..
또 해외자금이 유입이 안되었다 ? 이 소리또한 들어가야 합니다. 대청무역과 대 일본 무역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청나라와 무역은 사행길로 이어지기도 했고 중강개시 후시 무역으로 많은 무역이 일어나고 있었던 시점입니다. 일본과의 무역도 마찬가지였구요. 그 잘난 도쿠가와 막부가 조선통신사를 보내 조선과의 교류도 증가하는 추세였죠.
2. 조선이 왜 망테크를 탔나 ? 일본은 왜 성공했나?
조선이 망테크를 탄건 국가내수 혹은 해외자금이 유입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이른바 결정적 시기인 1800년대 -1900년대에 즉 정조사후 세도정치라는막장 정치테크를 탄 것입니다. 결정적 시기에 정치가 썩어버리자 경제도 같이 망조가 든겁니다. 조선의 멸망은 바로 이때에 이루어졌죠. 정조 사후 백성의 고혈을 빠는 수령권이 절대화되고 그 수령을 뽑아내는 정치시스템이 세도정치가 득세를 하니까 조선이 망한 겁니다.
다른게 아니에요. 정치가 썩어서 조선은 망합니다. 고종황제도 조선의 힘을 되살릴려고 노력했지만 고종황제 본인도 매관매직하고 그랬으니까 말 다했죠. 정치가 썩으니 수령권도 썩고 수령권이 썩으니 돈 많은 상인들과 백성들은 탈탈 털린겁니다. 그래서 영정조의 부흥이 색바랜 영광이 되어버렸죠.
이에 반해 일본은 정치를 일신합니다. 일단 도쿠가와 막부 몰아내고 왕을 위시로 한 정치체계의 성립 그리고 개항으로 인한 선점효과 또 청일전쟁 당시의 일본의 근성발휘까지. 일본은 자기 분수를 정확히 알았다는게 사학과 교수님의 평이었습니다. 대학다닐때 사학과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일본은 자기 분수를 정확히 알아서 성공했고, 나중에는 자기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해서 패망했다구요. 그말이 정답이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의 일본의 국력은 청나라보다 밑이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 보다 우위에 설수 있었던 것은 정치가 깨끗하고 투명했고 군민이 일치되어 하나의 마음으로 전쟁을 임했고 청나라는 포탄도 팔아먹고 부패에 찌들었습니다. 청나라의 무기가 일본보다 약해서 진게 아니라 정세판단을 잘 하지 못하고 부패에 찌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에 반해 러일전쟁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러일 전쟁의 성공의 이유는 미영 자본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전략적 선택을 잘했습니다. 게다가 먼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에서 폭망하는 바람에 진 것이죠.
일본이 성공할 수 있던 것은 개항의 시기를 조선보다 먼저 열었고 그 운을 잘 이용할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선과 청은 보수파와 혁신파의 싸움이 지리하게 이어져 가고 있는 데 일본은 보수파를 완전히 제압하고 혁신파가 정권을 잡고 미영자본을 적절히 이용하고 대외정세판단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했다는 점이죠. 그때 개네들은 계산을 너무 잘했는데 말이죠.
반대로 일본이 망테크를 탄 이유는 무리한 정벌 계획이었습니다. 일본과 미국이 상대가 안되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습니다. 일본의 승기를 잡았을 때 조차도 우리는 승리를 통하여 미국의 양보를 얻어낸다. 이 정도 였죠. 당시 미국은 독일과 일본 양대 진영과 싸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조국의 별명답게 찍으면 나왔어요. 정세판단도 어두운 놈들이 반자이 돌격이나 하는 병림픽을 하고 있었죠. 반자이 돌격의 허구성은 39년의 노몬한 전투에서 나타나있죠. 반자이 돌격 우리는 땅크도 돌격해서 무찌른다 해서 주코프한테 사정없이 발리는 짓거리나 하고 있었죠. 그래서 망한겁니다. 다른게 아니에요.
3. 조선은 어떻게 했으면 성공했나?
조선은 대원군때라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즉 민비가 대원군을 밀어내기전 까지는 조선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아시다시피 폭망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뿌리깊은 부정부패 일관성없는 정책 보수파와 혁신파의 갈등 정세판단의 미스 이 4가지요소죠. 반대로 바꾸어 말하면 깨끗한 정치 일관성있는 정책 보수파와 혁신파와의 화합 정세판단을 잘했으면 그 꼴안났죠.
고종황제가 마지막에 정신차려서 한게 광무개혁입니다. 광무개혁을 운요호사건 개항이전 이후에만 했더라도 조선은 쉽게 일본에 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대륙세력을 적절히 이용하고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일관성있게 군제개혁과 경제개혁을 추진했으면 제2의 독일이 되었겠죠. 독일은 조선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서도 통일이룩하고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겠죠.
조선이 망한건 성리학 때문이 아닙니다. 유교사상이 망하게 만든게 아니구요. 조선이 망한건 저 위에 보여준 4가지 요소 덕분이죠.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 4가지를 잘하면 나라가 중급이상 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저 4가지가 함께 나타나있죠. 그래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 거죠. 저 4가지가 우리나라의 고질 병입니다.
결론
조선이 망한건 성리학때문이 아니다. 조선위정자들의 잘못이다. 라고 요약될수 있겠네요. 그리고 조선의 상업발달은 결코 미약하지 않았고 내수경제나 외화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나라여도 정치가 바로 서면 그나라는 벌떡 벌떡 일어납니다. 역사를 배우면 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