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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로 오랫만에 내려간다, 아니 오랫만이란 단어는 너무 짧은것같고 거의 10년만의 귀성인듯 하다
작정하고 어르신들께 드릴 선물을 뒷좌석에 가득 실었다, 먹을것 입을것 그리고 무엇보다 반겨하실 한명의 가장으로서 잘 해내고 있다는 증표
품에 애를 업은 아내가 보챈다 근처에 쉴데가 있으면 좀 쉬어가자고, 오랫동안 거친길을 달려서인지 어지러운갑다 난 빨리 가고픈데
에누리없이 차를 길목에다 세운다, 밖에서 몸을 한껏 당기는 아내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내 상전인데
등을 좌석에 기대고 여러가질 생각해본다, 본가에 계신 부모님이 무슨말을 하실지...
장하다고 하실까? 아니면 지금까지 연락도 없던 주제에 이제야 뻔뻔하게 온다고 섭섭해 하실까.?
하고싶은것도 많고 성공도 하고싶어 두분을 이런 촌구석에 냅두고 도망치듯이 서울로 상경한 주제에 칭찬을 바라는 내가 천하의 죽일놈이지
는곱을 때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뒤에서 아이가 목이 마른지 음료수를 달라고 보챈다
인제는 두번째 상전이 되신 자식님을 위해 조수석 아래에 냅둔 비닐봉지에서 마실걸 찾는다
물을 주자 상전님은 목말라 죽더라도 과당이 없는건 안 드시겠다는 의지를 떼로 승화하신다
과당이 들어간건 부모님께 선물로 드릴 식혜밖에 없는데 이놈이 냄새를 맡았나보다
단호하게 물밖에 없다고 거짓말을 하자 이녀석이 조수석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구석에 숨겨진 흰 페트병 두개를 가르킨다
체할때 먹는 약이라고 또한번 거짓말을 하자 녀석 역시 자기도 체한것같아 약 먹고싶다고 당돌하게 받아친다
는재 어디서 그짓말만 배워서 왔니, 유치원에선 그짓말하면 벌받는다고 안그러냐?" 궁지에 몰리자 할말이 없어진 내가 궁색하게 다그친다
실랑이가 오가는중 때맞춰 들어오신 첫째 상전님이 자초지종을 묻고는 애를 다그친다.
제 입만 입인줄 아네그려? 어디서 버릇없이 할머니 드실걸 먹겠다고 떼를 쓰나 이 짜슥아." 힘의 차이를 느끼는지 둘째상전은 물을 선택했다
와이리 철이 없냐? 그 나이먹고 애 하나 못 다스려서 되겠나?" 나에게 불똥이 튀자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고 키를 만지작거리며 시동을 건다
무사히 상전의 잔소리를 피해갔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잔소리는 피할수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앞에 황금빛 논이 펼쳐졌다
관상용인것마냥 금빛으로 아름답게 물결치는 벼의 파도가 그간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을 고이 간직한채 다시금 내게 가져다 주었다.
한 가장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자식된 도리는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옥죄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진다
것참 애도 아니고! 왜 울려 그러는겨?" 앞 거울로 내 얼굴을 본 아내가 눈치없이 소리친다
으디 누가 운다 그러는겨! 이건 남자의 로망이라고 눈물이 아니고!
로망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눈물은 부모님 뵐때 짜시고 운전이나 재대로 해 이 화상아!
허심탄회한건지... 배려가 없는건지...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던중 아주 익숙한 길이 나온다.
구태의연한 기왓집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시간은 10년전에 멈춘듯 했고 그곳을 나오는 앳된 과거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임전하는 병사, 아니 장수의 마음이 이러할까? 긴장감과 설레임이 뒤섞여 내 심장을 마구 두드리고, 해가 점점 저물며 주위가 어둑해져간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저 기왓집에 부모님이 계신다, 혼자 잘되겠다고 이런 곳에 부모님을 냅두고 나간 내가 원망스러워진다.
밝은 등불이 기왓집 마당에 켜지고, 오랫동안 기름칠을 안했는지 쇳문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힙쓰는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낸듯한 구브러진 등을 손으로 두들기며 한 노인이 걸어나왔다
니... 어머니!!" 짐을 들고가는것도, 아내와 자식을 챙기는것도, 지금까지의 감정들도 모두 잊은채 그분이 계신곳으로 달려갔다.
다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