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토요일 밤 좋은 TV 권함
19:40 JTBC #이규연의_스포트라이트 <5.18 북한군 개입설의 뿌리>
개요 : 특수부대원 '김명국'은 누구인가.
20일(토) 방송되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5.18 북한군 개입설의 실체를 추적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40여 년. 그 사이 수많은 관련 조사가 있었지만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일렁이고 있다. 지난달 17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 북한군 개입설은 역사적·진술적인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이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만원 씨를 비롯한 일부 강성 보수 세력은 북한에서 파견한 '광수 600명설'을 지지하고 있고 최근에도 '무등산의 진달래 485송이' 등의 책을 출간하려 하는 등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탈북민들의 주장까지 더해지며 5.18 북한군 개입설은 여전히 갈등의 뿌리가 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퍼져 나갔다. 사태는 당시 침투를 했었다는 탈북민 김명국(가명)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던 이들은 김명국을 핵심 근거로 내세웠고, 몇몇 탈북자들은 그의 주장을 책으로 출간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김명국의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정작 김명국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한 주간지 기자는 '김명국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김명국에 대해 수소문을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실존 여부마저 불분명한 사람의 증언이 파장을 일으킨 것일까.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은 김명국을 직접 찾아나섰고, 여러 기사와 탈북민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김명국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19세의 나이로 침투부대원 중 막내였다는 김명국. 서해안을 통해 침투, 광주까지 5시간만에 행군해 작전을 수행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탈북민 이주성이 쓴 '보랏빛 호수'의 뼈대를 구성했다.
2. 22:30~23:40 KBS1 #생방송_심야토론 99회 <#LH_사태 일파만파, #부동산_투기 대책은?>
개요 :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처음 사태가 촉발된 광명 · 시흥 지역에서 창릉과 하남, 인천 계양 등 다른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세종시 주변을 비롯해 공공 개발 사업이 이루어진 전역으로 투기 의심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국회의원, 지방의원, 다른 공기업, 금융계 인사 등으로 투기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여야는 사태의 실체 규명을 위해 특검과 국정조사, 국회의원 전수조사 등에 합의했지만 보궐선거까지 맞물리면서 세부적으로는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여당은 전 정권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제1야당은 가급적 LH 사태에 집중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정조사의 시기를 둘러싸고도 논쟁을 벌일 조짐이다.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LH 사태, 원인은 무엇인가? 실태 파악과 사태 해결을 위한 특검, 국정조사 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또 법과 제도 개선 등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생방송 심야토론>이 정치인, 전문가를 초대해 심층 토론하고자 한다.
출전 패널 :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위원),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VS 박성중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3. 23:10 SBS #그것이알고싶다 <사라진 269명의 흔적, KAL 007 격추사건 미스터리>
(뉴스 펌) 1983년 9월 1일 269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뉴욕 J.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에서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에 의해 격추당했다. ‘KAL 007 격추사건’이라 불리는 이 비극은 왜 발생했던 것일까.
전투기가 민간 여객기를 공격한 사상초유의 사건이었지만 당시 미, 소로 대표되는 두 진영 간의 냉전 분위기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 대한민국의 상황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더욱이 사건 직후 탑승객들의 시신이나 유품도 온전히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이 사건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소련 ‘대한항공 비행기는 아마 스파이 미션을 수행 중이었을 것이다.’
미국 ‘이 사건은 소련에 대한 인식을 뒤집을 기회가 될 겁니다.’
지난 2월 16일. 이 ‘KAL 007 격추사건’과 관련된 미국 국무부의 기밀문서가 공개 되었다. 38년 만에 확인할 수 있게 된 이 문서에는 당시 냉전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비극을 어떻게 이용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논의들이 담겨있었다.
명백한 살인행위라며 앞장서 소련을 비난했지만 뒤로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었던 미국 그리고 여객기가 미국의 첩보행위를 하고 있었다며 공격의 당위성만을 내세우기 급급했던 소련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사건의 진상 파악과 사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 당사국이었던 한국이 왜 철저하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비무장 민항기가 전투기에 요격당한 최악의 항공기 사고는 어째서 국제 정치 관계에 이용되어야만 했을까. 제작진은 이번에 미국에서 새로 공개된 문서를 분석해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당시의 국제적 상황 때문에 명명백백히 밝혀졌어야 할 사건의 진실이 가려지게 되자 지금까지도 ‘KAL 007 격추사건’에 대한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탑승객들이 사할린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추측도 계속되었고 대한항공기가 실제로 첩보 행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유 씨는 38년 전 KAL 007기의 탑승객이었던 아버지의 유품에 관한 연락을 받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렌터카 카드와 명함이 사할린 네벨스크에서 발견되었다며 한 외국인 신부가 유품 사진을 보내준 것.
사진으로 본 카드의 상태는 물에 빠졌던 물건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다. 38년 만에 들려온 뜻밖의 소식에 유 씨는 혼란에 빠졌다. 유 씨도 사건 당시 KAL기 승객들이 러시아 어딘가에 생존해 있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생존해 있던 아버지를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발견된 이 카드가 정말 아버지의 것이 맞는 것인지, 아버지의 것이 맞는다면 당시에도 못 찾았던 유품이 어떻게 지금에서야 나타났는지, 당시엔 왜 어떤 유품도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등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는 유 씨.
유 씨와 연락을 주고받던 외국인 신부는 이내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의 진짜 유품을 찾을 길은 묘연해졌다. 사진으로만 확인한 그 카드와 명함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련에서 발견되어 일본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가족들 품엔 돌아가지 못한 유류품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월이 흐르면서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도 붕괴됐지만 ‘KAL 007기 격추사건’의 진실을 찾는 일은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 수립이라는 이유로 또 다시 뒷전이 되었다. 1992년 방한기념으로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가져다준 블랙박스는 안타깝게도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우리 정부의 자체 조사가 불가능했던 상황. 결국 격추 된 KAL 007기의 블랙박스 조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맡았고 1993년이 되어서야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아쉽게도 ICAO보고서는 KAL기가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한 원인은 조종사의 실수나 기계고장 가능성에 있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던 유가족들에겐 부족한 설명이었다.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유가족들은 그 진실이 여전히 알고 싶다. 그리고 남은 소망은 안타깝게 사망한 탑승객들이 남긴 최후의 흔적들이라도 다시 돌려받는 것. 사건의 진실 규명에도,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최근 기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를 통해 83년 ‘KAL 007 격추사건’에 대한 미소 양국의 초기 대응을 분석하고 이 날의 비극에 대해 진실 규명은 멀어지고 음모론만이 남아버린 이유를 추적한다. 또 이로 인해 고통받아온 피해 가족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