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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도 늘고 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계에 온 듯 합니다. 게다가... 토벌무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대장의 보고에 기령은 옅은 침음을 뱉어내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남은 역귀는 고작 서너마리. 8일간 자는 시간 까지 줄여가며 대원들을 몰아세워 얻은 쾌거였다. 하지만 이제 슬슬 대원들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역귀 토벌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 할 수 없기에 충원은 힘들었다. 어떻게든 현재 인원으로 해결해야 했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거기에 역귀를 죽이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아이들 또한 이제 두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한명은 상처가 깊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잠시 대원들을 쉬게 하고 재정비를 하는게 어떠실지...”
부대장의 말이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기령은 고개를 저었다. 이장의 상태가 위독했다. 역귀토벌은 적어도 이장이 죽기 전에 끝내야 했다. 만일 이장이 먼저 죽는 날엔 이장직은 그의 아들 성철에게 돌아갈 것이고 그랬다간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마을을 보호 하고는 있지만 마을 외부는 아직 안전하지 않아. 만에 하나라도 누가 역귀로 변할지 모른다. 게다가 토벌무기 공급은 더 이상 어려우니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부상자들은 치료하고 남은 인원들을 준비시켜라. 3일 안으로 끝낸다.”
“하지만 대장님. 남은 역귀 놈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제일 빠르고 강한 녀석들입니다. 게다가 놈들의 우두머리 격인 두억시니 놈은 절대 쉽게 볼 녀석이 아닙니다. 분명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저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이들을 두명이나 찔러죽이며 공격해봤지만 도망치게 하는게 고작이었습니다. 저희가 그때 얼마나 큰 피해를 보셨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부대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두억시니는 다른 역귀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있는 듯 몇 마리의 역귀들과 함께 다니며 역으로 경비대를 습격하거나 아이들을 직접 공격하는 등의 행동을 했고 심지어는 양동 작전처럼 마을 두 곳을 동시에 공격하기도 했다. 기령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기령은 그저 ‘아이들을 찔러 죽인다’라는 말을 한 부대장 때문에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여지껏 부대장 역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해왔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대장은 직접적으로 말하며 기령을 몰아 붙였다.
“이렇게 까지 서두르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마을의 안전 때문입니까? 정말 더 이상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으셔서 입니까?”
기령은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마음이 급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을을 위한 것도 분명 있으니 어떻게든 부대장을 설득시켜 역귀토벌을 마무리해야 했다.
“자네는 나를 믿어주었네. 보통이라면 쉽지 않을 결정을 하고 끝까지 따라주었지. 마을의 안전이 코앞인 이 상황에서 주저할 수는 없네. 내 선택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겠지.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야. 그러니 다시한번 나를 믿고 움직여주게. 난 자네의 도움이 절실해. 자네가 없다면 불가능하네.”
부대장은 아직 묻고 싶은게 많은 듯 했지만 섣부르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고심하는 듯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던 부대장의 입이 열리기 전에 마을을 지키던 일반 경비대원 한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억시니입니다! 두억시니가 남은 역귀들을 끌고 마을로 쳐들어 왔습니다!”
기령은 재빨리 부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의혹이 가시지는 않아 보였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그 표정을 읽은 기령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움직일 수 있는 토벌대는 전부 움직인다. 토벌무기를 챙기고 당장 마을로 간다.”
부대장은 조금은 불편한 기색을 남겨둔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우습게도 기령은 내심 안도하며 채비를 시작했다. 잘만 하면 오늘 안으로 모든걸 끝낼 수 있다. 그 생각 때문에 기령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