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군이 갑옷을 입었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 같아, 이에 대한 기록을 올려봅니다.
자료는 http://db.history.go.kr/의 비변사등록을 참고했습니다.
沿海의 貢物과 負役에 관한 병폐, 水軍 將令에게만 갑옷과 투구 착용, 御營軍에게 保人 지급,
漕軍의 役, 세금 징수의 민폐에 관한 일에 대한 備邊司의 啓
인조 27년(1649) 3월 19일
"(상략) 또 지난번 통제사의 장계에 따라 전선(戰船)의 군졸에게 모두 갑옷과 투구를 입히게 하였으며, 지금 또 거듭 밝혀 제조하도록 하였습니다. 배 1척에 90 사람이 승선하는 것이 예이니, 철갑(鐵甲) 90벌이 제조되어야 합니다. 비록 해마다 점진적으로 제조하더라도, 한 읍의 공역(工役)으로는 치러낼 방법이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다가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찌 나라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겠습니까?
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군과 육군은 모두 적을 막는 군병입니다. 전선에는 그래도 참나무으로 된 방패가 있어 한 배의 사람들을 보위하고 있으므로, 육군의 경우처럼 막아줄 수단 없이 직접 화살과 돌을 맞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수륙의 병사로 하여금 모두 견고한 갑옷과 투구를 입게 한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국가의 물력이 부족하여 고르게 입히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군병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육군이 마땅히 먼저여야 하고 수군은 뒤에 해야 합니다. 모두들 이 일을 말할 때 마땅히 변통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단지 선상의 장령(將領)이라 칭호하는 자에게만 갑옷과 투구를 입히도록 하면, 마련하는데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고 거행하는 실효도 있을 것입니다."
各鎭의 甲冑를 경감시키는 일에 대한 備邊司의 啓
효종 1년(1650) 4월 17일
"갑주는 말 위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써, 배위에 방패를 벌려놓고 몸을 가린 병졸로 하여금 모두 갑주를 입게 하면, 실로 제승(制勝)을 위한 급무가 아니며 단지 수군에게 유지하기 어려운 폐단만을 줄 뿐입니다. 더구나 전선은 덩치가 크고 위에 누로(樓櫓)註 001) 를 설치하므로 그 바탕이 무거워 움직이기 어려움이 걱정인데, 이에 또 갑주를 입힌 군졸을 태우면 곱이나 되는 무게를 더하는 것입니다. 해상에서 군졸을 연습시켜 본 자는 대부분 불편함을 말합니다. 옛날 수군을 용병하는 지혜와 기계 제조의 정밀함은 고 통제사 신 이순신 만한 사람이 없어 그 바다를 횡행한 공렬(功烈)은 지금까지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에도 갑주를 입고 배에 오른 제도가 없었으니, 어찌 그 지혜가 지금의 사람들에 미치지 못해서 그러했겠습니까? 갑주를 입도록 한 뒤부터 크고 부유한 주읍(州邑)에서도 관에서 자력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민결에까지 침범하니 그 폐단이 적지 않으며 연해의 주현에서는 하나의 크나큰 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략) 갑주는 전선에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요, 그 폐단은 이루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략)"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대체로 이 일은 어떤 사람의 건의로 설립한 것인가? 그 전말을 알지 못하니 본래의 문서를 찾아 들이라." 하였다.
수군이 갑주를 입으면 배가 무거워질 뿐 아니라(고대 로마에서도 까마귀가 너무 무거워 병사 10만을 폭풍으로 잃는 경우가 있었죠.) 바다에 빠지면 헤엄치지 못합니다. 물론 간혹 배에서 배로 건너가 싸움을 벌이는 일이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 갑주를 입는 일이 있을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조선전역해전도의 그림처럼 두정갑을 병사들 전원이 상시착용했을 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