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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신참
“신참이구만. 사냥꾼이었다면서?”
기령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산적두목 같은 인상의 남자는 경비대 대장이었다. 이장이 마을 젊은이들을 모아 만든 자경단이라지만 이곳에선 사실상 정규군 취급을 받았다. 그런 경비대의 총 책임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인 것이다.
“네. 철들기 시작할때부터 산을 타고 다니며 짐승들을 잡았습니다. 덫놓는 것이나 활쏘는건 자신이 있습니다.”
경비대장은 만족스러운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기령을 안내했다.
“안그래도 한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꽤 괜찮은 놈이 들어왔구만.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아. 마을 경비대라지만 어설픈 잡졸따위랑은 비교가 안되지. 우리가 상대하는건 시정잡배들이 아니라 역귀니까.”
역귀란 말에 기령은 조금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칼이나 창은 써본적 없지? 상대가 상대다 보니 익혀야 할거야. 몸은 제법 다부지고 강단있어보이니 금방 배우겠네. 내일부터 바로 훈련이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힘든 대신 먹고 마시는건 전혀 부족함 없을테니 걱정 말고.”
한참 설명하던 경비대장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장님한테 들었어. 역귀 놈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며? 그건 경비대원중에서도 아는 놈들이 얼마 없어. 이장님의 주술의식을 돕는 딱 몇 명만 아는 사실이지. 우리끼린 특별조라고 말하는데 너도 특별조로 편성될거야. 대외적으론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니 눈치것 잘 처신하라고.”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조금 새삼스러웠다. 주술의식을 돕는다는건 결국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것인데 경비대장의 태도는 너무도 가벼웠다.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기령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니 익숙해 져야한다. 다만 이 사람과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겠다 싶은 예감이 들었다.
“네. 잘알고 있습니다. 마을을 위한 일이니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령의 씩씩한 대답에 경비대장은 흡족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뒤 경비대 훈련장에서 무기훈련을 받던 기령에게 경비대장이 다가왔다.
“신참! 첫 번째 임무가 떨어졌다. 준비하고 나와.”
기령은 들고있던 칼을 내려놓고는 장비를 챙겨 경비대장의 뒤를 따랐다.
“임무라면 어떤것입니까?”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기령이 물었다.
“마을 밖으로 내보낼 사람이 생겼거든. 깽판칠거 대비해서 우리가 가는거야.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줘야지. 알지? 안. 전. 한. 곳.”
장난스런 경비대장의 말에 기령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가급적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을 벌써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이장님. 제가 앓아 눕는바람에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음달엔 두배로 내겠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한 사내가 이장앞에 엎드려 싹싹 빌고 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특별조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다소 걱정스런 얼굴이었으나 혹여나 불똥이 튈까 싶어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쉬운 일이네만 이미 충분히 시간을 주었네. 몸이 아파서 일을 못했단 이야기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구만. 부양할 가족이라도 있다면 더 열심히 했겠지. 하지만 자네는 지킬 것도 없고 욕심도 없어 보이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고, 모자르면 여기저기 굽신거려 끼니를 떼우고. 그렇게 안일하게 지내지 않았나. 마을을 위한 세금이 벌써 몇 달치나 밀렸는지 아는가? 내 지난달 최후 통첩을 했을터인데 달라지는건 없구만. 그러니 어쩌겠나? 이쯤에서 작별을 고하는 수밖에.”
이장이 그리 말하며 돌아서자 특별조 사람들이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경비대장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장님의 드넓은 아량으로 우리 경비대가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줄테니 너무 걱정마. 짐은 다 챙겼겠지? 가볍게 준비 했어야 할거야. 주렁주렁 이고진 녀석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은 없어.”
사내는 절망 섞인 한숨을 쉬며 짐을 챙겨 일어났다. 짐이라곤 옷가지 따위가 든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마을 밖으로 나간다. 다들 움직여!”
경비대장의 명령에 기령을 포함한 특별조가 사내를 에워싸듯 다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