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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나와 스타일이 맞아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은
항상 뭔가 X신 같은 사건에 휘말렸었다.
이건 또 다른 프로젝트 리더 얘기다.
인시기 처럼
사람들 한테 빨때 꼽고 기생충 처럼
살아 남는 놈이 있는가 반면,
절대 충성으로 살아 남는 스타일도 있다.
'형윤'이 그런 스타일이다.
형윤은
일이나 관리 능력은 보통인 평범한 사람이지만,
팀장이나 임원들의 말에 절대적으로
굽신거리며
항상 '예~예~' 하고 지내서
심하게 얘기 하자면
파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일, 저 일
다 받아오는 성향이라
야근이 기본이었다.
근데 사람은 모질지 못해서
그런 일이 떨어져도
불필요하다 싶으면
본인 선에서 다 처리해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은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금요일 저녁, 팀장이 형윤에게 말했다.
'야 우리 딸내미가 여행계획 짜달라는데
니가 좀 내일까지 해주라.
우리 가족 이번에 베트남 가는데
너 지난 여름에 갔다 왔잖아?
PPT로 좀 만들어줘.'
'팀장님 제가 토요일에는
어머니 모시고 ㅇㅇ 가기로 해서요.
혹시 일요일 까지 해드려도 될까요?'
'안돼.
일요일에 딸내미 보여주기로 했어.
아~ 그거 뭐 어렵다고 하루를 달래?
그냥 지금 하면 되잖아'
'아 네네. 지금 하면 되죠. 알겠습니다.'
결국 형윤은 금요일,
아니
토요일 4:00 까지 그놈의
여행 계획 자료를
팀장놈한테 보내고 퇴근을 했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프로젝트 리더고
보고 땜에 야근 하는 사람한테
지금 저딴걸....
하긴 언제는 그런거 신경쓰는 팀장이었나.
아무튼 이런 일이 너무 잦아서
내가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술김에 물은 적이 있다.
'아니 그런거 하면 자존심 안상하세요?
인사팀에 찌르던가 받아 버리세요!'
'자존심 상하지.
근데 이런거 해야
나중에 니들 고과나 아니면 내 사정이 생겼을때,
한 마디라도 더 할 수가 있어.
이건 내 방식이야.....'
저 말을 듣고는
뭐라 더 말 할 수는 없었다.
근데 문제는
저런 형윤의 모습을
전에 같이 지내던 팀장은 좋아했었지만
이번에 바뀐 팀장은
인시기 처럼 보여주기 스타일을 더 좋아 했다.
그리고 바뀐 팀장은
인시기와는 다르게
형윤이
프로젝트원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그런 모습을 고깝게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말 별일이 없었지만,
형윤은 점점 팀장 눈밖에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게 된다.
당시 형윤은
결혼한지 몇년이 지났지만
자녀 계획에서는 진전이 없었다.
자세히 말은 안했지만 유산도 여러번 있었던거 같았다.
그런거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
힘들어 하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형수가 시술로 임신을 했고
안정기에 곧 접어 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근래의 형윤은 일은 정말 힘들지만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그리고
임신한 부인의 건강에 더 충실하고자
거의 하지도 않던 정시 퇴근도 종종 하고,
휴가도 틈틈이 써가며
형수 건강을 돌보는데 힘썼다.
(그렇다고 집에가서 일을 안한 건 아니다.....
매번 노트북을 챙겨서 갔었다.)
문제는 팀장이 이런 모습을 좋게 볼리 없었다.
어느날,
형윤은 팀장에게
와이프와 병원에 가야 해서
12일 연차를 쓴다고 했다.
팀장은 그 자리에서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그걸 그대로 둘리 없었다.
30분 후에 팀장에게서 메일이 왔다.
'12일에 인사 관련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니,
일정 조절해서 개별적으로 만났으면 합니다.
급하게 진행하는 거라 미안하지만,
이번에 면담 못하면 불이익도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쓰레기 같은놈.....
안그래도 이런거에 민감한 형윤은
결국 12일에 출근 하게 된다.
12일 오전.
형윤이 출근하자마자
팀장은 급하게 형윤을 찾아서
본인 대신 회의를 들어가라는 지시를 했다.
형윤은
앞뒤내용도 모르는 회의라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그러던 중 형윤이 전화를 받았다.
'뭐?
....
알았어. 내가 지금 갈께.'
전화를 끊자마자 팀장에게 가는 형윤이 보였다.
'팀장님. 지금 와이프가 하혈을 해서 병원에......'
하지만 형윤의 말도 끝나기도 전에
팀장이 소리를 내질렀다.
'뭐 이 XX야?
너만 가족있어?
야 그리고 니가 의사야?
니가 간다고 뭐 달라져?
개소리 집어 치우고 회의나 갔다와!'
귀로만 듣고 있었지만
저 대화가 오가는 1분만에
나까지 열이 받아서
그쪽을 쳐다봤다.
그때의 형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팀장 머리통에다
키보드를 내리쳐도 이상하지 않을 표정이었다.
팀장은 이상한 낌새도 눈치 못 챘는지
모니터나 쳐다보며
'아니 여기가 놀이터야?
정신차리고 업무에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등등의 말을 내지르고 있었다.
형윤은 말없이
옷을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2주동안 무단 결근을 했다.
이 사람의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무단 결근은 상상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형윤은 퇴사 수속을 밟았다.
나가기 전에 같이 술자리를 했는데
나까지 답답해서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ㅆㅂ......
나는 또 이렇게
그나마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