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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게시물ID : panic_1020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13
조회수 : 128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2/16 12: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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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밤길

 

 

사촌의 결혼식에 참석한 남자는

결혼식이 끝난 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지인과 친척 모두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지만

남자는 여전히 홀로 남아 의도치 않게 순결을 지켰고

자신의 반쪽을 찾는 일만큼이나

집으로 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어두운 숲을 통과하던 남자는

초겨울 가지만 무성한 벌거숭이 나무들을 보며

쓸쓸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지만

어두운 하늘에 외로이 떠있는 달이 벗이 되어

남자의 고독을 달래 주었습니다.

 

 

그때

앞서 가는 한 여인을 발견한 남자…

 

 

새하얀 옷을 입고 어두운 숲을 거니는 여인은

마치 일렁이는 수면 위에 비추는 달 같았고

여인의 신비로운 모습에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던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내며 여인의 기척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미동조차 않은 채

오십 보 되는 거리에서 남자를 앞서 갔고

남자는 불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인의 뒤에서 한참을 걷던 남자는

이 불편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가는 여인을 보며 남자는 망상에 빠져들었고

망상 속 남자는 여인과 가정을 꾸려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달의 여신이시여…

이러시면 제가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때

달의 여신이 남자의 소망을 들은 것일까…

앞서 가던 여인이 발걸음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여인과의 거리가 좁혀지며

남자는 터질 듯 쿵쾅대는 심장을 제어치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 순간이

길고 길었던 고독과 작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남자는

용기를 내어 여인에게 말을 걸기로 했습니다.


 

여인이 놀라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가며 여인과의 거리를 좁힌 남자는

고심 끝에 생각해낸 말을 입 밖으로 던졌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밤입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밤하늘의 적막 속에서 남자의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남자가 어둠 속에서 줄곧 보았던 것은

가지에 걸린 식탁보였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무언가에 홀리긴 홀렸나보다…


 

바보가 된 듯한 기분에

남자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잠시나마 행복을 꿈꾸고

자신을 설레게 한 순간을 마련해준 달의 여신에게

남자는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자의 감사에 답이라도 하듯

구름 뒤에 숨어있던 달님이 모습을 드러냈고

남자는 지나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편히 잠들고 있을 세상 모두가

좋은 꿈을 꾸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jwlee2717/22217542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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