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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얀아이
게시물ID : panic_102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로환
추천 : 5
조회수 : 10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02 18: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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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지니고 있는 이 색은 단순하게 빨간색, 노란색과 같이 단색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컴퓨터 그래픽과 수채화, 파스텔, 아크릴, 흑연 등 셀 수 없이 많은 도구와 재료를 동원하여 마을 곳곳을 그려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한 집의 벽돌은 카멜레온처럼 색이 수시로 변하는가 하면, 어떤 들판의 꽃들은 픽셀로 만들어진 도트 그래픽처럼 자라났고, 사전적인 의미로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색상들이 심심치 않게 생겨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색 덕분에 이곳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성지가 되었고 주민들의 피부색과 패션은 하나같이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칭찬이 전혀 아깝지 않은 환상 속에 나 있을 법한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런 마을이 주는 색은 삶 그 자체였고 신앙심과 같은 심벌이자 자긍심인 셈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 하얀 아이가 나타나 살기 시작했다. 어찌나 하얀지 눈, 코, 입을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성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하얀 아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가 화려한 것과 달리 이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빈 껍데기로 보일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 아이를 '무아(無)' 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행복한 하루

무아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꼬마 무리가 무아 주변을 에워쌌다. 꼬마 무리의 대장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가 그러던데, 너 마녀의 자식이라며?"

 

 

무아는 대답 대신 소지품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들었다. 무언가 적어내려고 하는 순간 대장이 무아의 손을 내려쳤다. 그 충격으로 종이는 찢어졌고 연필은 땅에 떨어져 뒹굴었다.

 

 

"뭐야! 건방지게 누가 글로 알려달랬어? 마녀 새끼 아니랄까 봐 예의도 안 배웠나? 아니면 원래 말을 못 해?"

 

 

너무 하얀 나머지 무아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손으로 원을 그리는 것으로 대신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인을 보냈다. 무아는 땅에 떨어진 연필을 주워 찢어진 종이에 다시 무언가를 적으려 했다. 그 순간 대장이 연필을 뺏어들었다.

 

 

"재밌는 거 생각났다. 보니까 넌 종이도 필요 없겠는데? 네 몸에 그리면 되잖아. 얘들아 낙서장이다!"

 

 

대장이 비아냥거리자 무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아이들도 깔깔대며 웃어댔다. 대장은 뺏은 연필로 무아의 배에 낙서를 했다.

 

 

'저는 마녀의 자식입니다. 말도 할 줄 모릅니다.'

 

 

얄궂은 행동이 이어지자 말도 안 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연필을 들고 있던 대장의 팔 전체가 무아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낄낄대며 웃고 있던 대장은 방금까지 같이 웃어대던 아이들이 조용해진 것을 깨닫자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어...엇...이... 이게 뭐야! 아아악!"

 

 

대장과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도망쳤다.

 

 

 이 사건은 마을 전체에 일파만파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몇의 부모가 대장 아이의 집을 방문하여 피해 사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자 사건은 더욱 중대해졌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이건 마을의 존태를 다루는 심각한 문제라고요!"

 

 

"맞습니다. 이러다간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 거예요!"

 

 

촌장의 집 앞에 모인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서 일각을 다투었다. 구석에서는 꼬마 대장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이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촌장이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십시오. 먼저 아이의 팔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무아를 찾아가서 팔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것을 부탁합시다. 그다음 다시 한번 모여서 이번 일을 의논해보는 걸로 하자고요."

 

 

사람들은 어느샌가 마을의 존태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촌장의 말이 있고 나서야 구석에서 울고 있던 꼬마 대장의 일가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평정심이 돌아온 사람들은 꼬마 대장의 일가에게 다가가 걱정 말라며 쑥스러운 어투로 안심시켰다. 그들은 그 길로 횃불을 하나씩 집어 들고 길을 나섰다. 무아가 어디 사는지 촌장은 고사하고 그 누구도 알지 못했기에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결국 마을의 중심지에 위치한 오래된 나무 근처에서 무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촌장이 다가가 말했다.

 

 

"저 아이의 팔을 원래대로 되돌려 줄 수 있겠니?"

 

 

무아는 촌장의 말에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침에 당했던 낙서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사건의 발단을 직감한 촌장은 무아를 잘 타일렀고 아이에게도 무아에게 사과를 하도록 시켰다.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무아에게 잘못했다고 연거푸 사과했다. 잠시 후 아이의 팔이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하기는커녕 몹시 굳은 표정을 하고는 촌장의 집 앞에 다시 모였다.

 

 

"능력을 쓰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눈앞에서 직접 보니 그 아이는 마녀의 새끼가 틀림없어요! 촌장님도 요술을 보셨죠? 그 아이가 언제 수 틀려서 마을과 사람들을 집어삼킬지 몰라요!"

 

 

"빨리 처리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성난 얼굴로 촌장에게 불같이 쏘아댔다. 사실 무아의 능력을 직접 본 촌장도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건 예외가 아니었다. 촌장은 주민들 중 하르 일가를 부르며 말했다.

 

 

"하르씨, 요즘도 사냥 합니까?"

 

 

"네, 간간히 노루 정도는 잡고 있습니다."

 

 

"그럼... 마취총도 있지 않습니까?"

 

 

하르는 물론이고 주민들은 촌장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아!' 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침이 밝자 하르와 촌장은 마을의 중심지로 향했다. 오래된 나무 밑에서 무아는 종이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르는 무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수풀에 엎드린 후 허벅지를 향해 마취총을 조준했다. 서늘한 바람이 주위를 살랑이는 사이 총구에서 마취총이 발사됐다. 무아는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얼굴에서 눈물 같은 하얀 액체가 흘러내리며 쓰러졌다.

 

 

 하르와 촌장은 어른들만 따로 소집하여 광장으로 집결 시켰다. 다른 어른들이 사전에 준비한 단두대에 무아의 목을 집어넣었다.

원래는 촌장과 하르 두 명만 이번 일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무아의 생사 여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처형식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눈을 치켜뜨며 무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아를 처형할 사람으로 꼬마 대장 아이의 아버지가 단두대 위로 올라왔다. 핏줄이 곤두선 살벌한 얼굴을 한 아버지는 밧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는 촌장의 지시하에 숫자를 세 번 세고 쥐고 있던 밧줄에서 힘을 뺐다. 날카로운 단두대의 칼날이 순식간에 무아의 목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살벌한 얼굴을 풀고 환호했다. 하지만 환호하는 것도 잠시였다. 사람들의 몸과 마을 전체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빛이 빠져나왔다.

 

 

 

 

 
 
 


 

사람들과 마을 전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색으로 변해갔다. 여태까지 마을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던 색이 빛의 형태로 무아의 시신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빛은 무아의 시신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을이 보여주던 것 이상의 환상적인 색으로 시신이 치장되었고 곧 먼지가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마취에서 깨기 전에 처리했음에도 우려했던 일이 발생해버렸으니 도무지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어려웠다.

 

 

촌장은 무언가 생각난 듯 다급히 마을의 중심지로 다시 향했다. 오래되었지만 생명의 기운만큼은 강하게 느껴졌던 나무가 조금 전과 달리 썩어 문드러져있었다. 그 나무 아래에는 무아가 조금 전까지 열심히 써 내려가던 종이가 보였다.

 

 

 

사람들이 저를 무아라고 부릅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존재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이 마을의 색은 전부 제가 준 선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제가 여기 이 오래된 나무라는 것을요.

 

저는 평범했던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모든 색을 담고 있는 나무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가며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죠.

사람들은 저를 보며 아름다운 극찬과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야말로 고마웠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저에게 보여줬으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그 감사에 나뭇잎을 흔들기도 하고 아름다운 소리와 시냇물 소리, 바람소리로 답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마을 전체에 커다랗게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로 줄 수 있는 커다란 보답은 바로 제가 가진 색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세대를 거듭하며 저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에 한편으로 슬프기도 했습니다.

 

 

다시 저를 바라봐 주길 바랐습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객해냈습니다. 인간 아이는 늘 어디서든 변함없이 사랑받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의 모습으로 세상밖에 나왔습니다.

 

 

목소리라는 색까지 남김없이 줘버린 탓에 그들과 입으로 소통할 수 없었지만

그 오래전, 사람들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나눠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촌장님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아이에게 사과받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우며 성장하는 것인데, 제가 너무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으로 세상밖에 나온 이후로 가슴 아픈 일이 많았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제게 찾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다시 앞으로의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촌장님과 마을 주민들 모두 감ㅅ


 

 

 


 종이에 적혀있는 글에는 '감ㅅ'에서 끊겨있었다. 아마도 마취총을 맞은 직후 일 것이다.

촌장은 문득 어렸을 적 부모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촌장에게 마을 중심지에 있는 나무와 자연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유일하게 촌장의 일가는 대를 거듭해도 나무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촌장은 망연자실하게 앉아 통곡했다.

출처 https://blog.naver.com/tarohwan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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