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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명심해
게시물ID : panic_1019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로환
추천 : 5
조회수 : 105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0/11/24 2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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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을 듣지 않는 동생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

이윽고 참고 있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고, 동생의 뺨을 향해 있는 힘껏 날아갔다.

 

'찰싹!'

 

동생의 입술은 너무나도 쉽게 터져 버렸고, 볼은 금세 탱탱 부어올랐다.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반항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나를 노려봤다.

 

그런 동생의 행동에 완전히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곧이어 나는 "이 씨x놈이!"라고 소리치며 동생의 온몸에 주먹질을 해댔다.

동생은 맞아가면서도 꼿꼿이 서 있었고 외마디의 비명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력 속에서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앞으로 고꾸라진 동생의 모습에 겨우 이성을 되찾은 나는 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동생은 살아있었지만, 기절할 때까지 패버렸다는 사실이 이성이 돌아온 나에게 엄청난 후회와 자책감을 주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이렇게까지 때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왠지 악마의 속삭임에 지배당한 기분이 들었다.

 

♣ ♣ ♣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가족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크게 달라졌다.

언제나 나를 피해 다니기 바빴으며, 내가 지나다닐 때면 늘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가족에게 해가 되는 존재인가?' 생각은 하면 할수록 우울감이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가지를 선택했다. 가족과 분리되어 살아보자고.

 

♣ ♣ ♣

 

자취를 시작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가족이 내 집을 방문하거나 연락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예전에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고 화목했던 가족이었지만,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후로 그들의 울타리에서 나는 떨어져 나갔다.

 

나는 하루하루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반 년 만에 자취에 이은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동생을 때렸던 당시의 후회와 자책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목을 매달았다. 목을 휘감은 밧줄은 생명이라도 깃든 듯 내 목을 점점 더 강하게 조여왔다.

 

"끄... 으... 윽.. 억... 컥..."

 

♣ ♣ ♣

 

"헉... 헉... 헉..."

 

아침부터 몹시 불쾌한 꿈에서 깨어났다.

방금까지 꿈속에서 느꼈던 후회와 자잭감이 잠에서 깬 나에게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이 불쾌한 느낌은 그렇게 몇 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이불 속을 빠져나와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어차피 출근 준비를 해야 됐기 때문에 옷을 벗고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동생도 슬슬 출근 준비를 하려는지 거실로 나와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을 보자 조금 전의 꿈속 장면이 떠올랐다.

 

'젠장'

 

이런 꿈을 꿨다는 거 자체가 동생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찍 일어났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먼저 말을 걸었다.

 

"응, 오늘 심지어 야근도 해야 돼! 미쳤지?"

 

"헐... 그건 진짜 오바 아니야?"

 

나는 동생과 평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 ♣ ♣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고 난 뒤, 다시 밤이 찾아왔다.

'회사에서는 시간이 참 안 가는데, 집에만 오면 벌써 잘 시간이구나...에효, 눈 감고 뜨면 또 아침이겠지...'

 

한숨을 내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 나는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얼마 동안 잤을까? 자고 있는 나를 누군가 건드는 게 느껴졌다.

 

'툭툭'

 

"아이씨, 누구야?"

 

"히...힛..이..제..이훠나어?"

 

나는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어어... 으아악! 씨 x!!! 너 뭐야, 너 누구야!"

 

정면에는 카멜레온처럼 혀가 길게 나와있는 남자가 실실 웃어대면서 서 있었다.

 

"흐헷.하..핫......재미다.....구마...노뤼까"

 

혀 때문에 발음이 어눌했던 남자는 양손으로 혀를 잡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하, 됐다. 어때, 이제 알아듣겠지?"

 

혀를 집어넣은 남자의 윤곽이 뚜렷해지자 나는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습은 나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너, 너 누구야!"

 

앞의 서 있는 남자는 실실 웃어대며 대답했다.


"하하하, 누구겠어? 딱 봐도 너지, 안 그래?"

 

"..."

 

"벌써 까먹은 거야? 나 봤을 텐데... 꿈속에서"

 

"...! 아, 너 오늘 아침에 꿈속에 나왔던... 나?"

 

"그래,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꿈이 아니었지만, 큭"

 

도플갱어로 추정되는 남자는 바닥에 대충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말을 이어 나갔다.

 

"자, 지금 많이 당황스럽지? 하하 걱정하지마,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뭐, 나는 너고 너는 나니까. 내가 하는 말이 이해하기 쉬울 거야. 우린 생각하는 거나 지능 모두 비슷할 테니까!"

 

도플갱어는 뭐가 그리 웃긴지 배꼽을 부여잡고 웃다가 다시 말했다.

 

"네가 사는 세계에도 분명 어벤저스라는 영화가 있을 거야. 물론, 아직 영화상으로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거기에는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이 있을 거고. 맞아?"

 

"그... 그래, 맞아..."

 

나는 도플갱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뜬금없이 어벤져스까지 언급하는 건가 싶어서 당황스러웠다.

 

"목매달고 죽어보니까. 실제로 다중 우주는 존재하더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후, 평소에는 이런 거 잘만 믿으면서 왜 너 자신이 직접 얘기해 주는 건 안 믿으세요. 예? 나 원 참"

 

도플갱어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흠... 아니지... 이것부터 말해줬어야 했나? 뭐, 믿거나 말거나긴 한데... 죽어야만 알 수 있는 진리 같은 게 세상에 존재해, 너라면 나이기도 하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 거야. 그 왜 있잖아, 플라톤이 했던 말 중에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라는 말. 어때, 기억나지?"

 

"플라톤의 파이돈을 말하는 거야?"

 

"그래, 그래!, 역시 너는 내가 맞네! 같은 책을 읽기도 한 거 보니까. 하하하!"

 

"..."

 

"하핫, 정색하기는 자식이... 이어서 말할게, 나는 그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다.'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해. 내가 죽고 나서야 다중우주'론'으로만 여겨왔던 사실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고, 이렇게 너를 만나고 있어. 이런 일들은 죽지 않고서야 백퍼센트로 믿기 어려운 진리인 셈인 것이지. 하지만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표현도 다분하다고 생각해. 육체를 지닌 채로 현생을 살아가는 네가 현재 죽고 싶을 만큼 불만이 있는 상태는 아닐거 아니야?"

 

"뭐, 그건 맞지... "

 

"그렇지? 아무리 너에게 이쪽 세상의 진리를 알려줘봤자 너는 절대로 단 한 개도 이해할 수 없어. 이건 네가 나중에 죽어봐야 이해할 거야, 물론 꼭 잘 살다가 죽으라고?! 내 말 오해하면 안 된다?!! 아무튼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고... 아까부터 계속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대는 이유는 정말 딱 하나 때문이야. 네가 다중우주를 믿어줬으면 해서라는 것... 앞으로 내가 할 얘기는 다중 우주를 믿어준다는 전제하에 말해줄 수 있거든. 어때, 이 정도는 믿어주지 않을래?"

 

"... 믿어볼게"

 

"좋았어! 오늘 아침에 네가 꾼 꿈은 또 다른 우주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너 자신이야. 즉, 네 앞에서 주저리 떠들어대는 나의 삶이었다는 말이지!"

 

"그럼, 다른 우주 속에 존재하는 내가 정말로 자살이라도 했다는 거야?"

 

 

"그래, 지금의 네 상태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실제로 자살했어. 꿈속에서 네가 느낀 후회의 감정들은 모두 내가 느낀 것들이지"

 

"하지만... 너는 나랑 생김새만 같을 뿐이고, 다른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것뿐이니까 나라고 할 수도 없는 거 아니야?"


"아니,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어. 나뿐만이 아니야, 또 다른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어느 정도 서로 영향을 받아 가며 살아가고 있지. 그 예로 나의 삶을 꿈의 형태로 네게 보여준 것은 결코 내가 자의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야... 이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지"

 

"..."

 

"물론 믿기 힘든 얘기일 거야. 저런 자연 현상 덕분에 나는 너를 찾아오기가 수월하기도 했고... 뭐, 어쨌든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다중우주 속에서의 난, 너의 '베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네. 동생을 죽일 듯이 때리고 가족한테 버림받아 자살하는 결말이니까"

 

"...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때린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면 동생을 그렇게까지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 그렇지... 내가 여기 찾아온 것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싶어서야. 흠... 다중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중, 너와 완벽하게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있을 테고, 혹은 지금의 우리처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자신도 존재하겠지, 여기까지는 이해했어?"

 

"... 대강은"

 

"자, 그렇다면 저런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사실 이것은 시시할 정도로 간단해. 이유는 단지, 다중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극악의 확률로 서로 다른 선택지를 골랐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너와 내가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수저를 사용한다는 선택지로 갈린다... 이런 아주 사소한 선택지부터 커다란 차이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지"

 

"뭐, 다중 우주가 얼마큼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차이는 발생할 수 있겠네"

 

"그래. 아, 물론 내 경우는 사소하게 갈리는 선택지는 아니었지...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라면 동생을 그렇게 패는 일은 결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꿈속에서 네가 느꼈듯이 그 선택지는 나만 갈리는 것이 아니야, 너의 동생 또한 다중 우주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야, 즉... 그날 동생의 선택지도 달라졌던 것이지. 너도 이상했지? 동생이 이렇게까지 반항한 적은 없었는데...라고"

 

"아... 그래, 꿈속에서 나도 느끼긴 했어"

 

도플갱어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 행동을 변명할 생각은 없어... 아직 육체를 가지고 현생을 살아가는 너에게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지가 생겨날 거야... 이것을 가족으로 국한하면 안 돼, 네가 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다거나 언제든지 나처럼 자살하는 비극을 겪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모두 너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잠에서 깨어나면 지금 나와 있었던 모든 일들을 꿈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반드시 일기장으로 기록해"

 

도플갱어는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의 양손을 기도하듯이 꽉 잡으며 말했다.

 

"너는 제발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중 우주 속의 수많은 우리들 중에서 아직까진 네가 가장 괜찮은 삶을 살고 있어... 난 너의 이런 삶을 꼭 지켜주고 싶어... 지금도 동생을 때린 것과 자살하던 순간이 너무나도 생생해, 너에게는 이런 고통을 절대 절대... 주고 싶지 않아... 물론 네 가족에게도..."

 

"..."

 

도플갱어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항상... 한 번 더 생각해, 한 번 더 고민해, 한 번 더 이해해, 한 번 더 참아. 제발... 이 말을 꼭 명심해"

 

나는 도플갱어의 모습을 보며 아침에 꿈속에서 겪었던 감정들이 다시 느껴졌다.

아마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슬픈 감정들은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도플갱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안심해도 좋아"

 

내 말에 도플갱어는 천천히 눈을 뜨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실실거리며 웃었다.

 

"하하,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럼,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된 것 같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천국? 지옥?"

 

"풋, 농담은... 둘 다 아니야, 난 계속해서 나를 만나러 다닐 생각이야. 그중에서 너는 내 첫 번째 손님이었고"

 

"모두에게 경고하려고?"

 

"맞아, 최대한 힘닿는 데까지 만나볼 생각이야"

 

"... 힘내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아니야, 조금 전의 안심해도 좋다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 너는 잘 살아갈 거라 믿어... 아, 가기 전에... 내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뭐 하지만... 네 가족들 좀 만나고 가도 될까?"

 

"그럼, 당연하지"

 

도플갱어는 뒤로 돌아 걸었다. 내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거실로 나갔다. 아마도 내 가족이 자고 있는 방 하나하나를 둘러볼 생각이겠지... 잘 가라 나야

출처 https://blog.naver.com/tarohwan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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