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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본부에 대한 짧은 글
게시물ID : history_150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나가다슬쩍
추천 : 10/7
조회수 : 13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28 11:00:46
막간에 짧게 독일 참모본부에 대해서 짧게 써볼려고 합니다.

독일군의 특징으로는 참모본부를 통한 전쟁의 엘리트들이 나왔다는데 있습니다. 
이 독일군의 참모본부는 프로이센시대의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해 병참참모를 두었던 데서 시작한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질적인 참모본부는 샤른 호스트와 그나이제우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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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닌거 같다.........)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우는 프로이센 육군 참모본부를 창설해서 운영하였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작전들은 이후 프로이센의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때 당시만해도 이 조직은 비밀리에 운영되어서 적국들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합니다. 
참모본부의 일원이 되면 다양한 교과를 배정받아서 공부를 하고, 3년동안은 일반 학교에서 전쟁을 배우고, 군사지도부에서 다시 3년을 공부해서 의무기간을 마친다음, 전쟁답사나 참보본부나 병과 근무, 다른 선진 국가에 파견근무 등을 수행하면서 지식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일본에도 건너가게 되는데, 2차대전때 진주만 공격을 거부하면서도 "성공해도 고작 몇년간 우위를 점할 것이다."라면서 작전을 입안했던 야마모도 이소로쿠 제독이 미국에서 공부한 무관으로 유명한 경우지요. 야마모도는 미국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미국을 이길수 없다고 부르짖었지만, 우리의 대본영은 쿨하게 씹고 "까라면 까"라고 했다죠.

참모본부의 요원들은 옷에 붉은색을 칠해서 입고 다녔으며 계급과 이름 사이에 GS(general staff)를 달아서 신분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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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아닌거같다.........)

이러한 프로이센의 참모본부는 결국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서 해체되게 됩니다. 다른 나라에서 볼 때 독일의 참모본부는 굉장히 우수했고, 이후 분명 다시 독이 될거라고 예측한 것이지요.
그러나 독일군은 참모본부를 해체시키지 않고,그 기능을 몰래 각 부서로 빼돌리는 형식으로 참모본부를 존속시킵니다. 그리고 이게 나중에 2차대전때 독일 참모본부를 망치는 원인이 됩니다..........(이후에 설명합니다.)

독일 참모본부의 유명한 작전을 꼽자면 "슐리펜 플랜"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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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전은 독일군 전체를 거대한 낫으로 만들어서 가상의 적국인 프랑스를 크게 우회기동(누가 프로이센 아니랄까봐)해서 내리 누르는 작전이였습니다. 문제는 독일군 우익의 기동력은 상상을 초월해야 했으며, 지도에서 보듯이 가장 우익(해안을 달려야 하는 부대)는 말 그대로 개뺑이를 쳐야 하는 작전이였습니다. 그리고 원래 작전을 수정해서 기안했던 몰트케는 최초원안보다 우익의 병력을 많이 빼서 좌익, 즉 상대의 공세를 버텨야 하는 쪽으로 돌렸고, 
결국 저 거대한 작전은 원안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프랑스를 포위하는 정도의 우회기동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 긴 이동으로 인해서 각 군단간의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병참선이 길어지고 군단간의 이동차이가 생겨서 그 틈을 연합군이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프랑스와 독일은 마른 일대에서 참호전을 전개하게 되고, 프랑스가 참호전에서 승리하면서 "짱박아서 지키면 우리가 이기는것"이라는 전통을 만들게 되고 프랑스는 이를 바탕으로 "마지노선"구축계획을 실행하게되는 멍청한 짓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위의 작전을 보듯이, 전체적인 전국을 생각해서 대규모의 포위섬멸, 망치와 모루, 고속기동, 우회 등의 전략적인 면이란 면을 모두 보여준 독일의 참모본부의 위용은 밀덕들의 심리를 건드릴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대전 이후 여러 나라에서는 독일의 참모본부를 본따거나 그 전통을 빌려서 참모본부등을 두게 됩니다. 좋은 사례로는 미군의 합참과 사관학교들을 들 수 있고, 나쁜 예로는 일본의 "대본영"과 "일본군 사관학교"을 들 수 있습니다.(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를....)

이 참모 본부의 전통은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급속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앞서 1차대전의 패배 이후 독일은 이후의 재군비를 준비하면서 이들 참모조직을 정부의 주요 조직 사이에 심는 작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군수분야는 상공부에, 참모들은 행정부에 심는 식으로 말이죠.
이게 문제가 됩니다. 네. 이들이 정치적인 부분에 눈을 뜬거죠.

독일의 참모부의 강점은 다양한 의견을 조합하고 운영하고 결과를 내는 것으로, 이들은 철저하게 승리를 위해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 참모본부의 수장들과 그 밑의 학생들은 "히틀러"라는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병집단으로 변질됩니다.(SA라던가 SS의 전신이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작전 역시 과거처럼 참신하고 놀라운 생각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계획을 어떻게 보기좋게 수정하느냐,
그리고 다른 참모나 장군들과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느냐에 집착하게 되죠.
덩케르그 전투에서 보여주듯이, 다 이긴 전투에서 괴링은 "공군"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진격을 정지하거나, 
카이텔처럼 총통님의 딸랑이로 인생을 마감하거나, 만슈타인처럼 "후퇴 후 역공"만 고집하다가 히틀러에게 노여움을 사서 쫒겨나거나(물론 만슈타인은 명장입니다. 다만 높은분과 의견이 안맞았죠.) 롬멜처럼 아예 히틀러를 갈아치울려다가 모살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난리 사단이 나죠. 

2차대전의 독일의 작전도 사실은 1차대전때의 슐리펜 작전의 변형입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1차때와는 달리, 기동력을 갖춘 전차가 전장의 주역으로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러나 독일 참모부는 이러한 전술적 변화를 처음에는 간과하다가 나중에야 전차의 위력을 알았으며, 사실상 전차전을 비롯한 유용성은 현장의 장교들이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참모부는 현장 지휘관과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롬멜과 만슈타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모부의 정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롬멜은 개돌을 통해서 상대를 밀어냈으며, 참모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롬멜은 아프리카에서 너무 "선전"했지요.
결국 롬멜을 제어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롬멜을 소환하고 나서야 독일은 아프리카 전선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의 경우는 중장이면서 참모부의 작전을 무시하고 직접 자신만의 라인을 타고 "황색작전"을 올렸으며, 이게 히틀러의 마음에 들면서 프랑스 침공의 서막이 올라가게 되는 등, 이미 참모부의 수장들과 현장 지휘관과의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병크가 계속되면서 히틀러는 참모본부의 유용성을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의 전략적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히틀러는 참모부를 없애고 1941년 이후로는 직접 지휘를 맏으면서 참모들의 조언을 죄다 무시합니다. 결과는...............
그리고 독일이 패망하면서 독일 참모본부는 사라지게 됩니다. 

독일 참모본부의 전통은 평균적인 질로 볼때 우수한 장교를 배출하고, 체계적인 군사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볼 수 있으나, 
반대로 참모본부가 정규조직화되면서 우수한 장교보다는 기존의 전통을 따르는 기계적인 장교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체계적인 시스템이지만, 
그만큼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시스템으로 변모해버렸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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