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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왜 나를 쫓아왔을까?
게시물ID : panic_1018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포김사장
추천 : 13
조회수 : 181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9/22 23: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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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최근 몇 달 동안 저녁마다 열심히 달린 덕분에 살이 꽤 빠졌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쉐이크를 섭취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밤늦게 공복감이 밀려와 라면을 끓일까 말까 고민할 때

의외로 달달하면서 칼로리가 낮은 프로틴은 훌륭한 대용이었다.


식사량을 점차 줄이는 동안 달리는 거리는 조금씩 늘려갔다.

그런데 날씨가 쾌적하게 바뀌자 운동하러 나오는 인파도

혼잡하다 싶을 만큼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달리는 일이 아무래도 힘들어졌다.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그동안 애용해 온 우레탄 길을 

포기하고 산자락 길로 코스를 바꾸기로 했다.

이곳은 비포장도로라서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비교적 마음 편히 달릴 수 있다.


한데 얼마전 굉장히 크고 밝은 달이 떴던 밤의 일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었는데 한참 뛰다가 러닝화의 끈이 

풀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리가 엉켜서 넘어질 뻔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땅에 한쪽 무릎을 꿇고 끈을 묶었다.


그때. 뒤쪽으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남자가 한 명 보였다.

운동을 하는 사람의 복장은 아니다. 

행상 차림으로 어깨에는 하얀색 띠 같은 걸 둘렀다. 

언제부터 거기 서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잠시 그쪽을 쳐다보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보폭을 바꾸지 않고

발걸음 수만 줄이며 고개를 틀어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좀 전에 봤던 남자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남자의 속도는 내가 달리는 속도와 같았다.

30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 따라왔다. 

나는 그야말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호흡은 금방 흐트러지고 발걸음도 엉켰다. 


나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내가 서자 남자도 딱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허둥지둥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스윽 뒤를 보았다.


어깨띠를 맨 남자는 30미터 뒤에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뭐야. 겁을 주려는 건가. 

께름칙한 한편으로 못된 장난에 당하는 기분도 들어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방향을 바꾸어 

하얀 어깨띠를 한 남자를 향해 천천히 뛰었다.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이목구비가 흐릿하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눈썹도, 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밀가루반죽처럼 동그랗게 빚은 듯한 형상이었다. 

나는 기함하고 말았다. 순간 이를 악물지 않았다면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갔을지도 모른다. 


“어, 어, 어” 어째서 나를 따라오는 겁니까.

그렇게 고함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에 날아 들어온 내 목소리를 전혀 달랐다.

“어어어우우와아~!”


나는 도망치면서, 달리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런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하얀 어깨띠를 맨 남자가 다시 쫓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기겁하고 말았다.


왜냐면, 남자가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미끄러지듯 이쪽으로 다가온다.

손은 몸 옆에 축 늘어져 있다. 

머리를 끊임없이 위아래로 까딱까딱 움직인다.


마침 산자락 위쪽으로 조그마한 법당이 하나 보였다. 

저런 데는 부처님이 계시니까 ‘저것’도 못 쫓아오지 않을까.

나는 그대로 달려 법당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러다가 산문 밖으로 나오던 스님과 부딪치고 말았다.


당황한 스님을 붙잡고 나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동시에 뒤를 가리켰지만 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스님은 몹시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 주었다.

웃거나 야유하지 않고 당혹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직접 겪은 저도 믿을 수 없는데 의심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내가 묻자, “어찌 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지금 모습이 귀신같은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가 당신을 따라온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내 안에 귀신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를 해결할 사람도 나 자신밖에 없다면서.


왠지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비로소 용기가 생긴 내가 곧 법당을 나서자 

밋밋한 얼굴의 남자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그러고는 내가 달리자 같은 속도로 따라왔다. 


으스스한 기분은 아까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조금쯤 궁금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저이는 왜 나를 따라오는 걸까. 

그러는 사이에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내 쪽에서 가까이 가지 않는 한 밋밋한 남자는 

절대로 거리를 좁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석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그 남자를 나만 볼 수 있는 듯했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로 매일, 내가 산자락 길을 뛸 때면 

어김없이 밋밋한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위아래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뒤를 따라오되 철저히 거리를 두고.


나는 점점 대담해져서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어이 아저씨, 왜 따라와요?” 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물론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밋밋한 남자에게는 입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지난 주, 평소보다 일찍 달리기 시작했는데 

산자락 입구에서 좌판을 하던 할머니 한 분이

앗,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내 뒤를 바라보았다. 

그 할머니에게는 하얀 어깨띠의 남자가 보였던 것이다.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는 저놈이 보이시지요? 

저놈은 누굽니까. 

이렇게 해서 나는 수수께끼의 답에 이르렀다.


그는 이곳에서 좌판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와는 같이 장사를 하는 동료인 셈이다. 

그런데 이제 막 두 살 된 딸이 ‘아귀 고뿔’이라 부르며 

너 나 없이 두려워하는 돌림병에 걸리고 말았다.


고약하게도 아귀 고뿔은 쉽게 전염됐다.

간병하는 사람도 차례차례 쓰러졌다. 

병은 곧 건강했던 남자의 아내에게까지 옮아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처자식을 장사지낸 그는 전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목구멍이 포초청이라 날마다 좌판을 펼쳤지만

남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울기만 했다. 

누가 어떻게 위로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함께 좌판을 하던 사람들은 보다 못해

위로할 뿐만 아니라 설교를 하게 되었다. 

울지 마라, 정신 똑바로 차려라. 

하지만 그는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을 장사지낸 날로부터 보름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평소 사용하던 하얀 어깨띠를 걸고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한데 그가 죽고 사십구일 후에 묘한 일이 일어났다. 

하얀 어깨띠를 맨 그가 그늘에서 스윽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고는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로 좌판 쪽을 향한 채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 물건을 사러 오면 휙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나타났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무엇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나올 뿐이다.


할머니의 설명으로 나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족을 잃고 울며 지내던 그를 처음에는 위로해 주던

사람들도 점차 그를 꾸짖기 시작했다. 

처자식의 극락왕생을 위해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격려는 

옳은 말이지만 마음이 부서져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된

그에게는 가혹한 질타였다.


그도 나름대로 그만 울자고 마음먹었으리라.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자

목숨을 끊어서 울음을 멈추기로 한 것이 아닐까.


그러고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헤매다가

그를 위로하거나 격려해 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울지 않는 얼굴을. 눈썹도 눈도 코도 입도 없어서

울려 해도 울 수 없는 얼굴을.


거기에 무슨 원한이나 분노가 있으랴. 

오히려 바보 같은 정도로 정직한 반성이 있는 게 아닐까.

자, 이제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울지 않지요. 이제.

얼굴이 없으니까.


참으로 애틋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멱살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입이, 다음으로 코가, 

눈물에 젖은 뺨 위로 두 눈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가 입을 반쯤 벌리고 아아, 아아, 하며 소리를 냈다.

끊임없이 머리를 위아래로 까딱까딱 흔들면서.


눈, 코, 입을 잃고 나서도 내내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한참 동안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아아,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더니 사라져 버렸다.


마치 촛불을 끈 것처럼. 흔적도 없이.

그가 있던 자리에는 덩그러니 하얀 어깨띠만 남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번 명절은 집에서 쉬세요. 잘못하면 저랑 만납니다.”

 

이상,

 

추석을 앞두고 <눈물점>을 연성해 본

마포 김 사장 드림. 

 

덧)

추석 연휴 기간 휴가지의 객실은 만석. 이런 때일수록

‘다른 놈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집에 머물겠다’는

독야청청적 자세가 필요하다 사료되는 바입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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