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은 이제 한반도 우리 조국의 정치현상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한 개인의 영역을 이미 넘어섰다.
소위 ‘조국현상’이라 하여 백서도 나오고 흑서도 나왔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조국을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검찰에 의해 망가져 가는 조국을 구할 사명을 띤 전사로, 또 어떤 사람은 천하의 위선자로 보는 것이 지금 한반도를 가득 매우고 있는 시선이다.
1
많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던 조국은 뛰어난 인물이다.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달변인 말솜씨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대가 없다. 게다기 서울대 법대 최연소 합격자라는 천재적인 머리에 양심어린 눈빛은 지나는 여심은 물론이고 너그러운 남자들의 질투심을 유발할 정도이다.
그런 그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일단 유쾌함이었다. 그가 비록 타인의 우월함을 인정해야 할 때 느끼는 시기심 때문에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야’ 라고 말하게 했지만 그것이 유쾌한 감정을 줄이진 않았다. 타인의 장점을 말할 때 느끼는 격 있는 즐거움을 크게 하는 묘한 매력으로 그의 잘남을 너그러이 용서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정도면 우리 조국을 한 번 맡겨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 왔다.
2
그런데 그가 장관이 되면서 이런 평가는 급격히 출렁인다. 대중이 너그럽게 용서했던 그의 빼어남은 이내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그가 개혁 대상인 검찰을 비롯한 이 땅 기득권 세력의 표적이 되면서 이미지가 흐려진 탓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민심은 확연하게 갈라졌다. 소위 진보와 보수의 갈림은 물론이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그에 대한 지지여부에 따라 일상적 인간관계가 어긋나게 될 정도였다. 이제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정치현상이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의에 저항하고, 시대정신을 깔아뭉개며, 마치 자신들이 나라 위에 있는 것처럼 오만방자한 검찰의 민낯과, 그를 축으로 한 적폐들의 저항에 관해서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으로 미룬다. 그 대신 정치현상의 한 아이콘이 돼버린 사람 조국을 바라보며 우리 조국이 처한 정치의 난맥상을 짚어 보고자 한다.
3
저기, 조국의 초상화 밑에 있는 ‘내 조국’ 이라는 시는 내가 스물 한 살 때 지은 시다. 1981년 초가을 밤으로 기억한다. 서부 최전방인 임진강변 한 전차부대 전차 옆에서 보초를 설 때였다. 한 밤 중천에 떠오른 반달이 어스름한 구름에 가리는 모습을 바라보다 지은 시로 당시 전우신문에 실린 것이다.
반달이 두둥실 떠 있는 초가을 날 밤, 차가운 입술로 너의 입을 맞추며 잘린 허리 때문에 아파했다니...... 그런 고즈넉한 시간에 두고 온 애인이나 생각할 일이지, 조국이 다 뭔가, 조국이....지금 그 나이의 청년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 청년들은 흔히 이랬다. 보편적 정서라고까진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조국을 대하는 마음이 순수했고, 경건했으며, 그것이 매우 피상적이라 할지라도 조국 통일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있었다.
물론 이런 청년의 감상만으로 지금 우리 정치의 한 현상인 조국사태를 바라보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듯 순수하게 나라를 생각하는 정서야 말로 현실에 간섭받지 않고 현실정치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꺼낸 이야기다.
4
다수의 국민이 사람 조국의 잘남을 너그럽게 봐 준 감정이 깨진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검찰과 유착한 적폐언론의 농간 매우 크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가 재산까지 많은데다 자식 사랑이 엄청 나다’ 라는 사실에 있었다. 분명히 적지 않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었다.
이로 인해 ‘그게 뭐 어때서?’라는 사람과 ‘그래도 좀 그렇지’ 하는 사람이 분명히 갈렸다. 이는 그의 뛰어남과는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그의 천부적 자질은 지극히 개인 영역에 속하고 그가 책임질 일도 아니어서 다수의 사람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재산과 지나쳐 보이는 자식 사랑은 좀 달랐다. 사회적 문제와 직접 연결되는 일로 가치평가를 요구했다.
도대체 진보란 뭐지? 재산과 권력과 명예까지 전부 갖겠다는 욕망의 새로운 진일보인가? 라는 허탈함을 동반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조국 전장관은 물론이고 한반도 조국에게도 심한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5
그러나 이런 조국의 상처는 검찰의 폐악질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검찰과 언론의 야합으로 시작된 조국죽이기는 정말로 있어서는 안 되는 방식이었다. 왕조시대에도 역성혁명의 기도 등 대역죄가 아닌 한 아비를 잡기 위해 자식까지 줄줄이 엮은 일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그것은 법 이전에 사람이라면 꼭 지켜야할 인륜의 문제였다. 인륜이 파괴된 세상에선 그 어떤 법집행에도 령이 서지 않음을 수천 년 인간의 역사가 증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윤성열 검찰의 대역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국민들의 천부인권적 가치를 가차 없이 깬 것이다. 그것도 검사동일체라는 이상한 패거리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뭐야? 조국 너 따위가 우리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거야’ 하면서 검찰은 대통령의 인사권까지 무시하는 것으로 우리 조국의 머리 위에 섰다. 더구나 수구 언론과 야합해 민심을 조작하면서,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어둠처럼 뭉쳐있는 검은 세력의 지원을 유도했다 .
그러니 그런 검찰과 언론을 향해 ‘이건 아니다’ 라며 국민들이 나선 건 당연했다. 어쨌든 조국을 먼저 살려 놓고 쿠데타 검찰을 때려잡자는 데에 국민의 마음이 급격하게 응집했다.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로로 나섰고, 그런 시민의 마음이 민심의 주류였음을 4.15총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그의 열혈 지지자들 문제만이 아니다. 40년 전 한 초병이 그렸던 조국을 그래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 온 사람들 70% 정도 역시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로 인해 한 차례 내홍을 겪기도 했지만, 당장 미쳐서 날뛰는 늑대를 어쩌겠는가. 쿠데타 검찰을 그대로 놔두면 촛불의 힘으로 겨우 바로 세운 나라가 다 무너질 판인 것을, 사람 조국을 그대로 죽게 놔두는 건 바로 우리 조국이 쓰러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을......
그렇다고 그들이 젊은 시절 그 정서를 말끔히 포기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우리 조국이 검찰과 언론의 패악질에 또다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충정이 자기 신념을 꺾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조국, 그의 곁에 서자고 마음을 먹은 것이리라.
그것이 조국曹國을 바라보며 또 다른 조국祖國을 생각한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이다.
--------------------------------------------------------------------------------------------------------------------------------------------
어떤가요? 여러분은 안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