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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파업으로 인해 발생할 피해
게시물ID : humordata_18773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의지가박약
추천 : 16
조회수 : 2388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20/09/10 13:18:14
제가 지금 육아서를 읽고 있는데요
여기 글쓴 저자분의 아이가 2007년도 
당시 소아암으로 투병중이었다고 해요.
신촌 세브란스 소아암 병동에서 있었고
당시 의사와 병원관계자들은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투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파업소문이 현실이 되는 건 며칠이 걸리지 않았고
간단한 항암제나 링거 처치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소아암 병동의 부모님들는 모두 설마 우리 병동은 아니겠지
설마 소아암 병동까지 폐쇄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믿었지만
결국 모든 병동 무균실 응급실까지 문을 닫았고
아이들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몇 명의 간호사,
군의관으로 근무중이었지만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기위해 온 전공의, 인턴과 레지턴트 몇 명이
겨우 문을 열어놓은 상태였다고 함니다.
밤마다 아픈 아이를 재워놓고 모인 부모님들은
걱정스럽게 서로의 안부와 아이들의 상태를 물었고
누군가는 무균실에서 간호사도 없이 이식수술을 하고
누군가는 간신히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 대책없이 기다리고
그리도 또 누군가의 아이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암수술을 하고 26개월 동안 항암을 받던
귀여운 여자아이는 모든 검사실이 폐쇄되어
검사를 받지 못하고 통증을 누르기 위해 24시간 동안
모르핀만 맞았다고 해요.
아이의 부모님은 만나는 관계자들에게 화를 내고
기자들에게 하소연을 해 기사를 냈지만
아무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의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돌아섰습니다.

배가 아픈 아이가 도저히 눕지를 못해 
엄마는 아이를 휠체어를 태우고 병동을 거닐고
노조는 승리한다는 표어가 걸린 병동에서는
단결투쟁가가 흘러나옵니다. 아픈 아이의 엄마는 모든 걸 
체념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병동을 거닐 뿐이었죠.
글쓴이는 그 모습을 보며 배신감과 절망을 느꼈다고 해요.

저자는 원래 계급, 자본주의, 노동자, 투쟁과 이념을 믿는
사람이었고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억울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죽어갈 것을 알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의사들과
병원 관계자들을 바라보며 글쓴이는
 '나는 속았다. 무지했다'라고 말합니다.

파업은 끝났고
저자의 아이는 퇴원을 했지만 
그 날 배가 아프다던 아이는 이후에 검사에서
역시나 암이 재발했음을 발견했고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으며 그렇게 하늘로 떠나버렸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장례식 내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장례식이 끝난 후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로 병동에는 매일 코드블루가 뜨고
아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50번째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자는 헤아리기를 멈추었습니다.

그 사건은 저자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처참하게 스러졌던 세월호 때도 
저자는 그 참사와 관련한 모든 정보에서 멀어져있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마를 견디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세월호를 추모하고 싶어했고 아이와 함께하며 
조금씩 그 트라우마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집어든 책이었는데
지금의 시국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일화를 읽으며
의사들이 복귀했으니 어찌되었건 일련의 사건들이 정리되어
아픈 사람들도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단순한 제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도 알게되었습니다.

2007년 그 때와 같이 지금도 수많은 병동에서는
코드블루가 뜨고 살아갈 수 있었던 찬란한 생명들이
빛을 잃고 꺾여가겠지요. 또 그에 대한 부채감은 
자신의 자리를 가볍게도 훌훌털고 나섰던 의사들이 아니라
그 환자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지게 되겠지요.

아프지 않았고 건강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있지만
그것이 순전히 운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수많은 환자들을 외면하고 생명을 뒤로한 채
자신의 영달을 위해 투쟁이라는 오만한 슬로건을 내걸었던
의사들과 그 관계자들을 잊지 않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
한 때 지나간 사건으로 치부하고 
마음 속 가장 외진 곳으로 밀어놓지 않는 것.

그것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부터는 
내가 살아갈 세상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죄책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아이에 대한
고마움이 늘 마음 속을 번갈아 드나들지요.

모두가 오랫동안 이 일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표면에 드러난 사건들 말고도 이 사건이 일으킨
심층적인 피해까지도 관심을 기울여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픈 이들이 병마로 세상을 떠나는 건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알고서도 구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출처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김경림>
책 내용을 구술하고 제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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