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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서툰 의사와 대화에 서툰 정부
게시물ID : society_6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M
추천 : 0
조회수 : 87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0/09/05 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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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정부와 의사들, 그 중에서도 전공의들과 왜 제대로 된 협상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을 적었습니다. 이번 글은 지금까지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와 의협, 대전협 전부 일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작성합니다.

 

 

 

9월 4일, 오늘 오전에 이번 파업에서 정말 큰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최대집 의협회장이 여당 및 정부와 합의를 했는데 대전협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며 합의를 인정할 수 없고 전공의들의 파업을 지속하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 일은 좀 있다 뒤에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의사들은 완전 콩가루 집안이구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내부에서는 최대집 회장에게 뒤통수 한번 제대로 맞았다 하는 상황이죠. 저도 의사니깐 의사들에 대해 먼저 말해보려 합니다.

 

 

파업에 서툰 의사

 

의사들, 정확히 말하면 지금 파업을 주로 이끌어 나가는 전공의들은 파업, 투쟁이라는 행동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보통 중고등학교때는 범생이처럼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다가 의대에 들어왔고 의대 안에서는 또 의대 공부에 치여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죠. 보통 대학교에서는 학생회에서 이사장이나 학장의 비리같은 부조리에 대해 수업거부 등 투쟁을 하는 일이 있는데 의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제가 다닌 학교의 경우에 주 5일, 아침 9시부터 늦으면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고 2주에 한번씩 시험을 치면서 그 중 한번이라도 F 가 나올 경우 1년 유급을 하는 시스템인데 무슨 파업이고 투쟁을 할 수 있을까요? 다른 학교도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졸업하고 인턴, 전공의를 하면서 부조리를 겪어도 그 부조리를 행하는 사람이 교수님이고, 선배들이라서 대부분 참고 전공의만 끝내자는 마음으로 전문의를 땁니다.

파업이나 투쟁도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겠죠. 학생 때는 공부, 인턴 전공의 때는 일만 하던 사람들이 언제 파업을 해봤겠습니까. 그러니 파업을 하면서 '덕분이라며 챌린지', '공공의대 출신 의사 vs 풀컨디션 조민 vs 소주 3병깐 이국종 교수' 이딴 의사 파업에 하등 도움되지 않고 반감만 불러일으킬 행동을 했겠죠.

 

 

의사들이 파업에 서툴다고 생각한 다른 이유는 파업을 하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명확한 대안 제시가 없었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4대 정책은 어쨋든 낙후된 시골지역의 부족한 의료와 코로나 같은 큰 감염질환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발표한 것이죠. 물론 저 정책들이 진짜 의도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도 부정적이고 정말 순수하게 그 의도만 가지고 만들었냐는 다른 문제지만요. 그러면 의사들이 4대 정책을 반대하면서 이렇게 파업을 한다면 적어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가 정상화요? 저도 지금의 의료 수가에 문제가 많고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지금 정부에서 제시하는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한 번에 정상화 할 수도 없을겁니다.

파업 시작 후 첫 번째 정부와의 대화에서 의협은 의대생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철회하면 첩약이나 원격의료는 한발 물러서서 양보하려는 자세였는데 대전협에서 4대 정책 모두 철회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틀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대전협이 파업을 주도하게 되었구요. 대전협에서 정부에게 4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다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있나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의협과 대전협의 갈등은 외부에서 파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기엔 촌극일 겁니다. 이번 일을 시간 순으로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8월 20일 의협, 대전협, 의대협 등 은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를 만듭니다.

28일 2차 범투위 회의에서 산하단체의 의견을 모은 합의안을 마련해서 정부랑 협상하기로 하고 '이후 진행되는 협상에 대해서는 최대집 의협 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기로' 합니다.

9월 3일 오후 1시 경 3차 범투위 회의에서 대전협, 전임의협, 의대협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합의안 초본을 만듭니다.

3일 오후 11시 경 의협과 대전협이 민주당과 1차 만남을 가지고 합의안에 대한 내용은 논의하고 4일 새벽 1시경 헤어집니다.

4일 새벽 2시 경 민주당에서 의협에 논의했던 합의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3시 30분 경 민주당에서 수정한 합의안을 다시 의협에 보내면서 수용 가능 여부를 물어봅니다. 이후 새벽 4시 경 의협에서 대전협 임원들에게 전화를 시도했지만 받지않아 메세지를 남겨놓습니다.

오전 6시 30분 경 대전협 대표가 의협에게 민주당에서 보낸 합의안에 보완할 내용이 있으니 다시 회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7시 30분 부터 복지부-의협 합의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죠.

제가 알기로는 의협 임원들도 이때까지는 정말 합의를 하는 것인줄 몰랐을 수 있습니다. 대전협 임원들이 뉴스를 보고 의협 임원들에게 연락을 하자 오보라고 했다고하고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최대집 회장의 독단이었다고 하니까요. 전공의들도 그 당시에는 오보라고 알고 설마 진짜겠어? 설마설마 하고 있었습니다.

10시 경 라이브 방송에 최대집 회장 나오는 순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전공의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후엔 뭐 복지부와의 협상을 몸으로 막으려고 달려나가는 전공의들, 대전협 대표와 최대집 회장과의 통화록 유출 등등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결국엔 의협과 복지부가 합의를 하고 최대집 회장이 파업 종료와 전공의 복귀를 선언합니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이번 일을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처음 파업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던 사람이 나중에는 제일 앞에서 파업하는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고 혼자 도망가는 모양새이지 않나요? 저도 제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의사들은 똑똑한척 하는 병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뭐 지금보니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구요. 애초에 2차 범투위 회의에서 의협 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보통 일반적인 파업을 할 때도 여러 단체가 모인 상황에서 대표 한 명에게 협상에 전권을 위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파업도 많이 해봐야 잘 할 줄 알겠죠.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은 이번 파업을 하면서 의협과 대전협이 정부의 4대 정책을 비판하면서 파업의 이유로 내세운 명분들이 제가 보기엔 너무 허접하다는건데 이건 내용이 길어질 것 같아 다음 글에서 적어볼 생각입니다.

 

 

 

 

대화에 서툰 정부

 

이번엔 정부 얘기를 해봅시다. 전 일개 전공의일 뿐 정부와 대화를 하러 나갔던 대전협 대표단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도 파업 초기에 의사와 '대화'를 하러 나온 정부의 대표는 대화를 하려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공무원, 특히 고위 공무원과 대화나 일을 해보신 분들은 공감을 하실텐데 권위적이고 실무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짜증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많죠. 지난 글에서 저는 대전협과 정부가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첫 대화에서 복지부 대변인이 대전협 대표에게 보였던 태도 때문이라는 내용을 썼습니다. 이후 대전협과 정부의 대화는 여러번 어긋나는데 그 때마다 대전협 대표가 전공의들에게 했던 말은 정부는 어떻게든 꼼수를 써서 이번 사태를 넘기고 싶어한다, 앞과 뒤가 다른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정부를 믿을 수가 없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문서화를 하지 않으면 협의를 하지 않겠다 였죠. 이건 전공의들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정부는 파업에 참가한 전공의에 대해 여러가지 제제를 가합니다. 행정명령을 내리고 불응한 전공의를 복지부가 고발했습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전공의가 불법적인 진료거부를 하고 있다고 보고 명령을 내리고 고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앞에서는 계속 대화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동시에 이런 제제를 했다는 거죠. 파업을 하는 전공의 입장에서 대화를 하자는 사람이 동시에 우리를 고발하고 있는데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의사의 파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전 행정명령을 내리는 정도에서 멈췄으면 적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복지부의 고발 이후 전공의들의 파업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고 전임의, 교수님들까지 파업을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의사들이 SNS 에서 삽질을 했다면 정부에서도 크게 한 건 했습니다. 바로 화제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메세지 죠. 그 중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이 구절들이 갈라치기 비판을 받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비서관이 썻다고 하는데 과연 이 글을 쓰면서 이런 논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누가봐도 의사를 비꼬는 느낌인데? 알고 썻다고 하면 협상을 하는 대상을 자극하는 행동이라 부적절한 것이고 모르고 썻으면 비서관의 자질이 의심됩니다. 차라리 간호사를 격려하고 싶으면 의사는 언급하지 말고 간호사 격려만 하던지 왜 굳이 파업하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메세지를 올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정부의 태도나 대화의 전략을 보면 국민들과 대화하는 정부가 맞는지 의아한 기분이 드네요. 전략적으로 보면 반대하는 집단을 흔들고 와해시키고 무너뜨리는게 편할 수 있겠지만 그게 소통하는 정부인지는 의문입니다.

 

 

 

 

적고 보니 같은 의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보기때문에 오히려 더 잘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그럴까요. 애초에 파업을 반대하긴 했지만 이번 최대집 회장의 행보를 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런 파업을 지속했나 하는 허탈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아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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