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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 ‘원순씨’의 배낭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님, 그는 누가 뭐래도 ‘다 함께 흥겨운 세상’을 열기 위해 혼신을 바친 공훈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그의 죽음에 더욱 겸손해지며, 그의 진혼을 위해 한 편의 글을 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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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안녕!
이 인사는 우리 원순씨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원순씨는 이 말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날, 사진에서 본 것처럼 등에 멘 배낭의 잔영을 길게 남긴 채 옛사람이 된 것입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정문 근처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온 곳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아 참!
여기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님을 ‘원순씨’로 부르는 것을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몸의 언어, 이름처럼 순하고 소박한 이미지를 지닌 자신을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랄 것 같기에 그리 부릅니다. 원순씨와 가까이서 대면한 적은 없지만, 대중의 평균적 시선일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 천상 그랬습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온갖 언론이 더러운 입을 벌려, 그가 성추행범이었음을 강요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백태가 낀 그들의 눈으로 원순씨를 바라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으니까요, 제게 성인지감수성인지 하는 것이 매우 낮아서 그런 건진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우리 원순씨의 일생을 정리합니다.
아무튼, 우리 원순씨는 그렇게 무수한 억측을 뒤로 한 채 갔습니다. 정치인이라면 흔히 있을 법한 엄숙함도 또 어떤 비장함도 남기지 않은 채, 마치 새로운 바람에 끌린 여행자처럼 그렇게 훌쩍, 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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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래서 그런지 모릅니다. 제 눈엔 cctv에 잡힌 마지막 그의 배낭 멘 모습이 긴 잔영으로 남았습니다. 마치 이승에서 저승으로 들어서는 어떤 관문을 통과하듯 점점이 작아지던 그의 검은색 배낭, 그건 단순한 배낭이 아니었던 겁니다. 소소한 물건을 담는 도구 이상의 의미와 상징으로 읽혔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낡은 배낭과 해진 구두는 우리 원순씨의 상징입니다. 그는 언제부턴지 허허 거리면서 배낭을 메고 대중 앞에 다가왔다가, 그를 잠시 벗어놓고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 다음, 다시 배낭을 메고 바삐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전에 대중이 접했던 서울시장의 근엄틱한 모습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허름한 배낭처럼 소탈하고, 친근하고, 근면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몸의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배낭이 그렇게 긴 잔영으로 남아, 우리 원순씨는 이런 사람이었어요, 라고 우리에게 말없는 말을 건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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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배낭을 모두가 그렇게 본 건 아닙니다. 원순씨의 죽음을, 그의 불행을 무슨 횡재라도 만난 것처럼, 질 낮은 사람들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교차로 자극하면서 떠들어 대는 황색 언론은 달랐습니다. 이마저도 그의 위선을 더하는 것으로, 자신의 검은 속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연출도구로 썼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구린 입에 속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진실을 캐기보다는 꽁꽁 감추고, 자신의 검은 입이 흘린 거짓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리려 자랑으로 여기는 저들의 눈엔 그리 보였을지 모르지만, 글쎄요, 그들의 바람과는 반대가 아닐까요? 조중동을 비롯한 기레기 너희들, 김재련인가 뭔가 하는 그 노랑머리 여자처럼 피해자중심주의를 말하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는 관음중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지, 하며 오히려 꾸짖을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든 긍정적 상징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 언어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일생을 관통하는 선한 에너지가 반복적 행위에 의해 축적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상징은 이미지 언어를 획득하게 되는데 그런 상징적 언어는 통상적 말보다 큰 힘을 가집니다. 타인에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본질의 의미를 전하는 최상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뭐, 자기 사주의 성 착취로 고아나 다름없던 여배우가 죽었던, 일명 장자연 사건 땐 처닫은 입에서 곰팡이가 필정도 말 한마디 않던 기레기들이 이를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에게 휘둘릴 것 없이 진도를 나가야겠습니다.
4.
다시 원순씨의 배낭입니다. 우리 시야에서 점으로 멀어지던 그는 숙정문 근처에 이르러 가쁜 숨을 몰아쉰 다음 아마도 그 배낭을 벗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곤 자기와 일생을 함께 한 배낭을 한 번쯤 물끄러미 바라봤을 것도 같습니다.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여행길은 배낭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그런 여행일 테니까요.
저는 그 순간 우리 원순씨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모릅니다.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원순씨의 상징이었던 배낭과, 그의 해진 구두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숙정문(肅靖門)’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으로 그를 가늠해볼까 합니다.
앞서 말했듯 배낭이 그의 상징이 된 것은 많이 메고 다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중동 등 악덕 기업의 종업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징이 그런 식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뭐에 쓰겠습니까. 원순씨 배낭이 그의 상징이 될 수 있던 것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는’ 또는 ‘집시 같지만, 바람기가 정제된 유쾌한 행적’을 이끈 생의 에너지 같은 거요.
그건 그가 아주 어릴 때 친 부모님 곁을 떠나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가는 순간부터 비롯된 일일 겁니다. 원순씨처럼 영민한 아이라면 친근한 엄마의 품을 떠나 낯선 이의 곁으로 가야했던 그 시절이 아주 중요했을 것입니다. 이때 그의 삶은 그의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바람과 배낭을 지고 살아야 하는 삶, 한 곳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야 하는, 그래서 지금, 바로 여기, 현재적으로만 살아가야하는 삶과 운명으로 얽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의 행적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수없이 집과 본가를 오갔을 청소년기에도 물론 그랬겠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 법대에서 단국대 사학과로, 검사에서 인권변호사로, 인권번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다시 서울시장이라는 정치인으로 그는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안주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배낭 하나만 있으면 떠날 수 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처럼 그렇게 자신을 펄럭이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를 뿌려 놓았습니다. 민족문제역구소, 아름다운 재단, 참여연대 등 자기가 힘들여 이룬 것에 욕심을 내지 않고 배낭과 함께 홀연히 떠날 수 있었기에 더 크게 이룰 수 있던 다양한 성취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한줄기 바람이 든 것 같은 그의 배낭이 원순씨의 상징이 될 수 있던 것입니다.
5.
그런데 글이 좀 길어지는 군요. 원래 이런 글은 기, 승, 전, 결 네 단락으로 끊겨야 제 맛이 나는데, 원순씨가 아직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영웅의 서사구조는 꼭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섯 단락의 구조를 갖는 것이기에 원순씨를 말하는 순간 이렇게 길어진 것도 같고요.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에겐 원순씨의 헤진 구두가 멈춘 ‘숙정문’의 의미를 헤아리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늘 등에 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았던 곳, 말년에 온 성심을 다해 뛰어다니던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 곳, 저는 원순씨가 숙정문 앞을 의식적으로 이승의 마지막 기착지이자 전혀 새로운 여행의 출발지로 삼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숙정문(肅靖門)이 상징하는 의미를 집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원래 숙정이란 징기즈칸이 초원을 정복할 때 그의 잠자리를 편히 지키는 숙위군(宿衛軍)에 그 뿌리를 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숙정문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으로 보면 북쪽은 문명, 혹은 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 이승에서 삶을 다한 육체의 껍데기를 벗고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가 편히 쉬는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그곳에서 하나로 모여 일원성으로 회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장하면 동양 특유의 선의국가론과 맞닿습니다. 숙정문이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건 자신의 편한 잠자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일반 시민의 편한 잠자리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한 최종수호대의 선의를 함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곳이 우리 원순씨가 평생 짊어지고 다녔던 배낭을 내려놓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이제껏 지난 성취에 메이지 않고 현재적 삶에 충실했던 원순씨의 궤적에 맞는 것 같습니다. 가치는 있으나 고단했을 삶을 우리 원순씨는 그렇게 서울시민들 곁에서 정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정도 600년 서울의 역사 가운데 그는 도성의 책임자로 가장 오랜 기간 봉직한 연인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를 통해 원순씨의 인생관과 서울사랑과 높은 식견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그를 성추행범으로 기억할 사람도 있다 게 영영 께름칙합니다. 많이 양보해서 피해호소인의 입장을 헤아려 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께름칙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으니 제가 부족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수식은 참기 어려운 모욕처럼 느껴집니다. 아닌 말로 우리 원순씨가 그토록 사악했다면 그녀의 몸이 온전히 남아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사람의 추체험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입니까. 지난 시간이 아니라 현재가 반영된 그림자로 나타날 경우가 매우 많은 것 아닙니까. 그때는 추행인지 어렴풋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용기를 낼만큼 확실하다니요......이건, 뭐, 덩인지 된장인지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죽긴 왜 죽어?’
하면서,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도 계실 터인데 그런 분들께 한마디만 하고 마칠까 합니다. 우리 원순씨처럼 자기가 이룬 성과의 크기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배낭을 메고 낫선 곳으로 떠날 수 있는 현재적 삶을 사는 사람의 알킬래스 건을 헤아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이 강자에겐 아주 강하지만, 약자에겐 한없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늘 새롭게 하는 현재적 삶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 인간 보편의 선의에 대한 긍정과 믿음일진데, 진위가 어떠하든 그런 선의를 두고 자기 곁에 있던 약자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낯선 것이었겠습니까. 더구나 딸 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원순씨의 해진 구두를 멈추게 한 건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어느덧 자기 몸에 체화된 삶, 언제든 배낭과 함께 떠날 수 있는 현재적 삶을 이 일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막막함일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처럼 전혀 새로운 곳으로의 떠남은 어쩌면 우리 원순씨에겐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 여행길만이 오직 그의 현재적 삶을 받아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여행은 배낭조차 필요 없는 간결한 것이기에 현세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지 싶습니다. 자기를 변명하기보다 ‘내 삶과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는 그의 유서에 그런 태도와 심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는 숙정문 곁에서 절대 고요에 싸이는 순간 아주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한번 ‘모두 안녕’ 하는 마지막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이미 지나 온 현세가 아니라 그때쯤 문득 와있었을 어떤 무엇을 위해서요.
아마도 그런 달관과 사랑이, 그리고 일원적 신성이 우리 원순씨 배낭에 한 줄기 바람과 함께 들어있었지 싶습니다. 그의 진실한 마음이 이제껏 쌓아 논 것들이겠지요. 그래서 저도 그에게 좀 미루었던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 원순씨 잘가요, 라고......
그는 이미 잘 가고 있을 것이지만 더 잘 가라는 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