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시 화여세계(義城金氏 火餘世系)"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이던 1592년, 김성일(1538년)의 친조카로 임진왜란때 안동수성장을 지낸 김용(金涌, 1557~1620)이 그의 막내아들 옷깃에 집안 족보를 적어 꿰매넣은 것이다.
김용은 자녀로 아들만 여섯이 있었다. 안동에 살던 김용의 아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섯아들을 데리고 청송으로 피난을 갔다. 김용은 이런 일을 대비해 그의 다섯살난 막내아들인 김난수 옷깃에 창호지에 가는 붓으로 족보를 써서 꿰매주었다.
김용의 가족은 피난가던중 막내아들을 잃어버렸다. 또한 그가 입고 있던 옷에 불이 붙어 족보가 절반 이상 탔다. 후에 그는 문경에 있는 김해김씨를 가진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김시과라는 이름을 가지고 농사꾼으로 살았다.
1805년, 김시과의 8대손인 김순천 대에 이우량이란 사람이 이 문서를 보고 의성김씨 문중에 편지를 보냈고, 김순천은 이 문서들을 들고 안동에 의성김씨 종가를 찾아갔다. 의성김씨는 문중회의를 열어 확인하였고, 문중은 수백년만에 잃어버린 막내아들과 그 자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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