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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宋昌植) - 예술가 경지에 이른 소중한 국보급 가수
게시물ID : humordata_18681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r.Blue.
추천 : 10
조회수 : 1773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20/06/20 16: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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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宋昌植) - 예술가 경지에 이른 소중한 국보급 가수

 

이땅에 사는 사람치고 송창식이란 이름을 모르거나 그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 등의 활동이 많지 않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로 인해 필자 생각으로는 가장 위대한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그가 이루어놓은 성과와 영역은 많이 저평가되어 있는 가수가 아닐까 싶다.

 

가수를 평가하는 여러 잣대가 있겠으나 가창력, 독창성, 끝없는 변신, 자기관리 등을 생각해볼때 송창식 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떠 올리지 못하겠다.(물론 개인적인 생활과 인성은 알지 못하나 지금까지도 계속 노래하고 목소리, 연주력 등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어설픈 범인들은 따라갈 수 없는 범주일 것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기존 체계에서 음악을 습득한 것이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음악에만 매진하여 경지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한국적 정서를 살린 음악과 독특한 가창력이 다른 비슷비슷한 가요들과는 차별화되어 있어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비슷한 음악을 하는 이들은 나올 수 있어도 그를 넘어서는 가수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곡들을 남기었다.

 

송창식 본인 작사, 작곡의 곡도 많아 한국 가요사에서 단 한 명의 천재를 꼽는다면 보컬을 비롯해 작사, 작곡까지 통틀어 '송창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과한 말이 아니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일화들도 많으나 음악인은 음악으로 평가 받는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되어 옮기지는 않는다.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에 자료가 많으니 찾아 보셔도 좋을 듯하다.)

 

세시봉 출신으로 1970-80년대 포크송계를 주름 잡았었고 윤형주와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윤형주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1970년에 솔로로 전향했다. 

 

개인적으로는 송창식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솔로 시절이며 듀엣으로서의 곡들은 어울림에 초점을 둔 세련되고 감성적인 음악들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곡들이라 생각한다.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녹아나는 그의 고민과 함께 음악인으로서의 뛰어난 감수성을 유지하여 조화시키는 그의 능력이 수많은 걸작으로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워낙 좋은 곡들이 많아서 베스트 앨범으로 링크는 했으나 여유가 되시는 분은 한곡한곡 음미하면서 찾아 들으시면 훨씬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들을 나열해본다.

 

하얀 손수건



피리 부는 사나이



한번쯤



고래사냥



왜 불러


사랑이야


토함산


가나다라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상아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


우리는 


푸르른 날


그리고 유일한 CM송 빙그레 투게더 ㅋㅋ

 

야구계에 많이 회자되는 말 중에 "야구는 이종범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음악과 인생은 송창식처럼"이라고 말하고싶다...

그는 실로 음악과 인생 모두에서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모두들 오랜기간 축적된 장인의 작품을 즐감하시길...


출처 http://onlinelife.co.kr/bbs_detail.php?bbs_num=43&tb=board_art&id=&pg=1&menu_number=490&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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