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많이 자지 못한 채로 눈을 뜬 수영 앞에 끙끙대며 윤이가 신음하고 있었다. 통증이 윤의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윤이의 부러진 팔은 수술이 필요해 보였다.
그 급한 와중 윤이를 잡아 끌던 수영 본인의 완력에 부러진 것이라는 점 때문에 수영은 크나큰 책임감과 죄책감에 온몸이 저리는 듯 했다. 그런데 윤이가 중얼 거린다. "아빠 탓 아니야" 아빠 수영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한 어린 윤이의 한마디가 너무나 깊고 놀라워 수영은 와락 쏟아지려는 눈물샘의 통증을 느꼈으나.. 정서적으로 무너지지 않기위한 온갖 노력으로 그것을 붙들어 맨다.
'윤아 미안하다 먼저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자' 수영이 나직하게 윤이에게 말하고 연이를 보니 엄마의 끔찍한 죽음을 지켜보며 도망친 연이는 정신적으로 지쳤는지 잠들어 있었다. 당장 급한 것은 음식 그리고 그 다음 윤이를 치료할 병원 내지 의료인이었다. 공장안에 정체 모를 기계는 많아도 음식거리가 되어줄 만한 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여전히 날이 어두워서 구석구석 잘 보이지도 않았다. 며칠만에 도심지 구석이 이렇게 황폐화 되고 말았다. 동물들의 행동은 여러가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수영은 동물학도도 생물학도도 아닌 그 근처에도 들지 않을 어학전공자일 뿐이었다. 사실 그리 신통할 게 없는 영문학. 그것도 최근까지 그는 입시를 가르치는 강사였다. 영문학자라기보다 강사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자조하는 말을 남기곤 하던 그였고, 그런 수영은 갑자기 동물을 연구하고 알아봐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현 상황의 무게감을 느꼈다.
그런 생각으로 공장 안을 전등으로 살피며 둘러보던 그의 앞에 반짝반짝하는 빛이 두개 보인다.
...수영은 그 두개의 빛이 동물의 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두렵고 긴장된 마음에 그 빛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전등을 갖다 대려 하는 순간 빛은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등을 움직일 때마다 빛은 다가왔다.
자신에게 전등을 비추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도 되는 듯 했다.
수영은 판단하지 못하고 한참 빛을 노려 보았다. 결코 큰 짐승은 아닌 듯 했으나 그 짐승이 잔뜩 웅크려 있어 빛의 위치가 낮은 경우 또한 있을 수 있으므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누워있는 뒷쪽까지 천천히 후퇴하고자 했으나.. 얼핏 보니 그 두개의 빛 다른 것이 아이들 쪽에 있는 듯했다.
수영이 발걸음을 후퇴함에 따라 눈 앞에 있는 두개의 빛도 보폭만큼 따라온다. 대단히 신중한 생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떠오르는 온갖 동물들이 있으나 지금은 궁금증을 풀기보단 아이들 옆으로 가는 일이 더 급하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위치를 향해수영은 계속 천천히 발을 디뎠다. 그러던 와중 아이들 쪽의 빛이 빠르게 아이들에게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이제 수영은 뛰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떤 규모의 생물인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깨어있던 윤이가 소리지른다. 아빠 오지마!
수영이 놀라며 윤이쪽으로 회중전등을 비추려 하자 다시 윤이가 외쳤다 "안 돼 아빠. 빛도 비추면 안 돼. 아빠가 다가오면 얘들도 다가와!"
이제 수영은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