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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펌)k방역의 환상에서 벗어납시다
게시물ID : corona19_35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꽁밥
추천 : 10/31
조회수 : 2228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20/05/29 23:59:47
의사인 지인이 올린 글인데요 공감이가네요

지난 수 십 년 간 민주정권을 지지하며, 특히 이번 정권을 열렬히 지지해 온 촛불 시민으로서, 의사로서, 전직 역학조사관으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청원을 올립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어지간한 국가적 노력으로는 완전히 극복할 수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이 바이러스가 더 세고, 상당 기간 계속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초반에 그럭저럭 선방하다가, 대구 신천지 사태로 크게 곤욕을 치루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잘 넘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이후 크고 작은 혼란이 있기도 했고 정리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는데, 어차피 이런 감염병의 특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너무나 큽니다. 상당 기간, 어쩌면 영원히 코로나19 이전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정부부터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K방역 - 이름 좋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메르스 이후에도 여전히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대구 신천지 사태 때 필수 의료인력/방역인력이 부족해서 전국의 의료진들에게 자원봉사를 호소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헌신을 하여 간신히 틀어막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두 번은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헌신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상처 받고 홀대 받은 것을 다들 잘 알기에, 두 번째부터는 자원봉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수 있습니다. 공공보건의료가 바닥 수준인 현실을 깨닫고,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보건의료체계의 핵심 요소인 '인력'이 안 되는데, 이게 무슨 자랑할만한 K방역입니까?

K방역 - 드라이브 스루, 워크 스루 - 뭔가 멋있고 대단하고 좋아보이지만, 사실 매우 임기응변으로 ..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00% 피검사자 안전을 생각하면 - 사실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는 방법인데도 -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보편화/영구화할만큼 최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패키지로 하여 수출(?) 혹은 전파(?)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그냥 누구든지 보면 따라 할 정도이지 대단한 비법이 있는 방법도 아닙니다. / 그리고 .. 물론신속한 검사를 위해 키트 개발 잘 했고, 질본이 잘 진두지휘하고, 식약처도 일 잘 한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입니다. 그것만 갖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K방역 - 여러 가지 앱 개발 - 잘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닙니다. 전체 보건의료체계를 감염병 위기대응을 위해 돌리는 과정에서, 보조적 도구로 쓰는 것입니다. 물론 중요하고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K방역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냥 좋은 필요조건일뿐입니다. 보건의료체계 전체의 틀이 중요한 것이지, 이렇게 아이템 몇 개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물론 잘 한 일도 많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우리 정부가 이런저런 일을 잘 한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놈입니다. 자화자찬, 남들이 칭찬해주니 거기에 홀딱 반해서 기분 좋아하고 있으면, 그 다음 파도가 몰아칠 때는 그냥 쓸려내려 갑니다.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환자를 진료할 때, 내가 이 환자를 살렸고 앞으로도 이런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그 다음 환자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겸손 정도가 아니라, 처절한 자기비판(실수한 것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어 고치기)을 통해 더욱더 과오를 줄이기 위해 바둥거려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태원 - 쿠팡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역사회 만연으로 흐르는 위험한 순간이고, 등교 개학을 강행하면서 불꽃과 불꽃이 만나는 위험한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K방역이라고 칭찬해주었던 외신들, 외국 정상들,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판할 겁니다. K방역을 관련된 모든 국가기관들이 수출/해외전파/홍보를 위해 애를 쓰고 있고, 그것을 도와 달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옵니다. 하지만 우리의 스텝이 꼬이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빨리 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더욱더 위험한 순간에 있고, K방역 어쩌고 브랜드 네임 놀이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지랖 넓게 다른 나라 신경 쓸 때도 아닙니다. 앞으로 수 년 간 지속될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말 처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K방역이라는 이름부터 내려놓고, 급식경제를 위해 등교 개학을 강행하는 고집도 포기하고(그냥 식자재 구입해서 각 가정으로 배송하세요), 해외 여기저기 돕는다고 오지랖 넓게 뭐 하려는 것도 좀 미루고, 국가기관들 동원해서 K방역 해외 홍보 추진하는 것도 제발 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 이 민주정권을 지지해 온 시민들의 진심을 좀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함께 건강하게 잘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진대,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그르쳐야 합니까? 자만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속이 상하고, 이러다가 정말 큰 일 나겠다는 마음에, 기나긴 글로 청원 아닌 청원을 올립니다.

마라톤 42.195km 중에서, 우리는 이제 겨우 5km 정도 지났을 겁니다. 지금 선두권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디 환상에서 깨어납시다.
출처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S2D0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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