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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거나 뻔한 이야기(37) / 만남은 행운이었다.
게시물ID : readers_348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수와영이
추천 : 1
조회수 : 35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5/14 22: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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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여자는 남자와의 만남을 행운이라고 했다. 첫 만남이 있고 난 후 여자는 남자에게 매우 직설적으로 말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당신으로 인해 기쁨과 행복이 넘칠 때면 이리저리 별 생각을 다 해봐도 너무 신기하고 오묘할 뿐입니다.
 
함께하는 길의 어떤 오솔길에서는 나도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지만 당신에게 난 늘 어린아이 같겠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사이사이에 당신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신과의 만남은 저에게 행운이라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의 만남은 행운입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이 말을 참 좋아했다. 둘은 어느새 서로를 행운의 부적처럼 생각했다
 
글쎄. 그러고 보니 삶이란 참으로 순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꼭 사진 한 장 찍을 사이처럼 순간적일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만남이 우연인 것처럼 사랑함 역시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함은 오랜 관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관찰은 관심으로부터 비롯되며, 오랜 기간 마주함으로 가능하다. 마주함은 교감을 위해 준비된 시간들이다. 교감은 사랑의 전주곡이다. 사랑은 그때 비로소 아무도 모르게 찾아든다. 그런 탓에 사랑은 배품이고 배려이다.
 
여름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이런저런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바쁜 일상에 묻혀 지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둘만의 은밀히 밀회는 지속되었다. 때론 눈 맞춤으로, 때론 은밀한 스킨십으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탐했다. 밀회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늘 쾌활하던 여자가 좀 다소곳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그런 여자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하여튼 남자와 여자는 그런 일상을 즐겼고 또한 즐거워했다.
 
그 즈음 여자에게 중요한 일이 닥쳤다. 여자가 그토록 원했던 전문직 입직 시험이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권하여 시작한 일이었지만 왠지 남자가 옆에 있으면 시험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는 처음 도전해보는 일이라 긴장했고 간절히 바라던 일이라 철저히 준비하고 싶었다. 여자는 그 일에 대해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자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결코 여자의 촉촉하고도 은밀한 눈길을 외면할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여자는 사랑스런 얼굴로 남자에게 협박을 해왔다.
 
-안 도와주면 매일 만나자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현장 실사를 위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실사를 위한 준비를 세심히 일러주었다. 준비는 완벽했고 보고 역시 완벽했다. 평가에 대한 총평도 그리 나쁘지 않아 여자는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잘 했어?
-당신이 준비해 준대로 열심히 했는데 모르겠어. 고마웠어.
-그게 그저 하는 립 서비스는 아니겠지?
-, 그럼 말이라고 해, 특별히 모셔야지요.
 
그 동안의 긴장을 풀기도 할 겸 일과가 끝나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 집을 찾았다.
직장 동료들은 일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탁구동호회를 만들었는데 오늘이 바로 창립총회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여자의 시험에 관한 일은 인사치례로 한마디씩 건네고는 모두들 모처럼의 운동에 신나했다.
남자는 전날부터 뱃속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고 있는 터라 함께 어울리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그래도 자리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같이 어울려 몇 차례 술잔이 돌았다. 적당히 취가 오르자 2차를 위해 자리를 옮기기로 하였으나 남자는 더 이상 함께 하기가 힘들었다.
 
-안 되겠어. 뱃속에 이상이 생겨 약을 먹고 있는 중인데 술이 들어가니 힘드네. 오늘은 여기서 나는 자리를 마칠 테니까 모두들 너무 늦지 않도록 하세요.
-속이 많이 불편하신가보네요. 그럼 저희들이 모실까요?
-아니야, 괜찮아요. 집이 코앞인데 뭐.
남자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리 멀지 않은 집을 향해 취기도 걷어낼 겸 걸으려 했으나 동료들은 경악을 하며 무리라고 말렸다. 그때 여자가 재빨리 승용차를 가지고 왔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여자의 차에 올랐고, 그건 사실 남자가 바라던 바였으며 여자의 멋진 연출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남자와 여자의 자연스러운 음모였던 것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이걸 알면 도대체 뭐라고 할지 생각하는 것조차 재미있었다.
까만 밤 속에서 여자는 더욱 아름다웠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 그렇게 감탄을 하실까? 그런데 새삼스레 무슨 일로 칭찬을 다?
-당신이 준비해 준 자료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참 치밀하고 조직적이라고 느꼈어. 실제로 당신의 행동도 늘 그렇지만 말이야.
 
남자와 여자는 까만 밤을 헤집고 포구를 지나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포구 양쪽에는 늘 황량한 들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조형물이 끝도 없이 들어섰다. 그 거대한 조형물이 완성되자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낯선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온갖 잡동사니 세상사가 펼쳐졌다. 그걸 사람들은 개발이라고 했다. 정말 개발바닥 같은 말이다. 문득 차창너머로 별똥별이 까만 밤하늘을 빠르게 가르며 지난다. 까맣게 텅 빈 하늘에 아직도 떨어질 별똥별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둠이 가득했던 거리가 지금은 온갖 차량 불빛으로 대낮 같았다. 남자는 운전을 하고 있는 여자를 건네다 보았다. 여자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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