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노릇
요즘처럼 자식을 한둘 낳는 시대에는 장남과 지차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50을 넘긴 한국의 남자들에게 있어 "장남"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 속에는 권리 혹은 권위도 존재하지만, 책임 또는 의무의 비중이 사실 더 크다.
이유는 우리의 할아버지들, 아버지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당신들 시대에 장남은 집안의 대들보였다.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제삿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보험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것은 장남 우선이고, 장남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지차들의 밥공기엔 꽁보리밥이 담겨도, 장남의 밥공기는 쌀밥으로 채워졌다.
다른 형제들 역시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왜냐면 그는 "장남"이니까.
대신 그렇게 우대를 받은 장남들은 나름의 의무감 혹은 부채의식을 갖고
맏아들로서의, 집안을 이끄는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집안에는 나름대로 질서가 잡히고, 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이미 대대손손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결과 굳어진 우리네 관습이었으니까.
부모가 큰 병치레 않고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별 문제가 없다.
아직은 부모가 자식들에게서 받을 것보다 자식들에게 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모가 나이 들고, 병들고, 돈벌이를 못하게 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부터다.
줄줄이 낳은 자식들 어찌어찌 짝은 채워 내보냈다.
아들들에게는 집이 됐든 땅이 됐든 얼마큼씩 나눠줬고,
딸들에게는 시집갈 때 넉넉하진 않으나마 혼수 해준 것으로 최소한의 역할은 끝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식새끼들 뒤치다꺼리 하다 보니
이제 부모에게 남은 건 고단한 육신과 빈 주머니뿐이다.
장남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시점부터 장남의 삶에서는 권리보다 책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해야 한다.
애정이 되었든 재산이 되었든 부모에게서 가장 큰 몫을 받은 건 장남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50을 넘긴 한국 남자가 사는 집안에서는 그래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는 응당 장남에게 당신들의 삶을 의지하려 한다.
장남은 그런 부모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 기꺼이 당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장남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장남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형제들간의 갈등은
50 넘긴 형제가 여럿인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류의 고발 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건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당장 우리 집안이 그렇고, 몇 가구 되지도 않는 우리 동네 몇몇 집의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50 중반의 아저씨다. 삼형제 중 셋째다.
집 한 채, 자그마한 밭뙈기, 다달이 붓고 있는 보험, 약간의 은행 잔고,
월평균 100만원 못 미치는 수입이 재산의 전부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안에서 장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큰형이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아니,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형은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오고, 외국 유학도 하고, 세간에서 존경 받는 직업에 종사한다.
수입도 나보다 많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도 상당하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자식들 특히 장남에게 뭘 바라는지를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늙은 부모에게 절실한 건 돈보다도 오히려 정성이 깃든 따뜻한 밥 한 끼란 걸 모른다.
그렇다고 큰형네가 부모님 용돈을 많이 드리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큰형이나 형수가 부모님께 10만원 이상의 용돈을 건네는 걸 본 적이 없다.
자기 새끼들 건사하느라 돈 많이 들어간다는 건 안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집이 어디 있을까?
결코 적지 않게 가졌으면서도 돈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집안 대소사에도 의견을 주도하지 못하고,
참다참다 못한 다른 형제들이 일을 추진한 다음에야 마지못해 따라온다.
본인이 장남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걸 알면 마누라라도 맏며느리 감을 데려왔어야 하는데,
연애로 결혼한 큰형 내외는 "둘이 똑같으니까 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행동한다.
둘째 형은 지병이 있어서 현재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 평생의 한이자 우리 식구 모두의 아픈 손가락이다.
장남 역할을 포기한 큰형과 아픈 둘째 형을 대신해서 나는 그렇게 장남 노릇을 해야 한다.
잘났든 못났든 나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하신 내 부모니까 응당 해야 할 몫이다.
돈 들 일이 늘어나면 내 소유의 집이라도 팔아서 댈 수 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집이니까.
왜 많은 장남들이 욕을 먹고 형제들간에 "공동의 적"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장남이란 이들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래도 오냐 저래도 오냐, 에그 우리 집안 대들보, 역시 장남이라 달라, 장남 말을 들어야지,
이런 상찬과 상전 같은 대접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버린 때문 아닐까?
받았으면 되돌려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장남들이 많다.
타인에 대한 배려에 너무 서투르다.
그걸 단순히 어리석은 부모의 자업자득으로만 해석하고 비판해야 할까?
가끔씩 나나 여형제들이 큰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에도 우리 아버지는
대 이을 손자 낳아줬다는 이유로 큰아들과 큰며느리 감싸기에 급급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은 옳다.
나는 우리 큰형네가 자기 새끼들한테 쏟는 정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부모님께 쏟는 걸 볼 수 있다면 기꺼이 큰절을 올릴 의향이 있다.
쓰다 보니 넋두리가 길어졌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