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언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지시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지시 대상이 있음에도 그것을 정확히 표상할 수 없는 언어적 개념도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그런 대상은 있다.
ㅡ 나는 비존재로 시작해서 다시 비존재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비존재란 의미에서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비존재와 내가 사라져 버린 후의 비존재는 나에게 있어 같은 의미를 갖는 건가? 혹은 의미적으로 같더라도 동등한 가치를 갖는 개념인가?
ㅡ 전자에는 박탈과 상실의 주체가 없고, 후자에는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가 정확하게 있다. 그럼 도대체 왜 내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 이전의 비존재 상태를 지금의 내 존재와 비교 대상으로 가정해선 안된다 하는 건지 당췌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누구도 오직 나 자신의 관점과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생각해 볼수가 있다.
ㅡ 어디 한번 비교를 해보자. 언젠가는 박탈과 소멸이 예정된 나의 현실 존재 상태보다, 전혀 박탈도 소멸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전의 비존재는 모든 면에서 나의 현존재보다 더 상태나 가치적으로 우위한 대상 아닌가?
ㅡ 이 세상에 태어나 버렸기 때문에 혜택을 잃은 나를 두고 애석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있기 때문에 괴로워 하고 불편해 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며,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누리지 못할 쾌락을 불평할 일조차 없을 것이다. 그게 진짜로 애석하단 거다. 이것이 안타깝지 않다면 대체 무엇을 갖고 안타까움을 느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