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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야.. 놀라지 말고 들어..”
배수기가 재촉했다.
배수기: “빨리 말 해. 짜증나게.. 뭔데?”
이지훈: “춘섭이 걔는 전학 간 다음에도 따돌림을 당했는지 올해 초에 자살을 했다더라.”
배수기: “뭐? 참나.. 춘섭이 그 새끼는 우리학교에서도 찐따같이 굴더니, 전학 가서도 그 모양이었냐?”
이지훈은 말 없이 배수기를 응시하며 들었다.
배수기: “뭐 하러 전학을 가 가지고 개 고생을 사서하냐? 여기 있었으면 내가 지켜줬을 텐데.”
이지훈이 실소를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지훈: “그러게..”
배수기: “아 근데, 내가 한 달 전 즘에 그 새끼, 역 앞에서 본 것 같은데? 가끔 보이지 않나 거기에?”
이지훈: “설마…”
배수기: “너는 지나가다가 못 봤어? 집이 같은 쪽이잖아?”
이지훈: “못 봤어 요즘은.”
배수기: “그러냐? 내가 헷갈렸나? 기분 엿 같네. 자살했으면 소문이 안 났을 리가 없는데, 왜 내가 몰랐지…”
배수기는 불현듯 화를 냈다.
배수기: “춘섭이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새끼가 나한테 재수없게 행운의 편지를 보내고 지랄한 거야?!”
배수기가 반 친구들을 둘러보면서 엄포했다.
배수기: “나한테 이상한 문자 보낸 새끼 있으면 오늘 안에 나와! 안 그러면 내가 날려버린다! 알았냐?”
아이들은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몇 아이들의 ‘또 왜 저려냐’하는 탄식이 들릴 듯 말 듯 했다.
살기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배수기의 눈에 오지호의 빨간 운동화가 보였다.
배수기: “하.. 놔. 오지호!”
오지호는 화들짝 놀라며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지호: “왜?”
배수기: “신발 자랑하냐? 그거 신고 오지 말랬잖아~”
오지호: “아니.. 이거 어머니가 사주신 거라, 그래서 가끔만 신는 거잖아..”
배수기: “가끔이든 개껌이든 신고 오지 말라고… 금수저 티좀 내지 마라. 애들이 주눅들잖아 새끼야. 여기 기초수급자들 안 보여?”
오지호: “응.. 알았어..”
배수기: “얼마나 잘산다고 티를 그딴 식으로 내냐..”
성질을 죽이지 못하는 배수기에게 김민준이 슬쩍 다가왔다.
김민준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배수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민준: “야. 춘섭이 어제도 봤어. 너 괜찮냐?”
배수기: “뭐? 너 그 새끼 집이 어딘지 알아?”
김민준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김민준: “이사 간 다음에는 모르지. 어쨌든 춘섭이는 잘못 없는 애니까, 이제는 건드리지 말자.”
배수기: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네 친구냐? 에이 씨발...”
■ ■ ■
다음날, 배수기는 3교시가 지나서야 등교를 했다.
씩씩대며 자리에 앉는 배수기에게, 이지훈이 의아해서 물었다.
이지훈: “무슨 일 있었어?”
배수기: “아.. 씨댕.. 내 동생 알지?”
이지훈: “응.. 여동생?”
배수기: “그래.. 오늘 아침에 뱀에 물려서 병원 갔다가 왔다.”
이지훈: “뱀? 집에서?”
배수기: “그래.. 미치겠다. 그래도 독사는 아니라서 괜찮긴 했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이지훈: “그래도 독이 없어서 다행이네.. 역시 행운의 편지 때문인가..”
배수기: “이거 봐.”
배수기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지훈에게 보여줬다.
스마트폰에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ㅋㅋㅋ 슬슬 각오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배수기: “어떤 새끼인지 반드시 알아내서 쳐 죽이겠어!!”
반 친구들을 향해서 배수기가 협박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배수기는 대충 가방을 정리한 뒤 튀어 나가듯이 반에서 나가려 했다.
김민준: “야 수기야! 오늘 너 당번인데? 집에 가려고?”
배수기: “오늘 내가 춘섭이 잡으러 갈 거니까, 너가 대신 좀 해줘 알았지?”
배수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반에서 나갔다.
김민준은 배수기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김민준: “저 새끼 또 저러네.. 박춘섭이라니..”
학교를 나선 배수기는 박춘섭을 봤었던 역 주변에서 서성였다.
이지훈은 춘섭이가 죽었다고 했지만, 춘섭이가 사건의 주동자라는 가정을 배수기는 믿고 싶었다.
춘섭이는 생각만큼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춘섭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역으로 찾아오는 무리들은 하나 둘 생겼지만, 춘섭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지하철이 수십 번 역에 들어오고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수기의 마음은 분노와 잔인함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수기의 눈에 박춘섭의 뒷모습이 느껴졌다.
배수기: “어.. 저새끼..”
배수기는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박춘섭과 비슷한 외모의 뒷모습을 걸어서 쫓았다.
한 동안 걸어갔지만, 둘의 간극이 좁혀지지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박춘섭은 역전의 괴상한 골목길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뛰고 싶지 않았던 배수기지만,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해 박춘섭의 뒷모습을 향해 달렸다.
100미터는 평소에 14초면 주파할 수 있었지만, 왜 그런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서 불안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뒤에야 골목길에서 배수기는 박춘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배수기: “야 춘배.. 아니 춘섭아”
배수기가 딸린 호흡으로 간신히 춘섭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박춘섭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배수기: “야 이 씨ㅂ… 박춘섭!”
박춘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배수기: “새끼가…”
배수기는 그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몸이 돌아가면서 보인 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수기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배수기: “아이..ㅆ.. 사람 잘못 봤네..”
배수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뒤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배수기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녁이 되어 어둠이 이미 깔려 있었다.
낭패감과 밀려오는 짜증을 배수기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머리를 옥죄어왔다.
배수기: “까짓거 한 번 놀아줄까..”
■ ■ ■
배수기는 편의점에서 산 참치캔과, 필통에서 꺼낸 커터를 들고 학교 주변에 있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길 후미진 곳에, 배수기는 참치캔을 따서 바닥에 놓고 아무렇게나 세워진 오토바이 뒤로 몸을 숨겨 앉았다.
담배도 피워 물지 못한 채, 배수기는 목이 타는 마음을 억누르며 길고양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복잡한 마음을 꾹 억누르고 기다리다 보니, 한 두 마리 고양이들이 참치캔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숫자는 금새 불어나고, 작은 참치캔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
배수기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재빨리 가장 가까운 고양이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공교롭게도 배수기가 잡은 고양이는 석탄처럼 새카만 녀석이었다.
갈무리된 검은 고양이는 영문을 모르는 채 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고, 배수기는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 그 움직임을 진압했다.
움직임이 잦아들자, 배수기는 고양이를 바닥에 발로 밟아 고정한 뒤에,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애처로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주변에서 다른 고양이들이 이 광경을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며, 배수기는 커터칼로 고양이의 목을 그었다.
배수기는 물컹한 감촉과, 강한 저항감에 내심 놀랐다.
허공에 칼질을 하는 느낌으로 배수기는 한동안 열심히 고양이의 목을 긋는데 시간을 보냈다.
정수리부터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커터칼이 부러졌을 때에는, 공양이의 목이 반 정도 잘려나간 후였다.
더 이상 자를 수 없다고 판단한 배수기는, 애처롭게 반 즘 붙어있는 고양이의 머리와 몸통을 두 손으로 각각 잡고 학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나가는 길마다 음산하게 피가 흘렀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넘어서 인적이 없었다.
배수기는 고양이를 묻기 위해 조용히 3반 창문 아래에 있는 화단 흙을 손으로 걷어냈다.
이상하게도 한 쪽의 흙은 근래에 덮은 것처럼 단단하지 않고, 색깔도 밝아 보였다..
배수기는 생각보다 쉽게 두 손으로 휙휙 흙을 치워나갔다.
그런데 난데없이 작은 뱀이 흙에서 튀어나와 배수기의 손을 물었다.
배수기는 심장마비가 될 정도로 놀라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뱀은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고, 물린 손에는 감각이 점점 없어졌다.
배수기는 전화기를 힘겹게 주머니에서 꺼내서 119를 눌렀다.
그 때 3반 창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배수기: “… 이지훈…”
배수기는 쓰러져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지훈은 창문을 열고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배수기에게 말했다.
이지훈: “야 독사.”
배수기: “독사?”
이지훈: “응? 니 별명도 모르냐? 까치독사잖아?”
배수기는 기괴한 상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지훈: “어떠냐? 네가 당해보니까. 너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겠냐?”
배수기: “뭔 소리야.. 이 새끼가.. 너가 이런거냐? 죽고싶어서 그러냐?”
이지훈: “네가 행운의 편지로 위협하는 바람에 나는 내가 5년 동안 기르던 고양이도 죽여야 됐어. 그리고 너가 마음대로 농구화를 빌려쓰는 바람에 나는 무좀에 걸려버렸다. 알아?”
배수기: “뭐라고?”
배수기는 독이 몸에 퍼져가는지 점점 숨을 쉬기가 곤란해졌다.
119의 통화버튼을 누르려고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손전등이 자신을 비췄다.
경비아저씨: “뭐.. 뭣이여?”
배수기가 밝은 불빛 뒤로 경비아저씨를 느꼈다.
경비아저씨: “또여?”
배수기: “저.. 배.. 뱀…”
경비아저씨: “이 학생 또 이러고 있구먼.. 뱀에 물린 거 아니니껜 어서 일어나 집에 가.”
경비아저씨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혀를 차며 대꾸했다.
배수기는 3반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배수기: “이지훈.. 지훈이가..”
경비아저씨: “이지훈은 오래 전에 옥상에서 화단으로 떨어져서 죽었잖여… 또 뭔 소리당가… 또 거길 팠어?”
배수기가 놀라서 3반 창문을 다시 보니, 창문은 닫혀있고, 사람의 모습이 없었다.
경비아저씨: “쯧쯧.. 잘못한 게 있으면 마음으로 참회를 혀야지.. 소년원 갔다와서 매번 이 모양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