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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경험
게시물ID : phil_171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ŜatasVin
추천 : 1
조회수 : 11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03/29 23:44:38
https://www.newyorker.com/culture/persons-of-interest/the-case-for-not-being-born

반출생주의의 철학자들은 삶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번식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베나타는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인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반-출생주의자인 그는 삶이란 너무 나쁜 것이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은 동정심을 이유로 아이를 갖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선량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먼 길을 가지만,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아이들을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 대부분은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고 , 2006년 저서 '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 존재하는 것의 해악" 에서 썼다. 베나타의 관점에 따르면, 복제는 본질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끔찍한 운명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악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로, 그는 유정적인 생명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적 철학서 치고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례적으로 많은 독자를 얻었다. '굿 리드'에는 평균 3.9개의 별점을 받았는데, 어떤 비평가는 이러한 별점이 '출산 행위가 명백히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을 뜻한다고 썼다. 몇 년 전, "트루 디텍티브(True Detective)"의 시나리오 작가 닉 피졸라토는 그의 책을 읽고, 그 배경으로 '러스트 콜'이란 캐릭터를 만들었다. 매튜 맥커너히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허무주의적 반출생주의자이다. ("나는 인간의 의식은 진화의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착오라고 생각해." 라고 콜은 말한다.) 피졸라토가 그의 책을 언론에 언급했을 때, 자신의 견해는 콜의 캐릭터가 밝힌 견해보다 더 사려 깊고 인본적이라고 생각하는 베나타는 그의 관점들을 분명히 언급 하기 위해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인터뷰에 응했다 . 이제 그는 "인간의 처지: 인생의 가장 큰 질문들에 대한 솔직한 답변들"이란 책을 출판했다, 이책은 그의 반 출생주의적 사고에 대한 세련된 확장, 그리고 더 다듬어진 문맥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T.S. 엘리엇의 시 "네 쿼트"에 나오는 구절로 시작한다. "인간은 현실이란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는가?" 또한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더 나을까?"와 같은 질문들에 대하여 "냉혹한 "대답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Benatar는 1966년에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케이프 타운 대학의 철학과 학과장인 그는 세계 보건 전문가인 아버지 솔로몬 베나타가 설립한 생명 윤리 센터(BioethicsCentre)를 지휘하고 있다.(Benatar는 부모님께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를 헌신했다.) 이런 사실 외에는 그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온라인상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인터넷에는 베나타의 사진이 없다. 그의 강의를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파워 포인트 슬라이드로만 구성되어 있다. "데이비드 베나타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제목으로 강연장 뒤에서 누가 몰래 찍은 거친 사진을 확대한 비디오가 올라온 적이 있다. 그 안에 데이비드 베나타라는 이름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흐릿한 인물은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으로 픽셀레이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의 처지(The Human Predicament)"를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베나타에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메일을 썼다. 그는 내 다른 기사들을 읽은 후에 흔쾌히 승낙했고, 이어서 메모를 덧붙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당신이 자신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당신이 인터뷰한 사람을 정확히 옳겨 담는 것을 작업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한가지 타당한 사실은, 내가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것처럼 나 자신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매우 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너무 사적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거절할 것이다. (제 초상권이 인용되는 사진도 마찬가지로 불편할 겁니다.)이런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면을 인정해 주면서 인터뷰를 진행해 준다면 기쁠 것 같다."

의심할 여지 없이 베나타는 본래 개인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익명성은 분명한 목적을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독자들이 그를 상업화하고, 그의 견해를 우울증, 트라우마 또는 그가 가진 성격의 결함 탓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 자체가 사람들에게 직접 맞서지기를 원한다.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가 있나요?' 라고 묻기도 한다'". 그가 도중에 내게 말했다. (그는 침착하고 고른 남 아프리카 억양을 구사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질문들이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위선자일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옳을 수 있다. " 그는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반 출생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시점이 언제적부터인지 물어봤다. 그는 그저 "갓난아이적부터"라고 천천히 답했다. 그리고 불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그가 답하고 싶어하지 않아 했던 개인적인 질문이었다.

베나타와 나는<뉴요커> 사무실이 있는 세계 무역 센터에서 만났다. 그의 몸집은 작고 날씬했으며, 얼굴은 깔끔했다. 거기에 라벤더 스웨터와 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야구 모자로 그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그 건물의 64층에 있는 맨하탄의 전경이 보이는 창문 근처에 마련된 한쌍의 고급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왼쪽으로는 허드슨 강, 오른쪽으로 이스트 리버, 도심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

사회 과학자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복 수준에 대해 물어본다. 전형적인 설문 조사지에서는 응답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1등급("최악의 삶")에서 10등급("최선의 삶")으로 사이에서 평가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삶의 행복지수는, 2014년과 2016년 사이에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캐나다인들의 삶(7.32명)보는 행복하지 않고 수단(4.14)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설문 조사지에서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i)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ii) 적절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iii) 아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iv)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등의 문항중에서 답하기를 요청한다. 최근 몇 년간 인도, 러시아, 짐바브웨와 같은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반응이 증가하고 있다. 1998년에, 미국인의 93%가 매우 또는 적절히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2014년까지 대공황 이후 그 수는 91퍼센트로 아주 약간 떨어졌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은 인생이 좋다고 말한다. 베나타는 그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인간 삶의 질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실제로는 매우 끔찍하다"고 그는 인간의 처지에 쓰고 있다. 그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조차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된 점점 더 증가하는 걱정거리들의 목록을 제공한다. 우리는 거의 항상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다고 그는 쓴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우리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 우리는 종종 "고열로 인한 불편함"을 경험한다. 우리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기 때문에 쉽게 피곤해지고 쉽게 낮잠을 잘 수 없다. 우리는 가려움증, 알레르기, 감기, 생리통, 등으로 고통 받는다. 인생은 "좌절과 짜증"의 연속이다. 우리는 교통 체증을 견뎌야 하고, 서류 양식을 작성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일을 하도록 강요를 받으며 직업적인 일에 지쳐가게 되는 자신을 발견 한다; 심지어"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조차 종종 성취되지 않은 직업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독신으로 늙어가는 반면, 결혼을 한 사람들도 싸우고 이혼한다. "사람들은 젊어 보이고 싶어 하고, 젊음을 원하지만 나이는 끊임없이 먹어 간다."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실망스러울 때 종종 좌절을 느끼게 된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은 고통을 경험할 때, 그것을 통해서 자신도 고통을 받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죽게 되고 우리는 사별을 겪는다..

이와 같은 관찰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은 "만약 삶이 그렇게 나쁘다면, 왜 그냥 자살하지 않는가?"라 되묻는 것이다. 베나타는 죽음이 우리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43페이지 장의 분량을 할애한다. 그는 "인생은 나쁘지만 죽음도 역시 나쁜 것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인생이 모든 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다. 죽음도 모든 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 모두, 중대한 부분에서 끔찍하다. 이 둘은 함께 존재론적인 시각, 즉 우리의 처지를 곤경에 빠뜨리는 비참한 손아귀의 구성이다." 그는 처음부터 그러한 곤경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물어본다. Benatar는 그 질문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은 계속할 가치가 있을까? (그렇다, 죽음은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시작할 가치가 있는가?(아니다.)

베나타만이 유일한 안티-나탈리스트는 아니다. 사라 페리의 "모든 요람은 무덤이다"와 토마스 리고티의 "인류에 대항하는 음모"와 같은 책들도 상당한 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여전히 많은 "염세주의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발적인 인류멸종 운동이란 단체에는 생태주의적인 이유로 인간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 천 명의 회원들이 있다. 염세주의자들에게 문제는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나타는 "인류애가 강한 반출생주의자"이다. 그의 생각은 의식과 인공 지능을 연구하는 신경철학자 토마스 메칭거와 유사하다. 메칭거는 인공의식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며, 그것이 세상에 있는 고통의 양을 증가시키는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베나타는 인간에게도 같은 주장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운터를 연습하는 권투 선수처럼, 베나타는 자신에 대한 다양한 반대를 예상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 아름다움의 발견 등 인생에 잠재해 있는 가장 좋은 경험들은 나쁜 경험을 충분히 만회하는 것이라고 반론한다. 이에 대해 베나타는 고통과 기쁨의 관계에는 극복할 수 없는 비대칭성이 있다고 대답한다.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통증은 더 오래 지속된다. "만성적인 통증 같은 것이 있지만, 만성적인 쾌락 같은 것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최대 5분 동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의 5분과 맞바꾸는 거래를 우리는 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좋은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경험을 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추상적인 감각이 우리에게는 내재해 있다.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나쁜 것의 존재는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의 존재는 좋은 것이다," 라고 Benatar는 설명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가능세계의 시나리오를 그 사람이 결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세계의 시나리오와 비교해 본다면, 나쁜 경험이 없는 것은 좋지만, 좋은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는 그 존재에게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좋은 경험들 역시 빼앗길 사람도 그 시나리오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존재에 맞서서 완전히 경쟁적인 관계에 있다"고 그는 계속해서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불쾌함과 고통의 비용은 존재의 상실이란 대가의 지불 없이는 끝날 수가 없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가 요점을 놓친다고 주장한다. 인생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 베나타는 인간의 삶은 사실 눈에 띄게 무의미하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무관심한 우주, 어쩌면 "다중 우주"속에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눈이 멀고 목적이 없는 자연의 힘에 지배 받고 있다. 우리의 존재에 우주적 의미가 없다면, 남은 것인 오직 "지상적인 삶“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인류의 존재 목적은 개별적인 인간들이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무언가 순환적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베나타는 또한 투쟁과 고통 그 자체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나는 고통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을 수가 없다," 라고 베나타는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애쓸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은 불필요하고 참을 수 없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넬슨 만델라가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가 자신이 살아왔던 환경을 지켜내기 위해 행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THENEWYORKER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

나는 베나타에게 왜 그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평가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는 미래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사람들의 고통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또한 어쨌든 극적으로 개선된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교훈을 (역사속에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특정한 사람들은 그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주위에서 이러한 광기들이 만연한 것을 볼 수 있다," 라고 그는 말한다. '당신은 더 큰 선을 위한 희생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오고 있음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 "불편함과 고통은 지각 있는 생명체의 구조에 너무 깊이 새겨져 있어서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긴급해 졌고,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우리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과 다른 존재들이 그들이 겪고 싶지 않은 것을 경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고, 우리가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평범한 대화를 할 때면 뭔가 위안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베나타와 우리는 점심으로 채식주의 식당을 골랐고, 우리는 허드슨 강을 따라 그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베세이 거리의 끝에서, 우리는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을 지나쳤다. 그들의 고향에서 일어난 대기근의 기간 동안 죽어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기념하기 위해 아일랜드 인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25에이커의 흙을 그 땅에 뿌렸다. 베나타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역사적인 인용문들을 탐구하고 읽으면서 몇 분을 보냈다. 한 사람이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 기근은 내 기억 속에 길고긴 슬픔의 하룻밤으로 간직되어 있다.’

따스한 날이었다. 배터리 파크에서 엄마들은 어린 아이들과 잔디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 무리의 동료들이 탁구를 쳤다. 물가에서 커플들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근육질 가슴을 가진 남성들과 멋진 운동복을 입은 여성들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신은 자신의 신념과 환경 사이에 불협화음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내가 물었다.

베나타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삶을 즐기거나 삶에서 좋은 경험을 느끼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스웨터를 벗어서 지금은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모자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8주 후, 승합차를 운전하던 29세 남자가 11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8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테러 사건이 일어난 곳에 도착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처럼, 베나타도 역시 자신의 견해를 통해 스스로 불안을 느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견해를 사람들이지 공유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교회로 걸어 들어가 설교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가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려고 하는 신부는 없을 것이다. 비슷하게, 그는 자신이 안티-나탈리즘의 대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인생이 이미 충분히 불쾌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이 철학적이고 학구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비록 적지만 그들 자신의 은밀한 생각이 철학적으로 표현된 것에 감사를 표하는 독자들로부터 그는  답장을 받고 있다. 몇 명의 자녀를 둔 한 남성은 "better neavr have to been" 읽은 후에 베나타에게 답을 했다. 그는 자신이 아이들을 갖게 된 것이 끔찍한 실수였음을 밝혔다; 끔찍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차라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그에게 답장을 쓴다. 그는 또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그의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듣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저 슬픔의 의미만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라고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이미 현실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나는 베나타르에게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가 압도된 적이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불편한 미소를 지으며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티-나탈리즘이 광범위하게 채택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많은 생물학적 욕구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희망의 원천이 있다. "온 세상에 만연한 광기에 대해 당신이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걸어 다니는 동안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부부나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아이를 갖지 않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이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고통이며, 그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는 말을 조심한다고 한다. "그럴 때 가끔은 나는 찢어지는 것 같다."라고 그가 말했다. 아이를 갖는 것은 "그 아이가 처하게 될 곤경을 고려할 때 매우 끔찍하다." 하지만 반면에 "낙관주의는 삶을 더 견딜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몇년 전, 한 동료 철학자가 그에게 그녀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그의 반응은 신중했다. “어서, 날 위해서 기뻐해 줘야 해.”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기에 베나타는 자신의 양심과 상의한 다음 "아이를 가진 너를 위해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점심 시간에 우리는 8살쯤 되어 버이는 어린 소녀와 그녀의 엄마 옆에 앉았다. 그 소녀는 드레스를 입고 책을 들고 있었다. "이것들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니?" 그녀의 엄마는 감자 튀김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라고 소녀가 답했다.

베나타와의 대화는 계속되었지만 어머니와 딸 옆에 앉아 있는 동안 안티-나탈리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어려웠다. 우리는 점심 시간의 대부분을 서로가 일하는 습관에 대해 즐겁게 토론하며 보냈다. 거리에서 우리는 악수를 했다. "저는 그냥 좀 걸어 다닐 거예요,“ 베나타는 말했다. 그는 공항에 가기 전에 서쪽 마을을 돌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남쪽으로 걸어 갔고, 세계 무역 센터 근처를 지나갔다. 그곳에서 이제 9/11공격으로 파괴된 쌍둥이 건물중 하나를 대체한 광대한 쇼핑몰과 오큘러스 기차역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일부분은 아직도 우뚝 솟은 가시 같은 지붕과 하얀 갈비뼈 같은 대리석을 드러내놓고 있고, 일부분은 이제 성당이다.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고 있을때 재킷을 입은 한 여자가 다른 팔을 집어넣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았다.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은 덩치 큰 사업가가 서류 가방을 들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승강구에 들어간 후에 그는 여자의 코트를 잡아 주었고, 그제야 그녀는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newyorker.com의 아이디어 편집자인 JoshuaRothman은 2012년부터 이 잡지의 작가이자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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