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공개에 인사드리네요.
지난해 가을즈음 집안사정으로 미뤄뒀던 글을 이제야 완성했습니다.
이어서 올릴까...생각하다가 조금씩 수정한 부분들도 있고,
그냥 이어서 읽으시면 더 편하실 것 같아 수정한 제목으로 처음부터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글에 댓글로 응원주시고 추천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덕분에 정말 힘내서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의 보잘것 없는 처녀작 올리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안수로 달리는 차안은 후텁지근했다.
새벽부터 이른 출발을 하긴 했지만 태양역시 이른 열기로 고속도로를 달구고 있었다.
남부지방 가끔 비라는 예보가 맞길 바라는 걸 보면 오랜만의 휴가를 즐기기보다 태양의 쨍함이 더 피하고 싶은가 보다.
20톤 탱크로리를 설설설설 따라가고 있는 경차 안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느라 에어컨바람도 없었다.
그리하여 내비게이션엔 3시간 거리라는 펜션을 가는데 안수요금소를 통과하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기는 어때?”
(홈페이지 링크)
중고생들 방학 전에 이른 휴가를 다녀오자며 여행지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운전담당 주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가까운 곳으로 가려했지만, 오히려 주아가 더 나서서 추진을 했다.
“야!! 여기 죽인다!”
“진짜, 이런 덴 어떻게 찾은 거야?”
늘상 뒤로 물러나 있다가 힘들게 찾고 계획세우면 무료 환승하는 시연이가 한마디 했다.
단톡방에 시연이가 이정도의 관심을 갖는 건 드문 일이었다.
“눈알 빠지게 뒤지고 찾고 가시덤불도 헤치고 그래서 찾은 거지”
친구들에게 생색은 진하게 냈지만 그 곳은 그냥 어쩌다 얻어걸린 곳이었다.
‘해수욕장 펜션’ 이라고 검색창에 치는 순간 ‘팍!’하고 팝업창이 열리더니 3초 만에 사라져버렸다.
‘어? 이건 뭐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사라져버린 팝업창에 호기심이 생겨 다시 초기화면에서 ‘해수욕장 펜션’을 검색했다.
다시 ‘팍!’하고 열리는 팝업창을 놓칠 새라 클릭을 했다.
화면가득 일출인지 일몰인지 황금색 바다를 가득 담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고택 같은 펜션의 외관은 좀 으스스해 보이기도 했지만 시설을 소개하는 화면을 넘길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설을 갖춘 내부에 월풀욕조와 바비큐 가능한 베란다까지
펜션 뒤쪽의 계단을 내려가면 바닥이 파란 수영장이 바다와 연결되어있고,
비치의자와 그네까지 갖춘 그야말로 풀~~~빌라였다.
‘와~~ 엄청 비싸겠다.’
감탄과 함께 그림의 떡일 거라는 실망을 함께하며 헛된 희망을 품고 가격표를 눌러보았다.
‘어? 이게 말이 되나? 10만원?’
부랴부랴 단톡방에 링크를 올리니 역시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경차로 그 먼 곳을 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펜션의 화면을 떠올리며 우린 만장일치로 목적지를 정했다.
요금소를 통과하고도 30분이 지났지만 아직 펜션은 30분은 더 들어가야 한단다.
내비게이션은 공사 중인 도로로 우리를 안내하며 애를 먹였지만 더운 고속도로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의 기세는 아직 등등 하였다.
“야! 배안고파?”
“새벽에 일어나서 정신없이 짐 챙기고 했더니 출출하네.”
“그러게 어디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갈까?”
차를 다시 돌리기는 싫어서 목적지 경로로 편의점을 검색해보니 하나도 없었다.
“하~ 아무리 시골이라도 이렇게 편의점이 없을 수가 없는데, 여긴 명색의 ‘시’라면서 편의점이 이렇게 없냐.”
“그러게…….어? 여기서 5분쯤 가면 작은 가게가 있다는데 거기라도 들러볼까?”
휴대폰을 검색하던 주아의 말을 시연이가 얼른 받았다.
“그래, 이대로 도착하면 입실도 안 되는 시간이라 배고파 죽어.”
얼마간 달려 왕복 2차선 도로변 작은 슈퍼가 나왔다.
담배인삼공사에서 협찬이라도 해주었는지 낡은 간판엔 ‘담배’라는 글씨가 더 크게 보일 지경이었다.
낮인데도 굴 같은 가게내부로 들어서니 과자봉지며 라면 등이 선반에 대충 널려있고 문이 투명한 작은 냉장고 안엔 소주며 막걸리가 몇 병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계세요? 실례합니다.”
안쪽으로 보이는 문을 향해 몇 번을 부르고서야 감정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표정의 중년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저기 혹시 컵라면 먹을 수 있을까요?”
여전히 무표정한 아주머니는 괜히 비닐봉투 묶음을 안쪽으로 옮기며 작게 웅얼거리셨다.
“네? 안되나요?”
“물 끓이면 되지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무척 귀찮다는 투였지만 배가고파 눈에 뵈는 게 없는 우리는 그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컵라면만 먹고 갈게요.”
연신 웃고 있던 시연이는 넙죽 절을 하고 주아는 벌써 컵라면을 고르고 있었다.
“시연아! 넌 뭐 먹을래?”
그래봐야 종류도 달랑 두 개 뿐인 것을…….
“그냥 매콤한 걸로 줘.”
“우리 계란도 먹자!”
어느새 계산대로 온 친구들은 어디서 찾았는지 구운 계란을 쥐고 있었다.
가게 앞 먼지 앉은 좁은 마루에 나란히 자리하고 뜨거운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컵라면을 먹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히히히 우리 너무 웃기지 않냐?”
시연이가 실소를 터트리자 주아도 따라 웃으며 거들었다.
“야야! 이게 다 추억이야. 이 얘기 육십까지 만날 때마다 할 거다 아마.”
사실 그럴 것이다. 우려먹고 또 우려먹고 그래도 끝까지 우려먹으며 즐거워 할 것이다.
형편에 비해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쓰레기를 모아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아는 우리의 쾌적함을 위해 미리 차로 돌아갔고 시연이는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참이었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 뭐.....뭐야 이게?”
앞으로 나서던 시연이도 말을 잃고 우뚝 서 버렸다.
선반에 나뒹굴던 과자봉지엔 시커먼 더께가 져 있었고 작은 냉장고의 투명한 문은 깨져서 이미 문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를 부르던 안쪽의 문은 위쪽 경첩이 떨어져 너덜하게 붙어있었고,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악!!! 아악!!!”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고 있던 쓰레기를 던져버리고 차로 내달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저저....가! 가! 가!”
새파랗게 질려 제대로 된 말도 못하는 우릴 보던 주아가 그대로 차를 몰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내비게이션 음성만을 좇아 정면만 응시한 채 달렸다.
“뭐야? 뭔데 그래?”
우리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주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거기 아무도 없었어.”
“차...좀.... 세워 줘.”
시연이가 힘들게 말을 마치자 주아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튕기듯 나간 시연이는 점심으로 먹은 라면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내게도 참을 수 없는 구토 욕구가 올라와 급히 내렸다.
“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우리말을 전해들은 주아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난 하나님만 믿어. 네가 뭘 잘 못 본걸 거야.”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없다니까!”
시연이가 소리를 지르며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됐어. 그냥 잊어버리고 얼른 펜션이나 가자.”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모처럼 멀리까지 온 여행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아직도 속이 거북하다는 시연이를 다독여 차에 태우고 다시 출발을 했다.
이미 차안엔 여행의 설렘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주아는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30분을 더 달려서 목적지인 해너미펜션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차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우린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좋은데?”
주아의 말에 그제야 시연이의 얼굴도 스르르 펴졌다.
“그래, 힘들게 왔는데 안 좋은 건 빨랑 잊고 재밌게 놀자~!”
“근데 아무도 없나? 실례합니다!”
관리사무소라고 쓰인 나무판이 걸려있는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숱이 적은 스포츠머리를 한 반백의 아저씨가 알록달록한 등산조끼를 입고 나왔다.
펜션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의구심을 가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예약을 했는데요.”
“아~ 유강씨로 예약한 분들이신가요?”
시연이가 흘끗 주아를 돌아다봤다.
“네, 유 강 으로 예약을 했어요. 바비큐는 따로 준비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시연이의 눈빛을 누르고 주아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네, 일찍 오셨네요. 이 쪽 방입니다. 오늘 비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어제부터 손님이 별로 없어 불행 중 다행인지 청소해둔 방이 있네요. 바로 짐 옮기셔도 됩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싹싹한 말투,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 다소 맘이 놓였다.
“우와~! 역시 오길 잘했어. 빨리빨리 여기 좀 나와 봐!”
시연이의 설레발에 냉장고에 소주병 넣던 손을 멈추고 베란다로 향했다.
흰색 테이블에 흰색 나무의자가 눈부시게 놓여있는 베란다 정면으로 컴퓨터화면에서 보던 그 바다가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었다.
“와~~~~와~~우~~와~~~~”
연신 감탄사만 쏟아내던 우리들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파노라마 샷, 전신샷, 셀프샷,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
“여기 정말 끝내준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진짜 완전 너무 멋져!”
“그러게, 가을에도 겨울에도 좋을 것 같아.”
주아도 시연이도 맘에 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근데 왜 유강이 이름으로 예약한 거야?”
“왜? 내 이름으로 하면 안 돼? 그 때 내가 바빠지는 바람에 주아가 대신 예약한 거지만, 여길 찾은 것도 나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시연이의 트집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냥~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뭘. 우리 파도나 타러가자.”
주아가 팔짱을 끼며 토닥여 주지 않았다면 큰소리가 날 뻔했다.
아까 가게일로 예민해 졌는지 기분이 널뛰기를 하는 것 같다.
짐 정리를 끝낸 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나가려 계단을 내려가니 화면에서 보다 쨍하게 파란 빛 수영장이 있었다.
1,2층을 숙소로 만든 펜션은 바닷가 쪽으로 받쳐진 기둥안쪽으로 큰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고, 성인 가슴높이까지 오는 물 건너편엔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베란다너머 바다를 볼 때처럼 우린 한동안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와................이게 뭐냐.”
“나 이런 거 실제로 처음 봐.”
“나도 나도.”
수염도 깎지 않았던 주인아저씨는 수영장 관리는 기가 막히게 해놓았다.
지하수를 끌어 온 건지 수영장 바닥에선 어디선가 퐁퐁퐁 물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한 쪽엔 썬베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베란다의 테이블과 의자처럼 눈부신 흰색의 썬베드 옆으로는 역시나 흰색의 라탄 그네의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때문에 그늘이 져 뜨거운 햇빛도 피할 수가 있었다.
“정오가 지나면 해가 지면서 안쪽으로 조금씩 해가 들어요. 그 때 태닝하실 분들은 이곳에서 하시면 됩니다.”
언제 내려왔는지 반백의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썬베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멋! 언제 내려오셨어요? 우리가 너무 흥분해서 발자국 소리도 못 들었나 보네요.”
시연이가 일부러 크게 놀라는 척하며 웃었다.
“그런데, 오늘 손님은 우리뿐인가요?”
“아닙니다. 끝 방에 어제부터 낚시하러 온 남자 두 분도 계시고, 가족단위 예약도 세 건 있어요. 아직 시간이 일러 도착을 안하신거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혹시 세탁기 있나요? 수영하고 옷을 말려서 가고 싶은데…….”
“그럼요~ 다른 손님들은 안 되도 여기 손님들은 다 해드리겠습니다.”
“어머~ 감사해라. 호호호호 서비스가 정말 좋으시네요.”
시연이의 애교에 반백의 아저씨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정신을 놓았다.
“저녁에 소주한 잔 얻어먹으러 가겠습니다. 하하하하.”
“네~ 그러세요.”
시연이는 주아의 눈치에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시연아 바다에 나가보자. 그럼 수고하세요.”
“어! 주아야, 같이 가~!”
나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는 주아의 뒤를 쫓았다.
얼핏 돌아보니 짧은 목례를 하고 시연이가 급히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언제나 이렇다.
시연이는 관심 없는 남자에게도 늘 상냥했고, 그 남자들은 홀린 듯 빠져 들었으며, 주아는 진저리를 치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낯선 환경에 무방비로 내몰린 날이었다.
몸보다 큰 교복을 어색하게 걸치고 삼삼오오 떠들고 있는 애들을 피해 교실 구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중학교의 첫인상은 두려움 이었다.
낯가림도 심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공포감까지 더해져 숨쉬기도 벅찬 시간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속으로 자기 암시를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 뜨는데 포니테일을 한 하얀 얼굴의 아이가 있었다.
6학년 2학기도 한참 지나 전학 온 탓에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진학을 했던 나의 옆자리는 계속 비어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와 다시 자리배치를 해주기 전까지는 아마도 가장 늦게 등교한 어떤 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교실에 빈자리가 반이나 남았는데 내 옆에 앉은 것이다.
놀라서 계속 하얀 얼굴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황급히 고개를 돌린 순간에야 알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이름을 물어봐야하나? 반갑다고 악수를 할까?’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리로 마땅한 말을 못 찾고 헤매다 종이 울렸다.
알이 두꺼운 금테안경을 쓴 생머리의 젊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아이들을 복도에 세웠다.
스스로 작은키라 생각했던 나는 앞쪽에서 서성이다 밀리고 밀려 중간의 어디 즈음에 멈췄다.
“야, 너랑 나랑 짝꿍 되려나 보다. 너 어느 초등학교 나왔어?”
몸을 휙 돌려 내게 말을 거는 아이의 말에 또 당황하고 말았다.
“어? 음...그게...전학을 와서…….”
“아~아! 그래서 아는 애가 없었구나. 반가워 난 강시연이라고 해. 너는?”
옅은 주근깨를 드리운 볼에 깊이 팬 볼우물이 웃는 얼굴을 더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난 유강이야. 반가워.”
“유강? 성이 유 씨야?”
“응…….”
“특이한 이름이네. 암튼 반가워.”
시연이가 덥석 손을 잡는 바람에 주춤 물러서다 뒤 친구의 발을 밟았다.
“어...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몸을 돌려 급히 사과를 하며 얼굴을 들어보니 예의 하얀 얼굴 아이였다.
“괜찮아.”
“어? 어! 반갑다.”
얼떨결에 이상한 인사까지 해버리니 얼굴부터 목까지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둘이 아는 사이야? 안녕! 난 시연이야. 근데 유강이 너 얼굴이 왜케 빨게진거야? 하하하하!! 너 진짜 소심하구나.”
시연이의 놀림을 받으니 귀까지 후끈거리는 게 살색이 온통 핏빛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후훗~ 난 주아야. 김주아. 유강이랑 시연이라고? 반갑다. 나도 별로 친구가 없어서.”
말끝에 미소를 띠는 주아의 눈은 깊고 진한 반달을 닮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학생이 된 첫날 단짝이 되었다.
시연이 생각과는 다르게 시연이는 우리 앞줄에 앉게 되었고 난 주아와 짝꿍이 되었다.
늘 시끌벅적한 시연이는 주아와 나 말고도 반친구 전체와 친구였고, 주아는 우리 말고는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었다.
그럼에도 주아의 주위엔 친구들이 끊임없었고, 모두가 주아를 좋아했다.
하얗고 아기 같은 피부, 깊고 큰 눈과 오똑한 코는 서구적인 동양미를 내뿜었고, 마른 듯 늘씬한 몸매와 긴 다리는 교복 안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무심한 듯한 눈빛으로 마주하다가 한 번의 미소로 반달이 되는 눈을 보면 누구라도 반하게 되는 듯 했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아의 모습은 멍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럴 때의 쌍꺼풀 없는 주아의 눈은 더 깊어지고 까맣게 빛났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시연이와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모으는 주아 덕에 내 주위에도 친구들이 많아 졌지만 단짝 세 명의 사이는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 주아아빠? 언제? 병원은 어딘데?”
갑작스런 부고소식에 질문을 따발총처럼 쏟아내곤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몇 년 만의 만남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지내던 우리가 고등학교 진학 후 점점 뜸해 지고 오늘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니 시연이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고3. 수능준비로 옆에 앉은 친구에게도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내는 요즘 이었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된 우리에겐 각자 삶의 목표가 있었고, 충실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연기자가 꿈이라는 시연이는 연기학원과 악기레슨, 보컬학원까지 섭렵 중이었고, 호텔리어가 꿈인 주아는 수능공부에 매진하며 영어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저 대학가는 게 목표인 내가 공부에 매달린 것과는 다른, 그들의 꿈이 부럽기도 하고, 자격지심도 들어 연락을 피했던 탓도 있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넌 또 왜 이렇게 말랐어?”
날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시연이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손가락까지 앙상하게 말라 웃을 때 패이던 보조개가 작은 표정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심장마비시래. 요즘 사업이 조금 힘들어 지셔서 무리를 하셨다나봐. 나도 자세한건 몰라. 그냥 요 앞에서 어른들끼리 하시는 얘기 주워들은 거라서…….”
벌써 눈이 빨갛게 충혈 된 시연이는 금세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안 돼. 우리가 울면 주아가 더 힘들어 할지도 몰라.”
장례식장 조문은 처음인 우리였기에 한달음에 가고픈 마음과 달리 몸은 쭈뼛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흰색리본을 단 핀을 아무렇게나 꽂고 검정색 상복을 입고 앉아있는 주아 옆엔 올해 열 살이 된 남동생 상주가 기대있었다.
다가가 아는 척 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다.
꽤 크게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화환이며 손님들의 수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입구 구석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우리를 지나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가 꽃을 놓았다.
주아와 남동생은 힘겹게 일어나 그들을 맞는 인사를 하고는 그들이 내미는 인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주저앉으려는 주아의 눈이 빤히 우리를 향했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시연이도 내 팔을 부르쥐었다.
우리는 그 때 감정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느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