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베 올라왔던 글에서 나누었던 몇 분의 의견을 보고 좀 놀라기도 하고 씁쓸해, 제 의견을 남기고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얼마전 부서회식을 하고 2차 장소를 찾던 중 발견했던 장소는 사진에 있는 이 곳 이었습니다.
곧 다른 곳을 찾아 이동했고 동료들과 '경성 1929'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성시대 1929년이라면 문화통치기(19년~31년)가 한참 절정해 달해있던 시기이자 뜻있는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있던 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여운형님이 검거되시고 부산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님이 옥중자결을 한 해더군요
또한 무장독립단체인 참의부 참의장과 군사장이 검거되시기도 한 해였습니다.
조선(대한제국)의 수도를 일제가 한 나라의 수도 이하도 강등시키면서 붙인 명칭이 바로 '경성(경성부)'입니다.
문론 경성은 서울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라는 어떤분의 의견도 사전적 의미로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역사와 함께 하면 그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요즘 주변을 보면 '경성'이라는 간판이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뉴트로니 레트로니 하는 분의기를 들어 '경성'이라는 상호를 쓰면서 일제강점기(경성시대) 컨셉은 불편한 감정이 드네요
저는 초밥도 좋아하고, 이자카야 같은 술집이 2차로 한잔하기에 좋아 가끔 이용합니다.
하지만! 왜 굳이 경성+일제강점기풍(또는 일본풍)+더구나 이자카야 같은 구성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가게들은 독립운동가 사진이 걸려있는 일본풍 술집 같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니 제 의견과 같은 기사가 있어서 일부를 남기며 출저에 링크 남깁니다.
장규식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유행하는 모던보이, 모던걸 복장을 개화기 복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기상 맞지 않다”면서 “1920~30년대에도 양장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 양장을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도시 중심으로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향유할 경제기반이 마련된 극히 일부 계층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경성은 한국의 식민지 근대를 대표하는 용어라는 지적도 나왔다. 장 교수는 “서울이 식민지 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총독부를 한성에 설치하면서 경성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경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식민지 낙인이다. 상점 이름 등에 차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킨 후 과거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경성으로 이름을 바꿨다”면서 “경성을 간판에 썼다고 해서 ‘친일’이라고 낙인 찍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정진용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