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3년 전쯤이니까 2005년 여름이겠군요. 모든 친구들이 군대에 들어가 있고, 혼자 방바닥을 긁으면서 스타리그를 보던 때였습니다. 그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이모가 이모부와 2명의 아들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시는데 저도 나오라 하셨습 니다. 딱히 할일도 없는지라, 나갔죠...일요일이었습니다. 불광동 쪽에 있는 영화관이었는데 몹시나 재미없던 "우주전쟁"을 보면서 우울해 졌었습니다. (허망한 엔딩 에 대한 분노는 생략하겠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 다시 올라탔죠. 이때... 이때...지하철 타기 전에 3분만 화장실을 쓰고 탔더라도 집에 편히 갔을텐데...휴... 너무, 너무 더운 날씨덕에, 전철이 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하철 문이 열리고 들어선 순간의 자리 탐색능력은 마치 리바운드를 제압해야 하는것 처럼 중요한 일입니다. (지하철 유저 분들에게는...) 당연히 저는 여지없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빈자리를 탐색했습니다. 저한테 선택은 3가지 였습니다. 1. (아저씨) (여자) *빈자리* (여자) (기타등등) 이곳이 제 눈에 처음 들어온 자린데, 양옆에 나시티 와 잛은 미니 스커트를 입으신 여자 분들 사이에 낀 다는게 내심 걸리더라고요. 저도 나시를 입고 있던지라, 서로 맨살이 닿는게 민망스러워서 다른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제 뒤에서 서있던 초딩한테 자리를 뺐길까봐 빠른 탐색이 필요했었습니다. 2. (여자) (대머리 20대) *빈자리* (기침을 심하게 하시던 아저씨) 제가 찾은곳은 2명의 나시티 여자분들의 바로 맞은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 자리를 발견한 그 순간까지 대략 2초간...엄청난 기침소리와 몹시 구겨진 휴지 같은걸로 입가의 침을 닦으시는 아저씨를 보고 멈찟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순간 초딩은 제 옆을 가로질러 2명의 여자 사이에 앉았죠. 3. 완전히 비어있는 노약자석. 제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곳은 이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맘이 내키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기침하시 는 아저씨 옆에 앉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는데, 옆쪽 문에서 들어온 또 다른 초딩이 달려가서 앉더 라고요...그러면서 "형! 역시 따로 줄서길 잘했어." 라고 하면서 2명의 여자 사이에 앉은 초딩과 히죽히죽 거렸습니다. 물론 다른 문쪽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자리 탐색전은 이미 끝났고, 저를 포함해 대략 3~4명의 패배자들만이 서있었습니다. ... 그때, 제 맘속에 든 생각이 "걍...노약자석 에 앉아서 가다가, 자리 양보해 드리면 되지!"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좀비처럼 서있던 다른 패배자들과 달리 저는...부끄럽지만...저는 노약자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우주전쟁"의 피로감을 풀고자, 수면을 취하며 대화역 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문이 곧 닫히고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반쯤 잠이 들었을 무렵...문이 열리는 "치~" 하는 소리와 함께 풍겨온 엄청난 술냄새에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이때가 오후 1시 무렵이었습니다. ... 완전히 취해서 비틀거리던 아저씨 한분이 제 옆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 상관않고 눈을 다시 감았습니다. 반쯤 잠들었던 지라 눈감으면 잠들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근데...근데... 제 오른쪽 귀를 누군가가 만지작 거리는 느낌에 온몸의 세포가 반응했습니다. 닭살이 확 돋아 오르면서, 꿈속으로 담궈두었던 한발이 현실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학생...?!...이 귀걸이...이거 진짜 금이야? 가짜야?" 만취한 아저씨께서 제 귀를 만지작 거리면서 베시시 웃고 계셨습니다... 황당함과 경계심, 분노, 짜증남...이런 감정보다 제 마음속에 먼저 떠오른것은 공포 였습니다. 지금까지 겪어본적 없는 미지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대략 3초간 아무말 못하고 눈을 껌벅거리던 제가...말했습니다. "...지...진..진짠 데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저씨는 손을 거두시며, 알아듣지 못할 무언가를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리곤 노약자석에선 1분여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 잠을 취한다기 보다는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맘에 눈을 다시 감고 자는척 했습니다. 이대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면, 왠지 지는것 같고, 혹시라도 만취하신 분이 따라 오실까봐...솔직히 무서워서 못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핸펀이 울렸습니다. "띠리리띠디 띠딩디~~♪" 그리고 그 아저씨께서는 제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핸펀을 꺼내려 하셨습니다. 이대로 당하기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짜증 < 황담함, 두려움" ...에서..."짜증 x 짜증 >>>> 공포, 두려움" 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어쨌는 저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소리치면서 아저씨 손을 뿌리쳐 버렸습니다. 근데 노약자석에 할머니 한분이 저를 응시하고 계셨다는걸 몰랐었습니다. 제 맡은편 자리에 앉으셨었더라고요...그리고 저를 뚷어져라 쳐다 보시는데...갑자기...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아저씨께서 갑자기 아저씨께서 외치셨습니다.
"아들아...아들아..." 하면서...엉엉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를 껴안고, 눈물 콧물 쏟아 내시면서 이 말만 연신 되풀이 하시는겁니다. 순간 지하철 안은 정적으로 고요했고...지하철내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저에게 집중됬습니다. 잠시후 웅성거림속에는 이런말들도 들려오더군요.
"가출했었나봐..." 아까 나시티 입은 여자 2명이나 기침하시던 아저씨나 초딩 2명...모두다 저만 뚷어져라 쳐다봅니다. 소곤소곤 거리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아저씨는 "아들아,,아들아,,"만 연거푸 말하시고... 제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학생 아버님좀 어떻게 해드려...공공장소에서 이러면 안되잖아." ...라고 호통치시는 표정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저는 짜증섞인 어조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희 아빠 아닌데요?"... 그리곤 지하철에 안에 계시던 모든분들이 저를 욕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아빠한테 저런말을 하냐?" 같은... 호통치듯이 말씀하셨던 할머님도 충격받으셨는지 멍한 표정으로 계시더라고요.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도망치듯이 내렸습니다.
"아들아~" 하면서 저를 붙잡으시는 그분을 뒤로 한체... 정말...정말...소름돋던 하루 였습니다. ... 혹시 그날 계셨던 분...여기 계신가요? ... 저...정말 결백합니다...죄가 있다면 노약자석에 앉았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