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우리 옆 마을에서 역병이 발생한 적이 있다.
발원지는 초물전이었다.
병은 초물전의 일곱 명을 모조리 죽이고
점차 이웃마을로 퍼져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역병이 금세 잠잠해지리라 생각한,
강을 하나 사이에 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그때,
목재상의 주인이었던 아버지는 구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직 절실함이 없었던 몇몇 사람들은
“이웃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것만
싹 틀어막으면 충분한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
구호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병을 가져오면 어떡할 거냐?”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마침내 역병이 강을 건너오자
아버지의 과하다 할 만큼 용의주도한 준비는
마을에 큰 이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 구호소는,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일개 개인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구호소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병에 걸린 환자와 함께 살던 가족이나,
혹시 내가 역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맡아서 보살펴주는 일.
즉 ‘격리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만든 구호소에서 나와 내 형제들은
아이들과 노인을 보살피는 일로 매일을 보냈다.
이윽고 더위가 물러감에 따라
역병의 맹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
차츰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며,
결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평소에 손을 잘 씻고,
가급적 마스크를 착용하며,
기침을 할 때는 소매로 가리고 할 것
등의 지침도 내렸다.
한편으로
‘이렇게 하면 역병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먹으면 역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는 시중의 소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킨 결과,
구호소에서 일한 이들은 누구 하나 역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이 오기 전,
아버지는 한 번 더 구호소를 지으려고 준비했다.
준비는 빨리 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자 거기에 또 참견이 들어왔다.
올해는 역병이 유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앞질러 그런 것을 짓다니 불길하기 짝이 없다면서.
이런 반대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아버지는 결국 구호소를 짓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예측한 대로 여름이 오자
완전히 뿌리를 뽑은 줄 알았던 역병이 다시 창궐했다.
역병으로 환자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반대에 부딪혀 짓지 못했던 구호소를
부랴부랴 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런 험담이 들렸다.
“돈 들여서 이런 거 지을 시간에
우리 마을에 들어온 다른 마을 사람들을
빨리 돌려보내는 게 훨씬 낫겠다”고.
그들은 역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국에도
그저 혐오 감정을 부추기고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어쨌든 역병이 다시 마을을 휩쓸자,
나도 환자를 돌보느라 분주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족자 하나를 벽에 걸어놓고 정좌하더니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도 족자를 바라보았다.
족자 안에는 항아리가 하나 보였다.
항아리 입구에서 머리를 내민 스님의 모습도 보였다.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스님은,
항아리에서 나가려는 건지 들어가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몹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이
대뜸 이렇게 얘기했다.
족자 안의 항아리가 예뻐 보인다고.
즉, 내 동생에게는 항아리만 보이고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 앞을 지나던 환자들도 모두 한 마디씩 하는데
전부 항아리 얘기만 했다.
내 눈에만 스님의 형상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당황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이 족자 안의 그림이 어떻게 보이느냐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항아리와, 그 안에 있는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게다가 그때,
나는 그림 속 스님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목도했다.
방금 스님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건네자,
아버지는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였다는 듯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족자의 내력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사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십 년 전,
그러니까 아버지가 열다섯 살 무렵.
집 대문 앞에서 바싹 야윈 승려 한 명이
쓰러진 채 발견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승려는 집 안으로 옮겨졌고
따뜻한 음식 덕분에 곧 기력을 회복했다.
할아버지는 “병원에라도 가보라”며
얼마간의 돈을 건넸다.
그런데 승려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은 감사하지만
자신은 이미 목숨이 다해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담담히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답례라며
찢어지고 헤진 보따리에서 족자를 꺼냈다.
항아리와 승려가 그려진 족자였다.
희한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할아버지에게는
항아리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오직 아버지에게만 항아리와 승려가 보였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얘기했더니 승려는
내 아버지만 따로 불러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족자 속 승려가 보였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이제 나도 안심하고 죽을 수 있겠다,
이 족자는 역병으로부터 너를 지켜줄 거다,
다만 족자 속에는 한 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곧은 마음만 있으면 보이는 주의사항이다.
그러고는 곧장 우리 집을 떠났기 때문에
생사 여부는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마을에 역병이 돌자,
과연 승려의 말은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동안
아버지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역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몸을 지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런 지혜가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지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역병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며,
“이제는 네가 나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될 거다,
너에게 항아리 속 고승이 보이고 말았으니
좋든 싫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자기는 이제 곧 죽을 운명이라면서.
이 말을 들은 나는 당황하는 한편으로
아까 아버지가 말한 “한 가지 주의사항”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장황하게 말하기보다
직접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를 거라며,
오늘 밤 이 족자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고 말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역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역병을 피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족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한 가지 주의사항”은 무엇인가.
그날 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족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코로나19 관련해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응급실로 전화해서 물어보지 마세요.
병원에서는 책임감 있는 대답을 해 주기 어려우며,
응급실은 그렇지 않아도 받아야 할 중요한 전화들이 많이 옵니다.
반드시 1339로 전화하시고 전화 대기가 길어서 통화가 어려우면,
지역 보건소에서도 24시간 언제든 감염병 담당자와 연락이 가능하니
보다 신속한 상담을 위해 의심 증상이 발생할 경우 지역 보건소로 연락해 주세요.
부디, 다른 사람 비난하고 혐오할 시간에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사용합시다.”
마포 김 사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