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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공포의 이름
게시물ID : panic_1011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6
조회수 : 128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3/07 21: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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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연이 학교 창고에 갇힌 것은 7살때의 일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그녀를 가둬버린 것이다. 빛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갇혔을 때 나연은 숨이 턱 막혀버렸다. 문 밖에는 자신을 가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창고에는 빛뿐만 아니라 소리 한 점도 없게 되었다. 나연은 그 시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이였던 나연은 그 공포를 언어로 정리할 수 없었다. 그러나 40대를 넘어 존경받는 물리학자가 된 그녀는 그 공포를 말할 수 있었다. 공포의 이름은 '없음'이었다. 나연은 어쩌면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없음'이란 것에 대해 탐구했는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의 최고 권위자가 된 그녀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조차 희미해질 무렵 그녀는 자신의 뒷마당에 몇몇 학자들을 초대했다. 그녀는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었다며 세워져있는 관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기 딱 좋은, 시신이 있을 법한 관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부정했었죠. '달을 보지 않아도 달은 존재한다'면서요.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이 틀린 것을 알아요. 달을 보지 않는다면 달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죠."
 
그녀는 관을 가리켰다.
 
"제가 만든 장치예요. 저는 저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어요. 하지만 관을 열지 않고는 절대 내용물을 측정할 수 없게 만들었죠. '측정'이란 건 아주 복잡한 거예요. 가시광선이 닿지 않으면 우리는 측정할 수 없다고 여기죠. 그러나 무언가를 측정할 방법은 너무나 많아요. X레이, 음파, 중력파... 존재하는 이상 무언가와 교류를 하게 되죠. 그러나 저기에 들어가면 그 무엇과도 교류할 수 없어요."
 
오랜 연구를 해온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말동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관으로 들어가 관을 닫아버렸다. 관에 들어가자 그녀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그녀의 머릿속만이 섬망처럼 번뜩일 뿐이었다. 그녀는 급격히 올라가는 심박수를 느끼며 생각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측정할 수 없어. 나는 존재하지 않아.'
 
학자들이 관을 열었을 때 그녀는 사라진 후였다. 그녀는 특정한 위치에 100%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무한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의 집합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무한하고 새까만 공간을 확률로 표류하였다. 그렇게 아득한 시간이 지나 작은 원자라도 그녀에게 닿으면, 그녀는 무한한 우주의 어딘가에 톡 하고 생겨나 새로운 공포를 두 눈으로 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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