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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일곱 살 터울의 누나가 있다
게시물ID : panic_1011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포김사장
추천 : 12
조회수 : 253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03/04 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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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에게는 일곱 살 터울의 누나가 있다.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병약했던 누나는
특히 기침이 심해서 돌봐 주는 이가
눈물을 쏟을 만큼 괴로워하곤 했다.

누나가 간신히 세 살이 되자 주위에서,
이대로 아이를 서울에 둔다면 병이 낫질 않겠다,
어딘가 따뜻한 지방으로 요양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사랑하는 딸을 멀리 떼어놓는 일은 견디기 힘들지만,
기침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부모님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제주의 친척집에 보내기로 했다.

누나의 병은 제주의 따뜻한 공기를 접하자
서서히 저주가 풀리는 것처럼 나아졌다.
그런 누나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해가 지고 나서야 누나는 집에 도착했다.
건강은 완전히 되찾은 상태였다.
지긋지긋하던 기침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혈색도 좋고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돌았다.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누나는,
집을 떠나 있던 게 14년은커녕
14일도 되지 않은 것처럼 익숙해졌다.
전학한 학교에 금방 적응했고
집과 붙어 있던 가게의 장사도 열심히 도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나와,
한 살 아래인 형과도 금방 친해졌다.
게다가 누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와 또래의 친구들처럼 꾸미기 시작하자
그 미모는 한층 더 반짝임을 더하는 듯했다.
당시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나, 누나, 하면서
뒤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누나를 좋아했다.
누나와 형과 나는 틈만 나면 함께 놀러 나가기 바빴다.

오래 떨어져 지낸 탓에,
막상 돌아오면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혹시 만나서 다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남매의 우애를 걱정하던 부모님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누나가 돌아오면서 14년 동안이나
우리 집을 덮고 있던 검은 구름은 걷혔다.
부모님의 근심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동생이,
여자와 남자로서 서로 좋아하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전까지는.

누나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형은 그 아름다움에 홀려 이성을 잃고 말았던 걸까.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제동이 걸리는 것이
보통의 남매 사이 아닌가.
그게 분별이라는 것일 텐데.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철이 나기 전에 남매로서 익숙해지고,
이상한 표현이지만 남매로 만들어져 갔다면,
그리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은 누나의 몸을 얽매고 있던
병이 저지른 못된 짓이다,
그런 식으로도 생각하게 되었다.

누나가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에게서 떼어 놓고,
아름답게 자라자 시치미를 뚝 떼며 돌려보냈다.
누나의 병은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참으로 심술궂다.
병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한데,
아무리 사이좋은 남매라 해도 지나치게 친밀하지 않은가
하고 제일 먼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 이는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이러한 일에는 여자들 쪽의 눈과 귀가 빠른 법인지,
감이 좋은 직원 중에는 누나가 서울로 돌아온 지
반년쯤 지났을 무렵부터 이미 ‘어?’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구석이 보였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무슨 망상이냐며
스스로를 꾸짖어 가슴속에 단단히 넣어두었다.

그러나 누나가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형과 사이좋게 지내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같은 지붕 아래에서는 한 명, 또 한 명
그러한 의혹을 가진 가게 직원들이 늘어 갔다.

봄이 오고, 장마철이 지나고,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찾아오고, 해를 넘길수록.
아무래도 누나와 형은 지나치게 사이가 좋지 않은가
하는 의혹은 부풀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의심의 대상이 대상이기도 하고,
의심하는 내용이 또 그런 내용이니까.
직원들끼리 쑥덕거리는 정도라면 몰라도
아니, 그 또한 잘못하면 이야기하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따라서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지나친 생각이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런 것으로 해두자.

결국 모르는 사람은 부모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 누나와 형은 사이가 좋다,
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이를 제일 먼저 우리 엄마에게 알린 사람은 바로 이웃에서
마찬가지로 큰 고깃집을 운영하던 식당의 사장님이었다.
(우리 가게에도 자주 드나들어서 내가 늘 ‘이모’라고 불렀다).
가까이에서 두 사람을 보는 일이 많았던 이모의 귀에
우리 가게 직원들끼리 하는 얘기가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이모도 고민했으리라.
가게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의 깊게 살펴본 끝에,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얼마나 경악했을까.

하지만 이모가 작심을 하고 전한 말은,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이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줄거리는 따라갔지만 당황한 탓에
요점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비로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언짢은 농담이라며 물리쳤던 아버지는 이내
맹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거니와,
터무니없이 불길하고 소름 끼치는 고자질이었다.

간신히 집에 돌아온 장녀와
나무랄 데 없이 자란 장남 사이에,
인륜에 어긋난 관계가 생겼다니.

게다가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곁에서
도움을 주고받았던 이모의 입에서 듣다니.

아버지가 이성을 잃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된다,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이모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이제 앞으로는 서로 왕래하지 말자면서.

때문에 누나와 형의 정도를 벗어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어중간하게 방치되고 말았다.

이즈음에는 한때의 분노에서 눈을 뜬 부모님도
그 선량한 이모가, 지어낸 이야기를 입에 담을 사람인지
의심해 볼 정도로 분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만 있자, 하며 서로의 눈을 마주 보니
누나와 형의 행동거지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모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제 와서 이쪽의 잘못을 인정하자니,
어떻게 첫발을 내딛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이모의 가게가 이전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과의 싸움이 원인이었는지
경영 악화로 인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이모는 가타부타 기별도 없이 가게를 접고 말았다.

그날 밤.

간이 탁자가 서너 개뿐인 작은 식당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직원을 열댓 명이나 둔 가게로 성장하기까지
낮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서
서로 돕고 격려하며 장사를 해왔던 이모가 떠나자,

마음이 심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던 부모님 앞에
누나는 머리를 숙이며 손을 바닥에 짚고 엎드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전부 사실이에요.

기죽은 기색 없이,
그저 아련하고 슬픈 듯
고개를 숙인 채로
누나는 말했다.

—저는 그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동생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요.
동생이 저를 사랑스럽게 여겨 주면 안 되는 건가요.

누구도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왜 다들 우리 사이를 나쁘게 보는 건지.
어째서 불쾌하게 여기는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데.

누나의 말에,
이번에야말로 부모님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누나의 고백을 듣고 아버지가 엄하게 캐묻자,
형은 곧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은 나쁜 짓임을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누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고.

이렇게 되면 둘을 한 집안에 놔둘 수 없다.
당연하다, 갈라놓아야 한다.

처음에 부모님은 누나를 다시 제주로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사정을 털어놔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없다.
도저히 밝힐 수 없다.

허둥지둥하고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소동이었다.
어쨌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부모님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끙끙거렸다.
남몰래 무당을 찾은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떠올린 해결책은,
형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형의 유학은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누나의 고백이 있은 후로 두 달이 지나고,
하늘은 3월 한 달 내내 맑게 개어 있었다.

하지만.
형이 공항으로 떠나기 전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누나가—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다.

유서에는 사과의 말이 쓰여 있었다.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용서를 바란다고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자신은 원래 없었던 사람으로 치고 잊어주길 바란다며.

그날,
형은 처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그런 형을 끌어안으며 부모님도 함께 울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모두 무언가에 홀려서 무서운 일을 당한 거라고.
이제 지나간 일은 잊고 다시 평안하게 살아가자고.

그래도 형은 정해진 대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고집했다.
식구들은 물론이고 가게 직원들을 보기도 불편하니까.
2년이나 3년쯤, 이번 일이 자연스럽게 잊힐 때까지.

실제로 가게 직원들 중에는 그만두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모두들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을 깨끗하게 떠나게 했다.
다른 가게의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이번 기회에 독립하겠다는 직원에게는
상응하는 돈을 챙겨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일손이 줄어들면 장사 규모도 작아지지만
어떻게든 버텨서 이 상황을 이겨내고 말리라.
형의 말대로 나쁜 추억을 정리하고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몹시 고민한 끝에
누나의 물건들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누나를 장사 지낸 후에 절에 맡겨서 공양을 부탁하고,
그다음에는 전부 태웠다.

그렇게 어른들이 각각 마음의 정리를 해 나가는 가운데,
나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애당초 누나가 왜 죽었는지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는 사실은 다만, 이제 누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거듭 안타까운 점은 누구에게도 “왜? 어째서?”
라고 함부로 입 밖에 내어 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게 되었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부모님은
나한테까지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없었다.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가게와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일만으로도 버거웠으니.
아직 어리니까 저러다가 잊어버리겠지.

그런 나에게 형이 다가왔다.
누나의 죽음으로 형의 출국은 잠시 미뤄졌다.
그때 형은 나에게 비단보에 싼,
작지만 약간 묵직한 물건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누님의 추억이 남아 있는 물건을
남기지 않고 절로 가져가 버렸어.
그런 물건이 곁에 있으면 슬플 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너도 하나쯤은 누님의 유품을 갖고 싶겠지.

이것을 주마, 하며 형이 내민 비단보 안에서
자그마한 손거울이 나왔다.
꽤 오래된 물건인 것 같았다.

—누님이 소중히 여기던 손거울이야.
몰래 넣어 두렴.
어머니한테 보여주면 가져가 버리실 테니까.

하지만 몰래 넣어두라고 해도
나로서는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형은, 우리가 비상금을 숨겨두던 다락에서
동그란 통을 꺼내 직접 거울을 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내게 약속하게 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누님 생각이 나서 슬퍼지거든 꺼내서 들여다봐.
절대로 아무한테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굳게 약속했다.

형이 일부러 거울을 내게 주며
숨겨 두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울을 받을 당시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내가 몰래 거울을 꺼내보는 일은 없었다.

누나를 떠올리면 늘 눈물이 났지만
손거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넣어둔 후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에게도 일러바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숨겨 두었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

형이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돌아올 때는 여자친구와 함께였다는 것이다.
형은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며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다.

부모님은 순순히 승낙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형은 정말로 누나를 잊었다.
그것은 나쁜 꿈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착한 아가씨와 사랑하며
가정을 꾸리려 하고 있다.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있겠는가.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안에 밝고 흥겨운 분위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장차 형수가 될 사람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터무니없이 못생겼다는 점이 그랬다.
깜짝 놀랐다.
죽은 누나와는 딴판이었으니까.

부모님도 언젠가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누나처럼 아름다운 미인에게 질려서
못생겼지만 성품이 착한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게 아닌가 하고.
그렇다면 다행이다, 다행이야.
오히려 그 점이 부모님을 더욱 안도하게 했다.

두 사람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형수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형수는 조금 수다스럽다 싶을 만큼 명랑한 사람으로
만사에 쾌활하고 부지런했다.
덜렁대는 부분이 있어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곤 했지만
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강바람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술술 흘려듣고.

형과 형수는 사이가 좋았다.
누가 보아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정말로 좋은 부부였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형이 내게 말했다.
누나의 손거울을 돌려달라고.
결혼하고 한 달이 지났을까.
지금껏 나는 거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형의 말을 듣고 겨우 떠올렸을 정도다.

갑자기 왜? 하고 나는 물었다.
어째서 누나의 손거울을 달라는 거야?

그리워서.
좀 보고 싶어서 그래—라고 형은 말했다.

나는 딴청을 부렸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형에게 거울을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형은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몰래 손거울을 꺼내 갔다.
다락에 넣어두었던 동그란 통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형이 거울을 가져갔음을 알 수 있었다.

형수가 그 손거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수가 손거울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게 왜 형수의 손에 있는 건가.

사랑하는 딸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좀처럼 딸이 평소에 사용하는 물건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법이지만 엄마는 다르다.
엄마 역시 손거울을 보고 첫눈에 누나의 물건임을 알았다.

—얘야, 그 손거울 어디서 났니?
남편이 주었어요. 오래된 물건인데 무척 예뻐요.

기뻐하는 듯 보이는 며느리를 갑자기 야단칠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며느리에게 과거의 일을 알게 할 수는,
더더욱 없다.

엄마는 형수 몰래 형을 불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안색을 바꾸며 화를 내는 엄마에게
형은 얌전하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생각이기는요, 어머니.
그 거울은 누님이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죽기 전에 누님이 막내에게 주었을 테지요.
막내도 유품이라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숨겨 두고 있었나 봐요.

그 손거울을 내가 꺼내서 보고 있는 모습을
형수가 우연히 발견했다,
예쁜 거울이라고, 부러운 듯이 형에게 말했다고,
어차피 거울 같은 건 나에게 쓸모가 없으니
형수에게 준 걸 거라고, 형은 말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후에 엄마가 나를 불러서,
형이 이렇다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나는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엉엉 울 뿐이었다.

형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무엇이 형을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을까.
왜 거짓말이 필요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분이 께름칙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손거울 소동이 있은 후로,
형수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음식 취향, 옷 취향, 머리를 묶는 방식,
하나하나는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형수는,
누나와 비슷해졌다.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형수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저녁때였다.
가족들이 밥상 앞에 앉아 있을 때,
형이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형수가 소리 내어 웃었는데—.

누나의 웃음소리와 똑같았다.
나는 하마터면 밥그릇을 엎을 뻔했다.
옆에 있던 엄마는 정말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펄쩍 뛰어오르듯이 고개를 들고
형수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형수는 날이 갈수록 누나가 되어 갔다.
행동거지, 어쩌다 하는 몸짓,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목소리와 말투. 별것 아닌 손짓까지도.

—그 아이가 돌아온 거예요.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엄마였다.
아버지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몇 번이나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형수가 걷는 모습에 누나가 겹쳐 보였을 때
자신이 잘못 봤나 생각하던 참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손거울에 대해서,
형이 거짓말을 늘어놓은 일까지 한번에
몽땅 털어놓았다.

이로써 족쇄가 단번에 풀렸다.
문제는 바로 손거울이었던 것이다.
형은 왜 그 손거울을 형수의 손에 들려주었을까.
그리고 대체 형수는 왜 누나처럼 변하게 된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흑백>을 읽어봐 주시길.
장타로 읊조리고도 굳이 여기서 끝낸 이유는
원작에 쓰인 결말의 애틋함을 각색 따위로는
도저히 제대로 옮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원작을 마주하며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저는 이번에 연성하면서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 ‘미시마야 시리즈’는 몇 번을 읽어도 역시 굉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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