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가 고양이와 귀족을 통합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고양이는 길에서 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설치류를 박멸해준다는 면에서는 효용을 인정받았으나, 그 귀여움이나 사랑스러움, 우정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찰스 다윈은 1859년에 발표했던 ‘종의 기원’에서 고양이가 ‘밤에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며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위어는 여러 동물을 사랑했으며,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어쩌면 가장 완벽하며 분명 집에서 기르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위어는 이 사랑스러우며 세련되게 아름다운 고양이가 점점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경연 대회를 여는데, 바로 캣 쇼였다.
빅토리아시대 상류층 사람들은 수준 높은 박람회를 관람하는 고상한 취미가 있었는데, 위어는 캣 쇼를 통해서 이런 고위 계층이 고양이한테 호감을 갖도록 만들 심산이었다. 그러러면 캣 쇼에 정통성과 위엄을 부여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고양이를 종과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심사하기로 했다.
위어는 아는 사람을 총동원하여 참가할 고양이를 모았고, 1871년 7월 13일. 그 유명한 만국 박람회가 열렸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캣 쇼를 개최했다. 위어의 친구는 캣 쇼가 열리는 당일까지도 고양이를 대중한테 선보인다는 발상에 회의적이었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캣 쇼는 성황을 이뤘고, 다양한 크기와 색, 무늬를 지닌 고양이들이 주인과 함께 도착해 있었다. 게다가 고양이를 심사하는 과정은 귀족들한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다양한 종을 선보임으로써 모든 고양이는 잠재적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위어는 크게 만족했다.
이윽고 전국에서 다양한 캣 쇼가 열렸으며,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다. 위어는 전국 고양이 클럽도 창립했는데, 이 클럽 이름을 걸고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공식 쇼를 열었을 때는 320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참가했다.
하지만 상황은 위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위어는 주인이 고양이 복지에 신경을 쓰길 바랐지만, 나르시시즘에 빠진 주인은 고양이를 단순히 액세서리처럼 여겼고, 계급 간에 차별이 존재해서 일반 군중은 고양이 클럽에서 수여하는 특별한 메달은 받을 수 없었다.
이런 부작용이 존재하긴 했지만, 위어가 캣 쇼를 통해 상류층과 고양이를 연관 지은 덕분에 고양이를 사악하고 더러운 동물로 여기는 풍토는 전반적으로 사그라들기 시작했으며,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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