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유 가입해서 처음 쓰는 글이 고게라 뭔가 이상하네요 ㅎㅎ
항상 눈팅만 해왔던 터라, 음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할려면 약 8개월 전, 그러니까 고 2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1주전. 12월의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주말, 토요일 아침 일찍 알바를 가기 위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배가 아프다며 배게를 끌어안고 끙끙 앓고 계셨어요.
근래에 들어 저렇게 아파한 적이 두세번 있으셨던지라 저는 그렇게 아프면 병원에 가라 라고 말하고 알바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오전 알바라 4시쯤 알바를 맞치고 친구와 얘기를 하며 핸드폰을 보는데 카톡이 하나 와 있더라고요.
이쁘우리딸을오레오레엄마가볼수이서을까딸엄마가만이쁘해주지못해서미안해'
평소 타자가 느리시고 카톡은 게임메세지 카톡밖에 없으시던 엄마라 그 카톡을 보고나서는 정말 길 가다말고 눈물이 막 나왔어요
옆에서 친구가 놀라며 왜 그러냐 하는데 그냥 막 울었어요.
그렇게 친구와 헤어진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모가 받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엄마 좀 바꿔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조금 아파서 안된다고 하셨어요. 진짜 버스타고 집오는내내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집에오니 당연히 엄마는 계시지 않았고 그냥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날 전화도 엄마가 아닌 이모가 받으셨구요.
학교에서 전화를 했는데 이모에게 엄마 많이 아파요? 라고 물었더니 응 조금 그렇네 라고 하셨고 그럼 퇴원은 언제하냐는 저의 말에 아직 안 정해졌다는 그 통화 내용까지도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요.
그리고 저에게 엄마 병원 위치를 알려주는데 대학병원이라는 것을 듣고 순간 멍 했던게 기억나요. 제가 사는 곳은 저의 도시에서도 중심이었고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지나도 큰 규모의 병원들이 나오는 위치였거든요.
대학병원은 버스를 타고 꼬박 1시간을 가야 나오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그날 꼬박 1시간 버스를 타고 엄마를 봤어요. 이상했어요. 너무 안 아파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오고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의 친구아줌마께서 오셨는데 그때부터 막 어린애 마냥 우시더라구요. 어떡하지, 하면서 우시는데 그때야 머리에서 막 적신호가 울리더라고요. 아 정말 뭔가 잘못됬구나 하고.
그리고 그때 오빠가 군대에 있었는데 휴가를 나올 예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나왔어요. 그리고 저에게 엄마 핸드폰에 있던 문자내용을 말해주는데 간암4기라고 그런 문자를 봤다고 말해줬어요.
간암4기, 보호자 침대에 앉아 몰래 검색하니 간암4기는 그냥 말기라네요.
그래서 엄마 몰래 울었던게 기억나요. 엄마는 저한테 몸에 돌이 생겨서 그것만 없애면 건강해진다고 그러셨거든요.
아무튼 몇 일이 지나고 엄마는 퇴원하셨어요. 한 박스 가득한 약과 함께요.
그 이후로는 뭐라 말할 것이 없어요.
엄마는 집안 일도 다 하시고 평소 자주 하시던 외출을 안하시던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순간 아 오빠가 그때 본 문자가 그냥 이상한 문자였구나 하고 안심도 했었고요. 바보같이.
그런데 설 날 고비가 찾아왔어요. 증상은 그때와 같이 이유없는 복통, 바로 입원하셨고 일주일을 그렇게 병원에서 계시다가 퇴원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토를 하시고 소화를 못 시켜서 힘드시다고 우시고 그랬던 기억이나요.
어느순간 발도 부으시고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끝이 오고 있다는 신호래요. 발에서 다리, 복수가 차고 끝내 사망에 이르는.
인터넷에 뭐라고 나와있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잘 주무르명 가라앉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차라리 일찍 병원을 가게 사실대로 말할껄, 아직도 후회가 되요.
그리고 3월 18일 또 고비가 찾아왔어요. 오빠의 전화를 받고 간 응급실에서 오빠가 들어가다 말고 말하더라고요. 길어야 한달이다. 엄마 앞에서 티내지 말라고.
그렇게 응급실에서도 소생실에 누어 복수가 차 정신이 혼미한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오빠에게 물으니 차를 타고 오는새에 복수가 서서히 찼다고 하더라구요.
눈 앞에서 엄마가 아파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데 저는 우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어요. 진짜 몸을 덜덜 떨면서 울었어요.
그리고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낸뒤 일반 병실로 자리를 옮기고 삼촌 차에 타서 집에 오는데 햇살이 너무 부셨어요. 진짜 너무 밝은데...
다음날 엄마는 정신을 차리셨고 제 힘으로 양치질도 하시고 저와 오빠에게 농담도 거시고 그러셨어요. 진짜 너무 이상하죠?
드라마에서 나오는 시한부들은 박박머리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온 얼굴로 나 시한부 환자야 하고 티가 나는데 우리 엄마는 아니였거든요. 그저 다리가 붓고 배가 나온것 빼고는 너무 괜찮았으니까.
그리고 그날 집에 가기전 엄마와 함께 밤 산책을 나왔어요. 다리가 부어 걷기가 힘드신지 엄마는 휠체어를 타셨구요.
휠체어를 밀면서 또 막 울었어요. 엄마한테 엄마없으면 어떻게 살아라면 막 울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저 사랑해 우리 딸 하는데 그냥 울었어요.
그리고 오빠는 엄마 간호를 하기 위해 병원에 남고 저만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집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데 순간 주저 앉아서 막 울었어요. 들어가기가 너무 싫어서. 그렇게 신발장에서 한참을 주저앉아 울다 들어갔어요.
평일에는 이모와 오빠 주말에는 제가 엄마의 옆에 있었는데 이때가 가장 후회에 남아요.
간호라는게 진짜 사람 피를 말려요. 양쪽이 다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막돼먹게 엄마에게 틱틱거리고, 화를 내고. 달래는 엄마에게 꿍해 말도 하지않고, 과거로 돌아가면 그때의 저를 정말 인정사정없이 때려주고 싶어요. 그게 뭐가 힘드냐고 아파하는 엄마 모습도 이젠 못 보는데.
그리고 마지막이 찾아왔어요. 호흡기를 다신 엄마의 모습, 이모가 목욕을 시키셨는지 옷도 갈아입혀져있고 심심하다며 바르신 매니큐어도 지워져 있더라구요.
호흡기를 다신지 일주일이 체 안되서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근데 웃긴게 죽은 엄마의 손을 잡고 엉엉우는 오빠의 모습과 엄마 옆에서 우는 할머니의 모습에도 전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그 전에 너무 울었었는지 막 그렇게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정신없이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저희는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학교에도 엄마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던 저라 전 정말 변한게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정말 잘 지냈어요. 잘 웃고 친구들과 놀러가고, 가끔씩 엄마 꿈을 꿔도 슬프지가 않았어요. 이상했어요. 제 자신 스스로가 말이에요.
나쁜건가? 할 정도로 너무 잘지냈으니까요.
그런데 몸에 베어있던 습관은 안 잊혀지나요.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고 발 걸음 소리가 들리면 당장이라도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만 같고, 집 청소를 하고 마루에 앉아있다 보면 엄마가 청소를 하고 집을 나서신 것 같고. 그냥 다 그래요. 온 곳곳에 엄마의 흔적이 너무 가득해서 뭘 봐도 엄마를 떠올려요.
요 전에 태풍때문에 바람이 세게 불때 저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 했어요. 왠지는 몰라요. 그냥 엄마 저 태풍 좀 봐. 라고 말할 뻔 했어요. 진짜 이상하죠.
아 뭔가 쓰다보니 너무 기네요. 아무튼 저는 잘 지냅니다. 이제 곧 엄마 생신인데 하늘공원이나 갔다 올려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