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정리(엄간지, 191209)
이삿짐을 싸며
쓰지 않을 물건을 정리하다가
마주칩니다.
장롱 안 종이상자.
눈에 걸치면 마음 아플까 깊숙이 숨겨놓았던, 언젠가 내 생일 선물을 담아 주었던. 그 상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녀가 주었던 편지들과
그녀와 함께 보았던 콘서트의 팜플렛 그녀와 탔었던 기차표, 비행기 티켓
2년 전 이맘때 즈음부터는
편지도, 사진도, 티켓도 쌓이지 않았겠구나.
생각하며
편지 봉투에 나란히 적혀있는 그녀와 나의 이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젠가 다시 쓸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걸까,
여태껏 남겨 놓은 상자를
이제 쌓이지 않을 상자를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쓰지 않을 물건을 정리합니다.
이제는 쓰지 않을 마음입니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lifeis3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