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신라의 통일이 핫한 주제네요.
두서없는 소견을 말하자면
신라의 통일이
고구려영토의 상실 같은 몇몇의 문제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쁜 결과나 우리 역사의 수치의 순간은 아니라는 것과
당시 삼국의 내정상황등을 살펴보면 신라가 통일 시기에는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먼저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쿠데타 이후에 연개소문의 독재로
수당전쟁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긴 합니다만
연개소문 반대파도 어느정도는 내부에 존재했고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이 생산성이 호남평야나 황하강, 양자강유역처럼 풍부하지 못한 동네라
고구려 특유의 청야전술이 곂치면서
재정적으로는 가히 심각한 수준이었죠.
백제도 성왕이 비명에 죽은 뒤로 여러가지 중흥노력도 하고 했으나
무령왕과 의자왕 초기를 지나서
이른바 의자왕이 미치기 시작한 시기즈음 되면
"왕권과 귀족" 이 둘사이의 대립이 심각하게 심화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 귀족이 의자왕을 사로잡아 바쳤다고 하는 기록도 있을정도로
강력한 왕권과 독재적 위치를 오르려던 의자왕과
기득권을 지키려던 귀족층 사이의 갈등이 장난 아니었죠.
반면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바다로는 왜에 둘러쌓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법흥황 진흥왕을 거쳐 선덕여왕 진덕여왕 무열왕대에 이르는 동안
한강유역의 차지를 통해 중국과의 직접 교류를 통한 문물 및 재물의 확보를 하면서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법령과 영토가 늘어나는 등의 이른바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가 생각만큼 약한 나라도 아니고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다 씹어먹을만한 급도 아닌 상황이 됬다고 봐도 됩니다.
뭐 이문제는 제쳐두고
먼저 나당동맹과 나당전쟁에 대해서 두서없이 말하자면
북으로는 고구려
서로는 백제
남으로는 왜로 둘러쌓인
신라에서
고구려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이 이득이 될거라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라의 군세는 백제와도 붙어봐야 답을 내는 상황이지 백제를 쳐바를급이 아니었으니까요
때마침 수ㅡ당도 고구려 정벌에 난항을 겪고 실패합니다.
이 기막힌 타이밍으로 인해 두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죠
당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와의 전쟁중,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하고 고구려의 동맹이던 백제의 지원을 견제하는 카드"
신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가 남하하는 것을 견제하고, 유사시 지원군을 요청할만한 방패"
여기에 민족의식, 민족공동체적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신라의 입장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나당동맹이 이뤄지죠.
나당동맹은 결과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으로 성공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당의 뒤통수를 친게 아니라
당이 신라의 뒤통수를 치고 한반도를 다 먹으려다가
신라에게 카운터 엊어맞고 내뺀게 더 정확한 그림입니다/
나제동맹의 문제는
나제동맹으로 한강을 찾기는 합니다만
한강유역도 다 한강이 아니져.
가장 기름지고
중국과 직접교류가 가능한 하류를 백제가 차지한 상황에서
한강유역 수복 및 고구려 남하저지라는
목적이 이미 달성되고 사라진
동맹상황에서
그 동맹이 유지될 필요성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신라 입장에서는 풍부한 곡창지대와
중국과의 교역로를 확보해야하니
당연히 한강하류를 공격해야하고요.
국사시간에 "한강유역을 차지한 순서대로 국가가 부흥했다"
이런 말 들어보셨을거라 믿습니다.
한강은 그만큼 중요한 이유고,,
성왕의 전사는
신라의 동맹결렬도 있지만
본인이 야밤에 아들이 보고싶다고 16명 내외의 시종급만 데리고 군영을 벗어나서 가다가
매복에 당한 것도 잇습니다.
사담을 하면
지금 대학원서 삼국시대 백제를 공부중인 선배의 사견을 빌리면
"성왕은 중흥군주로의 면모도 있지만, 성왕으로 인해 백제는 돌이킬수 없는 길을 걸었다."
"성왕이 무리해서 움직이다 죽지 않았다면, 백제는 무사했을것이다"
라고 하더군요.
이것도
굳이 문제 삼을 것은 없습니다.
결론을 내자면
고구려의 광대한영토의 상실과
한국역사가 한반도로 좁혀드는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신라의 통일은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고
신라의 역사가 배반의 역사니 통수꾼이니 매국이니
할 그런 것도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