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의 블랙홀
제40화 장원급제와 진실
“백호포휴세!”
구령에 맞추어 성남이가 동작을 바꾸었다. 각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고삐를 놓고 두 손으로 편곤을 잡아,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지나 높이 쳐들었다. 이번에는 반대방향이었다. 반대편에 있던 인형 하나가 또 박살났다.
“추산어풍세!”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오른쪽 아래로 편곤을 깊이 내렸다가 들어 올렸다. 사슬에 매여 회전하던 도리깨 모양의 끝 부분이 인형을 쳤다. 지푸라기가 흩날렸다.
“벽력휘부세!”
편곤을 다시 들어 올렸다. 반동에 의해 쌍절곤 부분이 시간차를 두고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 윗몸을 앞으로 숙이며 왼쪽 앞 인형을 내려쳤다. 인형이 산산조각이 났다.
“비전요두세!”
편곤을 다시금 위로 치켜들어서는, 마지막 남은 오른쪽 앞 인형을 내리쳤다. 이로써 모든 인형을 맞춘 십 할의 명중률로 편추 시험을 종료하였다.
조총 시험은 초시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나는 초시 때처럼 기절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총신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장전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과거 시험 과목에 활쏘기와 편곤이 같이 들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라의 모든 인재가 문과 급제를 노리고 밤낮으로 글만 읽어대니, 조총 기술이 발전을 아니 하노라.”
옆에서 민 선달이 조총 사격을 보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조총을 좀더 연구해서 발전시키면, 굳이 활을 쏘거나 편곤으로 후려치지 아니 하여도 먼 거리에서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데.”
“소문을 듣자 하니, 양이가 쏘는 화포는 조총보다 훨씬 빠르게, 연속으로 발사가 가능하다던뎁쇼. 화살이나 편곤 따위가 당할 수 없다고 하더이다.”
나를 목마 태우고 있던 떡대 아저씨가 심각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이런 대화를 충분히 새겨 듣지 않았던 것을 지금은 후회한다.
격구가 시작되었다.
붉은 옷과 푸른 옷을 입은 응시자들이 옷 색깔로 편을 갈라 나란히 섰다. 응시자들은 장시라고 불리는 긴 장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장시에는 촘촘하게 새끼를 삼은 딱딱한 줄이 둥글게 달려 있었다.
응시자들이 말을 타고 달렸다. 기다란 장대로 공을 쳐서 목표 지점에 넣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경기장 양편에 ‘구문’이라 불리는 붉게 칠한 목표 지점이 있었다. 구문 안에 목구, 즉 붉은 나무 공을 던져 넣는 것이다.
응시자는 많고 공은 하나이니, 복시에서 합격한 순서대로 공 가까이에 섰다. 자연히 성남이가 가장 먼저 칠 기회를 얻었다.
“수양수!”
민 선달이 찬탄을 터뜨렸다.
능숙한 자세로 장시를 사용했다. 장시 끝 둥근 밧줄 매듭 부분으로 공을 살짝 띄워 던졌다.
멀리서 옥좌에 앉은 주상 전하가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관람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내 옆에 주르르 선 응시자의 가족들은, 경기를 관람하면서 각자 식구를 응원했다.
“잘 한다!”
“조금만 더!”
“그렇지!”
하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성남이가 한 번 낚아챈 공은 장시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말을 몰면서 공을 앞으로 치는 것이니 바로 다음 사람이 칠 법 한데도, 다들 자신의 다리로 뛰고 있지 않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마상일체가 되기는커녕, 긴 다리로 다각다각 달리는 말의 위치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데 애를 먹는 통에, 장시로 공을 한 번 치는 것조차 어마어마하게 어려워 보였다.
격구 경기는 성남이가 다른 응시자들을 모두 쌈 싸 먹는 빼어난 기량을 보이면서 다소 싱겁게 끝났다.
모든 시험이 끝났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성남이가 장원 급제자였다. 임금님이 직접 일어나 성남이에게 어사화가 달린 사모를 씌워 주었다.
관대를 두르고 홍패를 들자 곧게 뻗은 콧날, 넓은 어깨, 근사한 얼굴모습이 더욱 빛났다. 주위에 모인 구경꾼들이 환호했다.
“역시 내 후배답게 장원이네!”
민 선달이 괜히 어깨를 으쓱였다.
“아씨, 집안의 경사입니다!”
여태 나를 어깨에 무등 태우고 있던 떡대 아저씨가 외쳤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씨유.”
떡대 아낙이 괜스레 옷고름으로 눈가를 훔쳤다.
저 멀리에서 어사화를 쓴 성남이와 눈을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생애 두 번째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성남이는 사모관대 차림으로, 이 날을 기려 특별히 사복시에서 내어준 말을 타고 감고당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가는 내내 구경꾼들이 찬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과 장원이라고?”
“무예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얼굴도 잘생겼네 그려.”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다.”
마지막 말을 누가 뱉었든,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보다.
말 탄 행렬을 따라 집에 도착했다. 안채에 이미 손님이 와 있었다. 안채는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시는 어머니 대신 나의 소관이었다. 황망히 달려 들어가 손님을 맞았다. 다행히 내가 없는 동안 어멈이 손님을 맞아, 안채에 딸린 손님방에 함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물 한 번 묻혀본 적 없어 보이는 고운 손이 햇볕을 쬔 적이 없어 보이는 흰 얼굴에 두껍게 칠해진 분과, 그 뒤에 풍성하게 얹은 가채를 매만지는 게 보였다. 손님이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시오. 나주댁이라고 하오. 이 나라의 지존이신 상감마마의 빙부 되시는 영은부원군 대감의 소실이오.”
유난히 ‘지존’ 두 글자에 힘을 주며, 다짜고짜 자기소개를 하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중전마마의 아버지, 영은부원군의 첩 나주댁이란다. 너무나 유명해서 나 또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젊었을 적 화려한 미색이 아직도 얼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미색을 붙들어 두려는 듯, 옷차림새도 지금까지 본 모든 여인 중 가장 화려했다. 자못 우아한 척 내젓는 손짓을 따라 나비 날개처럼 얇은 비단옷이 물결치며 움직였다. 너무나 얇은 나머지 강렬한 원색임에도 불구하고 옷감 안쪽이 훤히 비쳤다.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다.
“퍽 수줍어하네그려, 소저가 이 댁 아씨요?”
초면에 고개를 돌린 이유를 오해하고, 다짜고짜 묻는 품이 심히 무례했다. 그러나 똑같이 무례하게 되갚아줄 수는 없는 법.
“그렇습니다만,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아씨, 나주댁은 전라도 나주 관아의 천한 관기 출신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말을 높이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상대방에게 우습게 보일까 저어됩니다.”
손님 대접할 차를 나르던 추동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출신이 천하다 치더라도, 국왕의 장인어른의 첩이니, 항렬로 보면 중전마마의 새어머니뻘 아닌가. 미리 책을 잡히는 우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여기까지 찾아온 의도가 여실히 짐작되는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 무과에 장원 급제한 홍 판서 댁 서자가 이 집에 산다는데, 사실이요?”
나주댁이 내게 물었다. 이미 알면서도.
“네. 맞습니다.”
나의 대답에, 나주댁은 미리 짐작하고 있던 말을 던졌다.
“내 딸과 홍 도령의 혼사를 맺으러 왔소.”
41화에서 계속
-작가의 한 마디-
0 높임법: 첩의 자식인 재선, 재은의 신분이 정실의 자식인 “나”보다 낮기 때문에 소개 시에 경칭을 붙이지 않음 (한국말은 어려워) ‘재은 현주’에서 ‘재은이’로 호칭이 격하된 까닭은,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면서 재은에게 느끼는 마음의 거리가 한층 줄어든 덕분.
0 적모(嫡母): 서자, 서녀 입장에서 아버지의 본부인을 부르는 호칭. 구어체로는 보통 큰어머니라고들 부름
0 가채(加採): 가짜 머리. 본래 궁중에서 내명부의 비빈들만 가채를 얹어 머리를 꾸밀 수 있었으나, 점차 아래로 퍼져 세도가의 부인들 역시 가채를 하게 되었다. 나주댁은 첩이나 위세가 본부인보다 위라서 특별히 두꺼운 가채를 둘렀다.
0 빙부(聘父): 장인
*작가의 말: 까면 깔수록 양파처럼 터져 나오는 입시 비리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도 멍하니 뉴스만 클릭할 뿐,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습니다. 아니, 써도 아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저처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내가 흙수저라서 그래.’라며 자신의 문제를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 지원해주지 않은 탓으로 돌리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선 저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https://blog.naver.com/dankebitte/221653495393 네이버 블로그씨 질문에 대한 답변인 위 링크에서 알 수 있듯이, 저와 제 가족은 매우 큰 어려움을 딛고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한겨울에 난방을 하지 못해 추위에 떨며 셋이 꼭 껴안고 잘 때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교육과정을 마치면 어떻게든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명문대 졸업장을 땄어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하청업체 취업, 백수 알바 신세. 열정 페이, 납품 단가 후려치기, 무료 노동 강요 등의 일들을 겪으면서도, 제가 부족하고 무능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딸 사건을 언론으로 접하면서, 뒤이어 터져 나온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 사건을 신문 기사로 읽으면서, 금수저들에게는 전혀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헌법에 분명 모두가 평등하다고 적시되어 있는데도, 현실에서 우리는 부와 지위, 직업과 관련하여 계급제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더군요. 또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류 계급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인맥과 노력을 총동원하여 자식에게 자신이 지닌 돈과 권력을 물려주려고 애쓴다는 것도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없듯이, 흙수저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필요하다면 편법을 써서라도, 청탁을 해서라도 자녀를 높은 자리에 앉힙니다.
신라 삼국 통일 이후, 계속되는 전쟁 없는 나날로 인해 진골 귀족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벼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벼슬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점차 6두품, 5두품, 4두품이 앉아야 할 벼슬자리를 진골 귀족의 아들들이 빼앗아 차지했습니다. 진골들은 인사 적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식을 우선 보직에 꽂은 것이지요.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라는 망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음서제가 작동하여, 문벌 귀족, 무신, 권문세족이 차례로 정권을 잡아 자기 자식들을 벼슬자리에 앉혔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자연이 있습니다. 이자연은 과거 시험에 수석 합격한 인물이지만, 과거에 수석으로 급제하자마자, 가장 권력이 센 문벌과 사돈을 맺고 기득권이 되어 자기 자식과 손자를 음서로 벼슬시켰습니다. 그의 자손 이자겸 대에서, 그 유명한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지요. 왕실과 혼인을 맺고자 하는 지나친 욕심에서, 인종을 이모들이랑 강제로 결혼시킨 것도 모자라, 왕위 자체를 빼앗아 먹으려다가 척준경에게 뒤통수 맞아 몰락한 사건입니다.
조선 개창 후,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과거 급제자를 우대하였으나, 여전히 음서제는 존재하였습니다. 애초에 왕의 아들, 형제, 또는 남자 후손만 왕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음서제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세습을 허용하면, 가까운 벼슬아치 누군가에게도 세습을 허용해야 하니까요.
바로 이런 점을 시의 적절히 이용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태종 이방원의 처 원경왕후를 배출한 여흥 민씨 집안은 조선이 망하는 끝맺음 역시 왕후를 배출하며 함께 하였습니다. 600년 조선 역사의 시작과 끝을 전주 이 씨와 여흥 민 씨가 함께 한 셈이지요. 저는 이 부분을 포착하였습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바꾸기 힘든 역사의 거대한 물결과 제국주의의 파도 속에서, 한 개인이 운명과 맞서 발버둥치는 장면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는 160여년 전 고립된 농업사회가 아닌, 전 세계로 첨단 제품을 수출하는, 4차 산업 혁명이 이루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 급제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쉼 없이 달려가던 우리 조상들.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이고 벌이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지금 우리들.
(고시 준비, 대학원 진학도 넓게 보면 그 중 하나입니다.)
병작반수제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던 조선 말~일제시대 지주들.
드높은 임대료로 자영업자 소득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건물주들.
먹는 음식, 입는 옷 등 눈에 보이는 부분은 분명 달라졌는데, 본질적인 부분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위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소설을 쓰기를 어언 40일째, 부모님이 교수이면 대학에 공짜로 들어가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뒤 멘붕이 심하게 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소설 진도가 더 이상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 배경인 조선 말보다 진보한 사회임을 믿고 글을 쓰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특권 세습을 가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니 정말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니까. 국민의 여론을 반영할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국 후보가 청문회를 거쳐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수면도 거르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거의 모든 뉴스를 다 읽었지요. 그러나 제가 뽑은 대통령은 제 기대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홧김에 자유한국당을 지지할까 생각하자마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아들이 서울대 의대 연구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미국 논문 경시대회에서 2등을 했고, 그 실적으로 예일대 화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흙수저라 중1 이후로, 해외 영어 논문을 막힘없이 번역하고, 아버지 논문 쓰는 것을 번번이 도와드릴 정도로 논문 쓰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공을 모두 아버지에게 돌리고 평범하게 사는 반면, 금수저들은 가만히 있어도 서울대, 단국대 의대 교수님들이 실험 장비며 아이디어며 모두 제공해서 등 떠밀어 논문 저자로 등극시켜 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사는 게 싫어집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만약 제 재능으로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지금쯤 교수 한 자리를 맡아 강의하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우리 사회는 특권과 반칙이 존재하는 봉건제도에서 아직 완전히 탈피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수가 ‘갑’, 석, 박사 제자들은 ‘을’, 고등학교 갓 졸업한 학부 제자들은 ‘병’, 이런 구조로요.
정치가 다 싫어지고, 지금까지 제가 한 노력이 다 헛된 것으로 비추어 졌습니다.
이 막막함을 어찌 극복할지 막막합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지. 얼른 글을 쓰자. 재차 다짐해도, 손가락은 어느 새 입시 비리 사건을 클릭하며, 심장은 분노로 뛰고 있습니다.
이제는 ‘ #화성연쇄살인사건진범잡힘 ’ 같은 뉴스가 떠도, 특권층 입시 비리를 가리기 위해 7월에 DNA 조사를 하고서는 지금 9월이 되어서야 발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모론을 믿는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말없이 기다려 주신데 더하여, 길고 구질구질한 변명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추스르는 대로 꾸준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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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그림 1, 2: 자체 제작
그림 3: CJ E&M, "삼총사"
그림 4: 부평역사박물관
그림 5: 영화 "후궁, 제왕의 첩" 스틸컷,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