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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6
게시물ID : readers_341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05 23:02:00
 세미롱은 큼큼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최대한 호의적인 억양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저흰 어제 여기 도착했는데.. 좀 놀랍네요. 이런 곳이 있다니요."

 세미롱의 가꾸어낸 태도는 꽤나 효과가 있는지 스크래치를 향한 강한 적개심과는 달리 그다지 경계 없는 기색이 돌아왔다. 스포츠웨어가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이런 곳요?"

 "좀비가 없고 그.. 블루 존이잖아요."

 스포츠웨어가 긴가민가한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깨끗해지긴 했죠? 여기도 한번 어~엄청 난리가 났었는데, 청소부 아저씨들 오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금처럼 된 거 거든요. 전 여기에만 있어서 밖이랑 얼마나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요. 아, 청소부 아저씨들이란건 그.."

 스포츠웨어의 혹시 알고 있느냐는 눈빛에 세미롱은 살짝 긴장한 눈빛을 되돌리며 대답했다.

 "알아요. 스위퍼스 분들 말씀하시죠? 민간 군사 기업."

 "아 맞아요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요."

 이른 새벽부터 정찰에 나선 것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역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청소부들과의 평화적인 접촉이었다. 아예 총기도 놓아두고 완전히 비무장 상태로 만나러 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당장이라도 그냥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당에 총까지 두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무리였다.

 스포츠웨어가 기억을 더듬듯 말을 이었다.

 "이 학교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죽었었고, 저도 꼼짝없이 갇힌 상태였거든요. 그 아저씨들이 오셔서 운 좋게 살았죠."

 '사람들은 다 죽었었다?'

 세미롱은 조금 의아했다. 바로 어제 박사를 만났으니까. 그 회의장이 이 대학부지 바깥 어딘가인 것도 아니었다. 방향을 필사적으로 가늠했었던 탓에 부지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밖에 하나있는 높은 건물이 바로 박사의 회의실이 있던 빌딩이다. 생각해보면 박사는 이곳 대학의 연구원이거나 교수인 듯 싶었다. 건축 당시부터 보안을 고려해 지어진 듯한 구조도 연구시설이어서라고 생각하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서로 안면은 없는 건가?'

 세미롱은 머릿속으로 질문해야 할 것의 순서를 저울질하며 말을 골랐다. 박사에 대한 것도 궁금했지만 우선은 청소부 쪽이다. 딱히 숨길 것이 없는 사안이므로 질문이 최대한 단도직입적이 되도록 건넸다.

 "청소부 분들에게 저희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세미롱 바로 꺼낸 본론에 스포츠웨어가 기쁜 내색을 했다.

 "소개 해드릴게요! 그럴 테니까 대신, 이곳을 떠날 때 저도 그룹에 넣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전 여기를 떠나려고 생각해요!"

 활기찬 스포츠웨어의 반응에 세미롱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 완연히 드러나 버린 표정에 스포츠웨어도 조금 멈칫했다. 뻔히 긍정적인 대답을 줄 수 없어 곤란한 표정이다. 어색한 시선을 조금 피하며 세미롱이 말끝을 끌었다.

 "...그룹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괜찮지만요.."

 "다른 조건이 있나요..?"

 여전히 시선을 피한채로 스스로도 아직 납득하지 못한 결정에 대해 미간을 찌푸리던 세미롱은, 결국 털어놓듯이 말했다.

 "저희는 여기에 정착할 생각이에요. 이제 밖으로는 나가지 않아요."

 스포츠웨어가 실망했다.
 


###



 어젯밤 이어지던 버스 안의 토론에서는 기묘한 잠정결론이 내려졌다. 블루존의 발견과 청소부의 존재를 놓고 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르던 토론. 모두가 청소부를 극도로 꺼려하면서도, 누구도 블루존을 포기하지 못한 까닭에 나온 기묘한 만장일치가 토론의 결과였다. 그룹은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것이 아무리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결정은 결정인 이상 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세미롱의 스타일이었다. 세미롱은 반드시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스포츠웨어를 마냥 생각하게 둘 순 없다. 세미롱은 다소 닦달하는 구색이 되는 것을 감수하며 말을 밑어붙였다.

 "청소부 분들은 어디에 계시죠."

 경계없던 방금 전과 정반대로 눈에 띄게 머뭇거리는 기색이 떠오른다. 스포츠웨어의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의심이 피어날 여유를 주고 싶지 않은 세미롱은 시간을 끌리지 않기 위해 단언했다.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기 전에 관계정리를 했으면 해요. 최대한 빨리요. 저희는 진짜 무섭거든요?"

 그 말에 '당신들은 무서운 사람들인가요?!'하고 바보처럼 되물으려던 스포츠웨어는 이내 세미롱의 표정에서 그녀가 청소부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찍이 떨어져 둘의 대화를 쳐다보던 스크래치가 혀를 찼다.

 "야 무섭다니. 좀 더 폼 나는 표현은 없어?"

 세미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폼 나는 게 '진짜 무서워' 에요. 나 당장이라도 눈물 줄줄 샐 거 같으니까."

 "아 그래?;;"

 세미롱의 기분이 나빠지는 건 대체로 그에게 유쾌한 일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건 논외였다. 세미롱은 정말 서럽게 질질 짜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였다. 스크래치는 그걸 굉장히 보기 힘들어했다.

 스포츠웨어는 실망감을 느꼈지만 지금 자신이 입을 다문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란 것쯤은 알았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려 낙심하는 티를 내며 대답했다.

 "저에게는.. 정말 아쉽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청소부분들이라면 저쪽 산에서 생활하고 계세요. 초입에 지어진 산림 관리소에요."

 스포츠웨어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운동장 반대쪽으로 난 창문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지어져있다. 그녀의 말을 듣던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프로펠러 소리가 두두두두 울려왔다. 순간 그 소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떴던 세 사람이 동시에 정체를 깨달았다.

 '헬기소리야.'

 방향이 정확히 산림 관리소 방향이라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 정말로 관리소 뒷편에서 중형 헬기가 떠올랐다. 세미롱은 생각했다.

 '왜지? 뭐지?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인가?'

 저격병이 탄 헬기, 발칸포가 달린 헬기, 토마호크 미사일이 한 쌍인 헬기까지. 헐리웃 영화에서 본 모든 헬기들을 순식간에 떠올리며 이대로 뛰쳐나가서 도망가다 무력하게 죽는 모습까지 시뮬레이션 끝마친 세미롱은 재빨리 의자 밑으로 몸을 낮추며 외쳤다.

 "바닥에 엎드려요!!!"

 긴장감이 순식간에 팽창해 건물내부를 가득 채웠다. 산림 관리소 뒷편에서 떠오른 헬기는 아니나 다를까 물류센터의 상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헬기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온 창문이 떨리는 소리를 낸다. 저 작자들은 진작에 도망치지 않은 것을 비웃으며 첫 대화의 장을 헬기 폭격으로 열려하고 있었다. 세미롱은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자책하며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엎드려서 떨었다. 

 그렇게 5분 가까이 엎드려있던 그녀는 헬기소리가 멀어졌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닫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헬기가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 청소부 중 몇이 헬기로 대학 부지를 떠났다는 것, 고로 상대는 만전이 아니리란 것이었다.

 "진짜 좀 있으면 후회할거 같은 결정이긴 하지만.. 일단 산림 관리소로 가봐요. 그들에게 최대한 대등한 제안이 가능하다면 지금이겠죠. 상황이라도 확인해야겠어요."

 세미롱은 스스로 터무니없는 실언을 뱉는 기분이면서도 계속 말했다.

 "언제까지 벌벌 떨고만 있을 순 없으니 좋든 나쁘지않든 청소부라는 사람들과 첫인상이라도 쌓아야겠고요. 멋진 기선제압을 당했으니 기죽은 거라도 보여주러 가야겠죠."

 스크래치가 습관적으로 혀를 찼다.

 "쯧, 역시 폼은 안 나는구만. 근데 좋든 나쁘지않든은 둘 다 같은 뜻 아니냐."

 "그 뜻으로 쌓지 않으면 죽어요 우린."

 세미롱은 맞는 말 위주로만 좀 하는 편이었다.



###



 부자연스러울 만큼 핏자국이 하나 없는 대학 부지를 지나, 마치 멸망한 바깥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산림 관리소를 향해 세미롱 일행은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물품센터에서 나오는 중에도 과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세 사람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의아해하던 스포츠웨어는, 체대와 물품센터라는 평소의 이동반경을 벗어나자마자 세 사람의 심리를 뼈저리게 이해했다.

 그저 머릿속 상상으로 끝나던 익숙한 공간의 기억들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낯선 곳에선 어디선가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순간 소름과 압박감이 되어 다가왔다.

 '이렇게까지 겁이 날줄 몰랐어.'

 화단에 심어진 다소 무성하게 자란 어느 관상목 뒤에서 좀비가 부패한 시체를 뜯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한 번 시작되자, 스포츠웨어는 그 방향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새벽에 어두운 창문 밖을 바라보다 무표정인 귀신이 자신을 마주본다는 상상을 시작 해버렸을 때처럼, 주변의 정적과 고요가 길어질수록 그 섬뜩함은 더더욱 색채를 더해갔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돌리며 아무리 감각을 확장 시켜 봐도 달리 다른 소리나 인기척이 없다. 그런 사실을 깨달아갈 때마다 온 신경이 관상목 너머의 공간으로 매몰되어갔다.

 네 사람이 천천히 전진했다. 그 관상목과의 거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바로 옆을 지나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포츠웨어녀는 걸음을 재촉하며 숨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 친 후 곧바로 후회했다. 외면만 할 게 아니라 저 뒤를 뒤져보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등 뒤가 되어버린 상상이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팽배해져 도저히 진정 할 수가 없었다.

 "잠깐."

 가장 뒤에서 걷던 근육질의 중년 남성, 원경이 가운데서 걷던 스포츠웨어에게 다가와 등을 두드렸다.

 "숨 셔. 그대로 가면 기절해."

 그제서야 자신이 계속 숨을 멈춘 채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포츠웨어는 현기증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숨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거칠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현기증이 사라질 때까지 등을 두드려준 원경은 스포츠웨어의 시선떨림이 멈추자마자 손을 때고 앞장서는 스크래치를 쳐다봤다.

 "다시 움직이지."

 온몸을 휘감아온 탈진감이 당혹스러웠다. 세 사람을 둘러보는 스포츠웨어 눈빛엔 시선떨림이 사라진 대신으로 당혹스러움이 자리 잡았다.

 방금 전까지도 당장에 이 사람들을 따라나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탠가..?'

 체력도 정신도 충분하도록 준비했다고 여겨왔다. 불안감과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태껏 해 온 모든 것들이 택도 없는 애들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허탈한 감각이 엄습했다.

 그저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을 뿐이다. 바깥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난데없는 복잡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스포츠웨어는 말 없이 세 사람을 뒤따라 걸었다.



###



 아스팔트로 포장된 오르막길이 잠깐 돌계단으로 바뀐다싶더니 금세 정문이 나타났다. 다만 그대로 진입할 순 없었다. 몇 겹의 바리케이트로 막힌 길 너머에 관리소의 1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장 발길을 돌릴 듯한 모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스크래치가 경사를 조금 내려간 곳에서 진입할 수 있는 반지하 구간을 발견했다. 언뜻 관리소와 전혀 다른 구조물의 입구처럼 보이지만, 혼자만 덜렁 첨단소재가 사용된 센서문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청소부들이 설치해 놓은 것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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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전 화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자판기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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