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어. 출근 전엔 아내를 심하게 나무랐고 회사에 와서는 상무이사란 사람과 대판 싸웠으니까.
전날 오후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어. 신호 받아 정차해 있는 내 차를 뒷차가 받은 거였지. 큰 사고는 아니었어, 뒤쪽 범퍼가 찌그러진 정도. 정비소로 갔고, 사고처리 하는 과정에서 차 보험료가 미납된 걸 알았어.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깜빡했다는 거야. 할 걸 해야지. 큰 사고라도 냈다면 어쩔 뻔했어. 아침 밥 먹으며 핀잔 좀 줬어, 그렇게 넘어가는 건데, ‘그럴 수도 있지’란 퉁명스런 아내 말에 폭발해버린 거였어.
김 상무란 사람은 또 어떻고. 임원 회의에서 아, 글쎄 이 사람이 미*산업 건으로 팀원인 이*건 징계안 어쩌구저쩌구했다는 거야. 물론 상정되진 않았지만. 따졌지, 모든 책임은 팀장에게 있는데 왜 난 뺀 거냐, 같이 올리지 그랬냐. 팀장이 모르는 팀원 징계가 어딨냐면서 말이야.
“팀장님,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
얼굴 벌게져 씩씩거리고 있는 내게 이*건이 눈치 살피다 말한 거였어. 그래 그날은 동해 출장 날이었지. 왕복 6~7시간이나 되는 거리. 당일치기 일정, 김 상무와 다투다 출발시간을 훌쩍 넘겨 버린 거였어.
두 사람이 탄 차가 도심을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이*건이 그러는 거야. 죄송하다고.
“죄송한 건 됐고, 앞으로 잘해라.”
그러면서 덧붙였어. 너도 대리 달고 과장 진급하고 나중에 팀장 될 거다. 영업자로서 또는 중간관리자로서 선택해야 할 순간이 앞으로도 수없이 생긴다. 그때마다 다른 잡것들, 사심, 실적에 대한 욕심 이런 거 다 치우고 회사를 딱 중심에 둬라. 회사에 이익이 될 건지, 아닐지. 그것만 판단해라.
난 그랬거든. 주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이 되면, A4 용지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상단 중앙에 ‘회사’라 적어 놓고는, 왼쪽엔 잘 되었을 때를, 오른쪽엔 반대인 경우를 쭉 써 내려가는 거야. 오로지 회사를 중심에 놓고 판단하여 장점이 단점보다 곱절 넘게 나와야지 일을 진행했어. 이 방법은 아내와 싸워야 할 때도 종종 써먹곤 했어. 왼쪽엔 이익 오른쪽엔 손해... 답은 뻔했지. 이득은 하난데 손해는 열댓 개 넘어 나왔으니까.
포항 시내를 지나 한적한 국도로 들어서고 있었어. 담배 생각이 나는 거라. 둘은 잠시 내려 담배를 피웠지. 아내를 크게 나무란 순간이 떠오르더라.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어. 사무직이 아닌 영업자, 단거리, 장거리... 늘 차 가지고 다닌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어떻게 보험료를 깜빡할 수 있어?, 가벼운 접촉사고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크게라도 났으면... 두 아이 학원비는 꼬박 챙기면서, 학교에 내는 수업료며 중,석식비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양 호들갑 떠는 사람이 정작 가장이 타고 다니는 차 보험료를 잊어먹었다? 가라앉아 있던 부아가 다시 치밀어 올랐어.
포항 끄트머리, 내가 정말 싫어하고 저주했던 대통령 생가를 지날 때쯤이었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며, 휙휙 지나는 이정표가 낯설지 안는 거라. 기억을 더듬었지. 이 길, 한 번 지난 길인데? 그렇게 주위를 유심히 쳐다봤어. 한참을 달리니 눈에 들어온 이정표들, 월송정, 백암온천, 불암계곡...,
느긋하게 쇼파에 기대있던 난 허리를 세웠지. 그랬어, 여긴 아내와 신혼여행 온 곳이었어.
취업 준비 중,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을 서둘렀어. 둘 다 가난했지. 어려운 살림에 대학까지 보냈는데 부모님께 전세금 지원해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질 않았어. 공무원 누나를 찾아 보증 부탁하고, 오백만원짜리 단칸 전세 하나를 얻었어.
사정을 뻔히 하는 아내는 당시 유행했던 동남아 여행은 고사하고 남들 다 가는 제주도 신혼여행도 마다했었지. 그 돈 아껴 내가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 하자면서 말이야. 아내는 온천이 좋다며 울진 근처 백암온천을 가자고 했었어. 그렇게 가난한 신혼은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백암으로 여행을 갔던 거야.
“차, 저기로 한 번 돌려보자.”
영문 모르는 직원이 급히 핸들을 돌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자 조그만 마을이 나왔고, 좁은 도로를 지나니 항구 따라, 다닥다닥 붙은 식당이 늘어서 있었지. 포구 끝에 다다라 내렸어, 그리고선 길게 늘어선 식당을 살피기 시작했지. 십수년 전, 신혼여행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그만 포구에서는 아낙들이 막 건져온 대게, 홍게를 다듬고 있었어, 주위를 둘러봤어, 눈에 확 들어온 조그만 식당 하나...
비싼 대게 사 먹을 형편이 못 되었던 신혼부부는 아낙들이 선별하고 남은 하품의 홍게를 샀었어. 그리고선 포구 끝 자그만 식당, 십수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이 식당에서 수고비 주고 쪄 먹었지. 즐거웠고, 행복했어. 다리 몇 개 달리지 않은 싸구려 홍게에 소주를 먹으면서도 말이야.
3일간의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직행버스 안, 아내에게 말했어. 너무 미안했거던.
“미안해, 몇 년만 참자, 좋은 데로 신혼여행 다시 가자”
그때 아내가 내게 한 말이 또렷이 생각났어.
“너무 신경 쓰지마, 난 우리가 평생 가난하게 살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난 자기를 믿는다, 다음에 더 좋은 곳에 데려가 주라.”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지.
모든 걸 버리고 날 따라온 아내였어. 회사 일에 미친, 독한 놈 만나, 한 번도 풍족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던 아내였지. 대표님이 회식하라며 준 돈, 백만원 정도 슬쩍 빼내 줘도, 남들처럼 지급된 팀비 반 정도 떼어 생활비 하라며 건네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었지만, 그러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여겼던..., 잘 벌어다 주지도 못하는 놈이 또 오지랖은 넓어 여기저기 빠지지 않는 행사가 없었고, 성격 급한 놈이 술값 먼저 낸다고... 남이 먼저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그 꼴을 못 보는... 그런 한심한 놈을 지금까지 가장이랍시고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였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거지. 아니, 모른 척했던 거지. 고생한 아내를 말이야. 그것도 까먹냐는 호통에 아내는 결국, 고개를 숙이곤 훌쩍였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야 할 나, 넉넉지 않은 급여로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우선하다 보니 이틀 뒤 급여일로 미루었을 터, 그때까지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 싶었겠지. 아니 그 이틀 동안 사고 나지 않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겠지.
그냥 보통의 아내처럼 ‘니가 돈 많이 벌어줬으면 그런 일 생겼겠냐?’ ‘휴가 때, 부모님 용돈 기십만 원 드리지 않았으면 미뤘겠냐’ 그렇게 무능한 남편을 향해 한바탕 퍼붓기라도 했으면 덜했을 거야. 아내는 훌쩍였어... 그냥, 훌쩍였다구... 마음이,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 여태껏 아내가 고생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는 데 미치겠는 거야.
거래처 일 보는 둥 마는 둥, 내려가면서 팀비 관리하는 팀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이 주신 회식비 중, 오 십만 원만 급히 통장으로 쏴 달라 부탁했지. 곧 보충하겠다 하고는...
저녁때가 훨씬 지나 00백화점에 앞에 내렸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 옷이라도 하나 사라는데, 필요 없다며 아내는 구두만 하나 골랐어. 기십만원 짜리 즐비한데 세일 중인 7만원 짜리 싸구려 단화를 말이야. (후편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