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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5
게시물ID : readers_341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4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9/04 21: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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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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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기숙사 3층의 거주자, 3개월째 츄리닝을 착용중이라는 특색을 가진 통칭 츄리닝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막내의 횡설수설을 침착하게 경청해보았다. 대체로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그 말을 정리해보자면

 1. 대학에 침입자가 들어왔고
 2. 그들이 물품센터로 갈 것 같은데
 3. 스포츠웨어녀가 오늘도 예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스스로 처리하기엔 너무 난해한 사안이었던지라 츄리닝은 막내를 데리고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것처럼 최대한 난잡스럽게 방으로 들이닥쳐 아침잠을 대판 망쳐놓은 다음 대체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막내의 횡설수설을 들려주었다.

 2차 피해자. 주로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생활해서 삼디다스라는 설렁설렁한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그도 한살 동생인 츄리닝과 정확히 일치하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판단하기엔 막내의 정신상태가 너무 난장판인걸.'

 세 사람은 기숙사조의 최고 결정권자, 1층 장현수의 방을 찾아가 정중하게 노크했다. 정중한 세 번째 개판지기에 화를 내며 잠에서 깬 현수는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막내의 횡설수설을 눈 반쯤 감은채로 경청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과 같은 정도를 이해한 현수는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우선 청소부 아저씨들한테 알려. 뭔 짓을 하던 그 다음이야."

 "아니 현수형 지금 당장 그 누나가 위험하다니까!"

 "그래도 그 다음이야."

 "죽을지도 몰라!"

 "야!!"

 고압적으로 내지르는 현수의 분노 어린 목소리에 막내 시윤의 떼쓰기가 뚝 멎었다.

 "니 맘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청소부 아저씨들한테 먼저 알려. 이 기숙사 밖에서 개인행동 돌발행동 절대 하려고 하지 마. 당장 옆에 좀비 없다고 안전한 거 아니고 안 죽는 거 아니야. 그 스포츠웨어 여자가 위험하다고? 너든 나든 지금 지구 표면에 안 위험한 사람 하나도 없어! 생각하고 행동해!!"

 때려죽일 듯한 현수의 시선에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시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하고 한숨을 푹 쉰 현수는 반팔 겉옷 하나를 대충 챙기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츄리닝과 삼디다스가 와서 시윤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1층 현관. 입구를 대충 막아놓은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옆으로 치워버리는 현수. 너저분한 기숙사 남자동을 나선 네 사람은 청소부들이 점거하고 있는 산림 관리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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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부지의 유일한 생존자. 반년 전 좀비사태 이후 당시 부지 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염피해를 입거나 가까스로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피난하는데 성공하거나 했지만, 교내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것은 시윤이 스포츠웨어녀라 이름 붙여 부르고 있는 그녀가 유일했다.

 종종 대학 부지에는 신분이 불분명한 유입 인원이 있었는데 기숙사 조를 제외하곤 거의 다 청소부들을 피해 도망가버리거나 죽어버렸고, 그 정착에 성공한 기숙사 조의 누구와도 마주친 적 없는 스포츠웨어는 스스로가 이 대학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년 전 도시에 창궐한 좀비가 바리케이트를 뚫고 대학으로 밀고 들어오던 무렵. 챙겨 둔 비상식량과 함께 창고에 갇혀버렸던 그녀는 2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건물 밖으로 처음 나와 볼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청소부들에 의해 몇몇 건물은 전부 청소되고 체대건물은 철판으로 출입구가 완전히 틀어 막힌 상태였다.

 갇힌 채로 영원히 프로틴 음료만 섭취하며 고도건강에 매진할 뻔한 그녀는 운 좋게 체대 근처를 지나던 청소부가 철판 중 하나를 뜯어주어 두 달만의 탈출을 할 수 있었고, 스포츠웨어는 청소부들의 몇몇 만행을 전혀 몰랐던 덕에 그저 고맙게 생각하며 체대에 그대로 정착하게 된 케이스였다. 청소부들도 어딜 어떻게 봐도 무해해 보이는 그녀에게 총알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청소부들이 대학 부지의 관리를 계속해서 이젠 수요일 새벽마다 건물을 나서며 보게 되는 대학 부지의 풍경이 그날의 참사를 잊을 정도로 말끔해져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몸 곳곳이 파열된 채로 달려 들어오는 시체의 기억들이 분위기를 섬뜩하게 만들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찬 새벽 공기. 시야 끝의 ATM 부스에서 전등불이 깜박깜박한다. 있을 것 같다. 어디든지. 아직도. 시체를 뜯어먹는 시체가.

 스포츠웨어는 자신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제 극복해야해!'

 언제까지고 겁에 질려있을 순 없다. 다시 그런 사태가 오더라도 이번엔 도망칠 거다. 정신 잃고 겁먹지 않도록 체력도 멘탈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언제든지. 정말 언제든지라도 기회가 오면 뛰쳐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했다! 했지만..!!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말로 좋든 나쁘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래서야 백수생활이랑 뭐가 다른지.'

 스스로가 그저 건강건전한 백수라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한산한 운동장 외각을 가로지른 그녀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 언덕 위쪽의 상가 건물로 뚜벅뚜벅 걸었다. 벽돌 깔린 길이 틈 사이에 잡초하나 없이 깨끗하다. 학교가 온전하던 시절보다 외견만큼은 더 나아졌다.

 이 상가건물은 꽤나 오래된 건물이다. 대학부지 내에 몇몇 편의시설을 입점 시키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10여 년 전에 어떤 물류 회사가 통째로 입주한 다음 학생들은 이곳을 물류센터라고 불렀다. 사회 기반 대부분이 자동화된 이후론 누구에게나 익숙한 무인 자동자판 방식으로 운영되는, 센터 전체 층에 자판기만 가득 있는 형태다.

 국내 생산품의 대부분이 지하의 컨베이어 설비로 자동 발주 운송되는 시스템이어서 창궐 당시엔 외부로의 피난을 아예 포기하면서까지 이 센터에 머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자판기인 이상 물품을 꺼내 사용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억지로 꺼내기 위해 부서버리면 다음 물품이 충당되지 않았다.

 그 탓이었다. 센터에 고립된 사람들은 서로의 자금을 공유할 것인가로 의견이 충돌했다. 결국 몇몇 공유를 거부한 사람들은 센터에서 배척당해 부지내의 다른 단과 건물로 흩어졌다.

 스포츠웨어는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럴 잔고가 없어서 체대로 쫓겨난 케이스였다.

 '아니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아??'

 당시에도 그렇게 대꾸했지만, 그 사람들은 형평성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센터에 남은 사람들은 이후 모두 감염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청소부가 시체를 치워버린 이후 센터에는 사라진 사람들의 크레딧 카드만 산처럼 쌓여있었다. 스포츠웨어는 매번 그 중 아무것이나 내키는 대로 사용해 생필품을 구매했다.

 처음엔 혹시 손만 대도 감염되는 거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소부들의 처리는 완벽했다. 시체냄새는커녕 사람냄새도 나지 않았다. 국내 최정상의 탈취 노하우였다.

 센터의 자판기는 계속해서 구매되는 것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는 학습식의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는데, 그 탓에 센터에는 이제 대부분 스포츠웨어가 구매하는 것의 유사상품들만 진열되고 있다.

 살아가는데 당연히 필요한 생필품들, 일부 그녀의 식성에 맞춘 음식들, 그녀가 선호하는 회사의 건강이나 운동 보조 제품군, 긴 고립 생활의 스트레스를 달래줄 달달한 입가심 거리들. 그런 것들이 센터 전체에 걸쳐 빽빽하게 진열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총기. 총기류가 자판기에 등록될 것이라고 상상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계속 구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총기류까지 자판기에 올라오게 되었다. 이 센터에서 끝까지 농성했던 사람들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미 구매된 총기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청소부들에게 회수된 모양이었다.

 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을 꼽으라면 3층 동쪽 구간 한 자리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최신식 로켓 런처. 커다란 유리 너머 전시대의 한쪽켠으로 다가가면 어울리지 않는 자동판매 패널이 당연하단 듯이 자리하고 있다. 호기심 때문에라도 한번쯤 누가 구매해볼만한 모습이지만 아쉽게도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어떤 크레딧 카드를 갖다 대도 잔액 부족이라는 붉은 표시가 뜬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못 사지..'

 판매되지도 못할 상품을 진열하다니. 아무래도 Ai의 자동 학습 판매 시스템은 사람보다 멍청한 구석이 있었다.

 스포츠웨어는 매번 사던 생필품과 일주일분 정도의 인스턴트 식품을 뒤따라오고 있는 카트 드론 위로 떨어뜨렸다. 구입한 상품을 실어두면 자동으로 입구로 배달해준다. 그녀는 카트가 계속해서 따라오도록 팔로잉 기능을 켠 다음 식당 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목도하는, 긴 역사동안 반드시 인간의 손을 거쳐야했던 요리의 대부분이 자판기에서 즉석조리되어 나오는 광경. 멸망 직전 인류가 도달한 문명의 수준은 미쳤다. 10대의 대부분을 다이어트에 시달려온 스포츠웨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쇼핑을 마치고 짐이 가득 실린 호밍 카트들을 몰며 Ai가 엄선한 아침 식사 메뉴를 받아든 스포츠웨어는 항상 앉던 자리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텅 빈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그런데 엉덩이를 붙이기 직전, 뭔가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의 바로 뒤에 활성화해둔 카트 세 개가 모두 있는 것을 확인한 스포츠웨어는 식당 입구를 다시 바라봤다.

 "...?"

 명백한 인기척. 누군가 센터 내부를 걷는 발소리가 텅 빈 공간을 툭 툭 울려온다.

 오늘 아침 메뉴에 포함된 어울리지 않는 식사용 나이프.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자판기의 의중을 깨달은 스포츠웨어는 감탄하며 그것을 꼬나들었다. 학습능력이 극에 달한 블랙퍼스트 자판기들은 식사에 쓸 수저와 정리를 위한 냅킨만이 아니라 식사를 안전하게 완료하기 위한 호신용 도구도 함께 갖춰준 것이다.

 칼을 쓰는 것이 그녀의 특기는 아니었지만, 상대가 누가됐건 무시무시한 아침 식사용 칼날을 들이밀어 위협한 다음 그대로 마운트만 걸고 나면 엉망진창 일방적으로 때려눕히는 것은 근 반년간의 웨이트로 다져진 그녀의 전문분야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스포츠웨어는 쇼핑 카트들의 호밍기능을 끄고 조심스럽게 벽에 달라붙었다. 눈을 감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인원은 틀림없이 한 사람. 성별은 모르겠고, 체중은 알 수 없다. 발소리를 듣고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내는 능력은 스포츠웨어에게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원수에도 확신은 없고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다만 거리감각만은 야생동물 수준인 스포츠웨어였다. 정확히 반보 남은 시점, 벽에 바짝 붙였던 몸을 휙! 돌려 통로로 튀어나간 스포츠웨어는 정확히 상대의 코앞까지 식사용 나이프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믿기 힘들만큼 성격이 더럽게 생긴 머리에 스크래치가 있는 남자에게 그대로 업어치기 당한 다음 나이프를 쥔 손을 딱딱한 군화에 짓밟혔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내지르려는 순간 머리 위에 총구가 들이밀어져 소리를 도로 삼켰다. 비명을 위해 준비된 하이톤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사..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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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손목이 안 부서져서 다행이에요;;"

 세미롱이 퉁퉁 부어오른 스포츠웨어의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며 스크래치를 힐난했다.

 "당연히 안 부서지지. 나도 그 정도 손대중은 해."

 "그 군홧발로 밟아놓고 잘도 그런 소릴하네요;;"

 밟고 있는 꼴을 직접 발견한 세미롱의 견해로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아직 뼈가 붙어있는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식사용 나이프를 들고 대인전을 걸어오는 담력. 붕대를 감으며 만지고 있자니 의외로 보기보다 훨씬 탄탄한 몸. 그렇다고 해도 군인은 결코 아니어 보인다. 하물며 청소부일리도 없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상대보다 약한 장비를 들고 나오는 일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식사용 나이프를 무기로 쓸 바엔 초경량 코일건을 꺼내드는 게 그 작자들의 방식이었다.

 '여기 사는 일반인인가?'

 믿기 힘들지만 그 외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스포츠웨어녀의 카트에 실린 물건도 대부분 생필품 혹은 인스턴트 식량이고,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도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면 영락없는 아침식사 목적이다.

 세미롱은 큼큼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최대한 호의적인 억양으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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