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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인간 유래의 괴물 - 0
게시물ID : readers_341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콜이
추천 : 1
조회수 : 36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9/09/01 0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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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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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울고있다. 애처롭게. 본연의 사나움이 잊혀져있다.


'끔찍해.'


살인마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슬프고 억울할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 울고 있으니까.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우는 시늉이라 생각하면 역한 기분이 든다. 박사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일부는 환희였다. 드디어 해냈군. 그러나 대부분은 불안감과 흡사했다. 기어코 저질렀어.


뒤섞인 두 감정은 되새길수록 이해하기 힘들고, 끔찍히 더럽고, 다소 생소했다.


누군가 예상대로의 결과이냐 질문하면 박사는 완벽했다고 대답 할 것이다. 그러나 느끼는 것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 때의 낙망과 닮았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만족과 망연자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박사 귓가에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신의 허리춤에서 난 소리였다. 한계. 투여한 생체신호 억제제의 한계 시간이 됐다. 실험체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관찰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 투약한 것이지만, 독약과도 같은 억제제는 일정 시간 내에 반드시 해독할 필요가 있었다.


박사가 허리춤의 케이스에서 해독제를 꺼내며 돌아갈 준비를 하던 순간, 소름끼치는 위화감이 뒷덜미를 휘감았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울음이 멈췄어.'


실험에 성공한 후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소리가 사라져있다.


박사는 깜짝 놀라 두꺼운 유리벽 너머의 실험장으로 시선을 내렸다.


지하를 메운 시멘트 구조물. 각 속에 가득 고여 있는 실험용 오염수. 구획 마다 물속에 잠긴 시체들. 그리고 그 공간의 가운데를 기어 나와 올라앉은 물에 불은 시체 한 구.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낸 채 울고 있는 시체가 눈앞에 있다. 그 희멀건 하게 불어 터진 안구를 보고 있자면 불쾌감이 끓어올라 목이라도 벅벅 긁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행동을 멈췄다. 박사는 울음 멎은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흠칫. 무언가 깨달은 박사는 한걸음 물러나며 제 입을 막았다.


'저게 눈이 보일 리는 없어.. 소리.. 알람 소리가 들렸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감각적 인지는 초자연 현상이 아니다. 감각기관을 생략하고 앞을 보며 소리를 듣는 생명체는 없다. 심지어 저 실험장의 좀비는 오염수에 전신이 불어 제대로 된 신경세포를 모두 상실한 상태였다. 알람 소리에 반응한 것이라면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미세진동을 느꼈다고 의심해야 했다.


'...'


박사는 그 생각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임에도, 저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주제에 마치 이쪽을 눈치 챈 마냥 시늉하고 있다는 망상마저 들었다. 외형과 행위가 주던 혐오감에 이어 마치 박사를 직시해오는 듯한 저 기묘한 움직임까지 생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예정 없던 현상에 원초적 공포와 압박감이 박사의 몸을 죄어들었다. 울기를 멈추고 박사를 마주보듯 고개를 들었던 좀비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첨벙하는 물소리가 넓은 시멘트 공간을 울렸다. 귓가가 섬뜩해 온다.


박사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왼쪽 팔뚝에 해독제를 주사하고 실험장의 격리 상태를 확인한 후 재빨리 몸을 돌렸다.


이 이상의 불쾌함 견딜 수 없다. 정신도 이미 환청처럼 한계 알람을 울려대고 있다. 손발을 떨고 있는가? 다리는? 팔은? 동공은? 방금 자신이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나? 아니면 흐느껴 울었다거나.. 마치 '저것'처럼.


억제제와 해독제의 육체적 부담이 뒤섞인 탓에 찾아오는 짧은 착란전조임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동반된 불안감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박사는 점점 더 속도를 높여 걸었다. 주변 가득 엉겨있던 답답한 물냄새가 옅어진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지하복도에서 그 감각만이 위안이었다. 다행이다. 아무것도 착란하고 있지 않고, 순조롭게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박사는 그리 냄새에 민감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인지 지하 물탱크에서 나는 먼지 섞인 물냄새 만큼은 어찌할 수 없이 불쾌했다. 시멘트, 물, 시체... 살아있는 시체. 좀비가 없더라도 지하에선 항상 그런 쾌쾌한 냄새가 나던가?


맡아본 기억이 없다.


박사는 마지막 코너를 돌아서 계속 걸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의 직통 엘리베이터에 올라 타 연구동 빌딩의 꼭대기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유리창 바깥마저도 격리구조로 꽉 막혀있다.


엘리베이터가 희미한 구동음을 내며 상승을 시작한다. 지상을 향해 올라가며 창밖 시멘트 벽에 페인트로 투박하게 그려진 층수 표시가 세 개쯤 스쳐갔다.


B3. B2. B1. 그리고 답답한 회색벽이 시야에서 걷혔다. 지상이다.


관리되지 않은 채 도로를 가득 메운 수목림. 뒤덮힌 잎의 그늘 탓에 지상은 실내 복도의 연장처럼 보인다. 생체신호의 억제가 해독되며 점차적으로 감각이 재활성되는 탓에 그 정도 녹색의 선명함만으로도 심히 자극적이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박사의 머릿속에서 들끓던 불쾌한 감각이 다소 환기되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만은 않았다.


잠시 후 층과 층 사이의 거리가 넓은 지하에서 빠져나온 엘리베이터가 표준 운행을 위해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졌다.


1층. 2층. 그리고 3층에 도달하니 지상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박사는 수목에 반사되어 시야 아랫편을 때리는 여름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따갑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의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전깃불이 쬐이는 질 낮은 양철통 속처럼 열기가 차올랐다. 온도 변화에 맞추어 엘리베이터의 에어컨 바람이 강해졌다.


언제였는지 모르게 잔뜩 흐른 식은땀에 찬 공기가 닿아 가벼운 소름이 끼쳤다.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외벽을 타고 계속해서 상승했다. 시야의 반경이 넓어진다. 대학의 부지가 보이고 도시와의 사이를 분단하고 있는 외벽 높은 고속도로, 그리고 그 너머로 이제 사람 살지 않는 폐허가 보인다.


굳어진 습관으로 곁눈질을 하던 박사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세상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와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층수 표시계의 숫자가 11층에서 멈추었다.


접근제한. 지하의 연구동과 같다.


박사는 자신의 신분증을 엘리베이터의 센서에 갖다 댔다. 숫자의 색이 적색에서 청색으로 바뀌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였다. 이윽고 12층에 도착한 문이 열리자 홀 가운데 낯선 여자가 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박사님."


왼쪽 가슴팍에 감찰관 이시언이라는 명찰이 눈에 띈다.


"여느 때의 건으로 찾아뵈었습니다."


미소. 높고 선명한 천장 조명 탓에 인상에 그늘이 지기 쉬운 위치에 곧게 선 그녀는 업무적인 차갑고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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