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역사판타지연재소설]민족혼의 블랙홀 제37화 도를 아십니까
게시물ID : readers_341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K.sy.HE
추천 : 1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29 06:27:05
옵션
  • 창작글

 

 

 

민족혼의 블랙홀

 

 

 

37화 도를 아십니까

 

성남이가 새로 사귄 친구, 재선. 그리고 내 예비 시누이 재은 현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가에서 공연하는 판소리에 빠져 가난타령을 듣고 있었다.

 

때마침,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복채 필요 없으니, 소저 내게서 운수를 점쳐 가시겠소?”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장옷을 뒤집어 쓴 여인이 어느 새 뒤에 서 있었다. 눈이 치켜 올라가 고양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 눈을 제외하면,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은 일견 수수해 보였다. 뒤집어 쓴 장옷과 안에 입은 옷은 모두 소복이었다.

 

어느 새 판소리를 구경하려고 인파가 구름 같이 모여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던 성남이가 뒤늦게 여인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만큼 아무 기척도 없었다.

 

누구냐!”

 

성남이가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

 

하찮은 일개 무당이오. 소저에게서 범상치 아니한 기운이 피어 나와, 염치 불고하고 말을 걸었소.”

 

여인이 대답했다.

 

하찮은 일개 무당이 어찌, 양반집 여인네들이나 입는 비단 장옷을 쓰고 있느냐! 또 상을 당했으면 돌아가신 분이나 기릴 것이지, 어찌하여 우리 아씨에게 함부로 말을 거느냐.”

 

성남이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힐난하는 어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분은 그대로 옷에 드러났는데, 자신이 양반임을 과시하고 싶은 치들은 옷의 재질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입고 다녔다.

 

양반은 중인을, 중인은 상민을, 상민은 천민을 업신여기고 멸시했다. 간혹 백정 같은 사회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걸맞지 않은 복색을 하고 나오다 들키면 집단 폭행을 가하고는 했다.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를 구타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는 것인가. 목소리를 낮춘 까닭은 아마 길거리에서 무분별한 구타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누에가 실을 토해 만든 비단을 빼앗고 누에를 죽이면서, 그 비단까지 염색을 해 버리면, 본래의 빛깔을 잃은 데 대해 충심 어린 관우 장군님이 노하십니다.”

 

자신을 무당이라고 밝힌 여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비단옷을 입고 온 이유는, 참람되이 양반을 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우 장군님으로부터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던 재선과 재은 현주가 호기심 어린 기색을 하며 모여 들었다. 그 중 더욱 어리고, 더욱 자제력이 부족한 재은 현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계시라고? 계시가 뭐야?”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모습이 매우 사랑스러웠다.

 

계시란 제가 모시는 신령, 관우 장군님이 장차 일어날 일을 제게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집안의 기둥이요. 겨레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귀인이 오늘 여기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무당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판소리에 흠뻑 빠져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치는 장면에 모두들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라의 기둥이요, 백성의 어머니가 났으므로, 태중의 용이 여의주를 얻으면 능히 이길 수도 있습니다. 여의주가 되시는 바로 그 분이 오늘 저잣거리에 납신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흑혈 벽에 비치는 그 시절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돌잔치 때 영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 때에도 현부인은 아버지에게 같은 말을 하며 구두 계약을 강력하게 권하였다.

 

사정을 모르는 재선이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

 

무당은 아랑곳 않고 자기 할 말만 쏟아 놓았다.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날카롭고 매서웠다.

 

오늘은 주역 진괘의 날이로구나! 천둥 번개가 다가오고 있어. 두려움으로써 도를 이루게 된다면, 즉시 일이 잘 풀릴 것이야. 우레가 무섭게 내리친다는 것은 복이 이른다는 뜻이 아닌가. 웃음도 말도 아니함은, 뒤에 따라오는 법칙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발 나아가야 종묘사직을 지키고, 제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위엄이 백 리에 떨쳐, 우레 소리에 놀라는 것과 같이 한다면, 가히 향기 나는 술을 잃지 않을 것이니라. 내 말을 기억해 두게.”

 

할 말을 다 한 무당이 총총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주위는 흥부가 박 타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방금 저거, 뭔가?”

 

재선이 물었다.

 

아무도 답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 한 켠이 불편해졌다.

 

판소리는 흥부가 대박을 치는 장면으로, 소리꾼과 청중이 어우러져 한창 떠들썩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소리꾼이 부르는 창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자.”

 

나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성남이가 다시금 나를 업었다.

 

재선과 재은 현주가 뒤를 따랐다.

 

☆ ★ ☆ ★ ☆ ★

 

집에 와 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나는 곧장 안채로 갔다. 가솔들이 대부분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마님, 부디 이러지 마십시오!”

 

떡대 아저씨 아낙이 애원했다.

 

무슨 일인가.”

 

내가 끼어들었다.

 

마님께서, 마님께서......”

 

꺽다리 아저씨 아낙이 말 끝을 흐렸다.

 

무슨 일인지 말하라 하지 않았나.”

 

목소리를 다소 높였다.

 

아영아, 부디 말리지 말렴. 하늘을 감동시켜 지아비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녕 이 방법 밖에는 없느니.”

 

어머니께서 시퍼런 작두 위에 새끼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내가 황급히 말렸다.

 

어머니, 정녕 손가락을 자르려 하십니까.”

 

그래. 단지해서 나온 피를 남편에게 먹이면, 살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안됩니다!”

 

내 뒤를 따라온 재선이 말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이 곳 저 곳 장터를 떠돌던 중, 단지한 아낙네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피를 먹인 병자 남편이 살아나기는커녕, 잘린 손가락 부위가 곪아 썩어 들어가면서, 오히려 단지한 여인네까지 남편과 함께 죽었습니다. 부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소중히 하십시오.”

 

어차피 지아비가 죽는다면, 나 또한 과부 신세일 뿐이다. 어차피 나 혼자서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아. 이 길만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열녀의 도이다. 너는 어쩌겠느냐.”

 

작두를 앞에 두고,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서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머님? 어찌 그리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항상 곁에 있지 않습니까?”

 

내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마님, 지금 아씨께 손가락을 자를 것을 권하시는 것입니까?”

 

성남이가 화를 내며 외쳤다.

 

부모님께 물려 받은 신체는 더없이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데, 어찌하여 이를 잘라 신체를 함부로 상하게 하려고 하십니까? 피를 먹인다고 첨정 나으리께서 살아난다는 보장도 전혀 없습니다!”

 

성남이가 숨을 고르며 다음 말발 공격을 준비할 때였다. 어머니가 반론하셨다.

 

환도소연에 불폐풍일이라.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지아비 돌아가시고, 좁은 집안이 쓸쓸하여 바람과 햇볕을 가릴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네. 성남이 자네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가솔들도 거둘 수가 없게 될 것이야.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나으리를 살려야 하네.”

 

처음 뵙겠습니다. 새언니 어머님 되시나요? 재은이어요.”

 

재은이가 화제를 돌리며 끼어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께 충고를 한 마디씩 던지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착한 재은이는 역시 깍듯한 인사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가락을 작두에 얹고, 자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던 어머니께서 잠시 정신을 차리셨다.

 

“...아영아, 손님이 오셨구나.”

 

그제야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 나와 성남이가 새로 만든 친구들을 소개했다.

 

 

-38화에서 계속-

 

 

-작가의 한 마디-

 

0 복색(服色): 신분이나 벼슬 등급에 맞추어 입던 패션 스타일

 

0 비단(緋緞): 요즘처럼 인견(레이온) 같은 합성섬유가 없던 그 시절, 뽕나무를 키워서 뽕나무 잎을 따다 누에에게 먹여 누에를 기른 뒤, 누에가 번데기가 되어 고치를 만들면, 고치를 삶아서 누에를 죽이고 고치실을 풀어 비단을 짰다. 오늘날 롯데월드가 위치한 잠실(蠶室)은 원래 누에를 기르는 뽕나무밭이라는 뜻이다.

 

0 힐난(詰難): 꼬투리를 잡아 맹비난함

 

0 참람(僭濫): 무언가가 끔찍할 정도로 도리에 어긋남=극혐

 

0 이전 화 설명- 흑혈(黑穴): 1~2화에서 언급한 내용. 주인공은 현재 시점에서 이미 죽었다. 영혼이 남아, 세계관 속 저승 세계인 블랙홀로 날아갔다. 저승 벽에 비치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생전에는 블랙홀이란 용어가 없었으므로 저승을 검은 구멍 흑혈로 인식한다.

 

0 주역 진괘(震卦): 8괘의 하나로 천둥 번개를 상징함 토르? 뜻 풀이는 주역 왕필 해석본 참고.

 

0 단지(斷指): 병세가 위중한 이를 고치기 위해 자기 손가락을 깨물거나 자르던 일

 

 

Hashtag

 

#흥부전

#가난타령

#무당

#점성술

#점복

#복채

#미래

#예언

#주역

#진괘

#종묘사직

#그들만의리그

#명성황후

#어린시절

#사후세계

#과거회상

#정치물

#책사물

#역사판타지

#로판

#로썰

#관우

#재선

#재은

#현주

#단지

#피의마법

#혈마법

#과거3차시험

#전시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