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위치와 강역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은 대동강 중심설, 요동 중심설, 이동설로 대별된다. 각각의 설이 주장하는 바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동강 중심설-'삼국유사'에서 일연은 단군 왕검이 평양성에 도읍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古記'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이라는 주석을 분명히 달고 있다. 이는, 일연은 분명히 고조선의 중심을 한반도 안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 시대에 보다 명확해진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 시대에 보다 명확해진다. 정약용과 한치윤 등 실학 시대의 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중심을 압록강 이북에 비정한 '요사'를 비판하면서, 고조선의 중심이 한반도에 있었음을 고증하였고, 따라서 패수를 압록강으로 보았다. 실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대동강 중심설을 체계화한 것이 이병도의 설이다. 그러나 이 설은 헌서지리지와 언어학적인 추리만으로 패수를 청천강으로 비정한 점이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 요동 중심설-'응제시주'의 저자 권람은, 낙랑이 평양이 아닌 압록강 북쪽으로, 기자가 건국한 지역을 요동, 요서로 배정하는 요동 중심설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17,18세기의 남인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신채호,최남선,정인보 등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 이어졌다. 이들의 연구는 고조선의 위치가 한반도밖에 있었다는 견해로 요약된다. 최근에는 새로운 각도에서 고조선의 강역이 서쪽으로 난하, 남쪽으로 청천강에 걸쳤다고 주장하는 윤내현의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3) 이동설-이는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는 요동에 있었는데, 후기에는 대동강 유역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로, 요동 중심설과 대동강 중심설의 절충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동설을 체계화한 이는 천관우이다. 그는 종래에 부정되어 오던 기자 조선을 동이족의 이동이라는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기자족을 동이족의 일파로 보아 은·주 교체기에 중국의 하북에서 대릉하, 남만주를 거쳐 대동강 유역에까지 이동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최근에는 고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 고조선의 이동설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학은 요서, 요동의 비파형 동검 문화에 주목하여, 대릉하 유역의 조양(朝陽) 지방의 문화가 요동 지방보다 앞서는 것으로 이해하여, 조양 지방에서 정치적 통합을 이룬 세력이 요동 지방에 정착하여 고조선 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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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인정받는 통설은 무엇이죠??